『사은초(四恩抄)』에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사은(四恩)에 보답해야 하느니라.」(신편어서 p.267)라고 있습니다.
사은(四恩)이란 심지관경(心地觀經)에는 ‘일체중생의 은(恩)’, ‘부모의 은(恩)’, ‘국왕의 은(恩)’, ‘삼보(三寶)의 은(恩)’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성인님은 『우에노전어소식(上野殿御消息)』에 「불교(佛敎)의 사은(四恩)이란 일(一)에는 부모(父母)의 은(恩)에 보답(報答)하라. 이(二)에는 국주(國主)의 은(恩)에 보답(報答)하라. 삼(三)에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은(恩)에 보답(報答)하라. 사(四)에는 삼보(三寶)의 은(恩)에 보답(報答)하라.」(신편어서 p.922)라고 사은(四恩)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부모(父母)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금세에서 신심(信心)을 하여 성불할 수 있는 것도 금세의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은 아버지의 은혜가 높다는 것은 수미산보다도 높고, 어머니의 은혜가 깊다는 것은 대해(大海)보다도 깊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일(一)에 부모(父母)의 은(恩)에 보답(報答)하라란 부모(父母)의 적백이제(赤白二渧)가 화합(和合)해서 나의 몸이 되었다. 어머니의 태내(胎內)에 깃들어 있기를 이백칠십일(二百七十日) 구개월간(九個月間) 삼십칠회(三十七回)나 죽을 정도의 고통(苦痛)이 있다. 분만(分娩)할 때 견디기 어려워서 참고 신음하는 숨결, 이마에서 나오는 김이 범천(梵天)에 이른다. 그리하여 출산(出産)해서 젖을 먹기를 일백팔십여석(一百八十餘石), 삼년간(三年間)은 부모(父母)의 무릎에서 놀고 어른이 되어서 불교(佛敎)를 믿으면 우선 이 부모(父母)의 은혜(恩惠)를 보답(報答)할지니라. 아버지의 은혜(恩惠)가 높기는 수미산(須彌山)도 아직 낮으며 어머니의 은혜(恩惠)가 깊기는 대해(大海)도 도리어 얕으니라. 명심하여 부모(父母)의 은혜(恩惠)를 보답(報答)할지어다.」(신편어서 p.9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서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사은(四恩)의 하나인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부분으로, 보은(報恩)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의사표시도 못하는 젖먹이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보는 어머니의 노고는 필설로 다할 수 없으며 이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진심이 아닐까요?
또 인간으로서 삶을 받은 복운, 그 뜻을 깊이 생각해 볼 때 가슴에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해야 대은(大恩)에 보답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성인님은 「일(一)에 부모에 효도하라란 설사 어버이가 사물의 도리를 모르더라도, 나쁘게 말하더라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좋지 못한 얼굴을 보이지 말며, 어버이의 말씀을 일분(一分)도 어기지 않고, 어버이에게 좋은 것을 드리려고 생각하며, 하다못해 해 드릴 일이 없으면 하루에 두세 번 웃는 얼굴로 대하라 함이니라.」(신편어서 p.921)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자식으로서 부모를 대하는 ‘효행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들이 어본존을 수지하고 언제나 신심활동에 정진(精進)해 가는 것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위대한 자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은혜의 출발점은 누가 뭐라 해도 부모에 대한 것입니다. 부모를 소중히 하는 사상이 사회전체에 정착하면 세상은 많이 변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