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징공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처음 보기에는 국회의사당과 조금 닮은듯한 건축양식의 고색창연한 성당이 나온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의도적인 장식이겠지만 표면이 좀 얼룩덜룩하게 보이도록 벽돌 색깔을 섞어서 지은 것 같았다. 뭔가 좀 수리중인 듯 보였는데, 한참 보고 나니 나름 건축미가 엿보이는 장식처럼 느껴졌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속적인 보수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역사성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기록으로 그렇게 조성한 것인지도 모른다.
회랑으로 들어가보니 천정은 부채꼴 모양의 겹쳐진 아치로 되어 있어 이색적으로 보였다. 매우 견고한 고딕석 건축구조의 특징이라고 한다. 벽에는 각종 기념 패널들이 게시되어 있고 복도 바닥에는 검은색 묘비들이 군데 군데 평평한 바닥과 함께 조성되어 있었다. 일부는 벽면에 걸린 형태의 묘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벽에 걸린 묘비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Edmond Halley의 묘비이다.
에드먼드핼리는 핼리혜성의 귀환을 처음으로 예측한 영국 왕립 천문학자인데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묘비는 핼리혜성이 긴 꼬리를 늘어트리며 엄청난 속도로 지구 주변을 지나는 모습으로 디자인되었다. 다만 이 묘비는 그가 사망한 18세기가 아닌 1986년 핼리 혜성 귀환 시기에 맞춰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는 에드먼드핼리뿐이 아니라 주로 역대 왕과 왕족, 아이작 뉴턴이나 찰스 다윈같은 영국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의 묘지와 기념비가 가득차 있다. 근세에서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 기념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원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사원의 이곳 저곳 출입구마다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입장 또한 각 시설의 사정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입장시간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게시되어 있었다. 일요일은 예배가 있어서 일반 관광객은 출입이 안된다.
사원은 1065년에 에드워드 참회왕이 성당을 세운데서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왕의 사적 예배당이었다. 왕의 무덤이 이곳에 안치되기 시작하면서 왕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1066년 이후 거의 모든 영국 왕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진행했다.
현재의 건물은 13세기 헨리 3세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재건된 것이다. 이때 첨탑, 아치,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프랑스식 고딕양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이 시점으로부터 중세 왕권과 종교의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결혼식과 국장 및 국가 행사가 열리는 등 국가 의식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적인 공간과 국사 상징 공간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즉 현대 영국인에게는 이 사원이 국가의 기억 저장소로서 영국인의 집단 기억이 모인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즉, 왕권과 국가정통성의 상징인 동시에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는 대관식을 통해 살아 기능하는 역사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현대 영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관광객으로서 둘러보는 중이지만 영국인들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동쪽의 세인트폴 성당에 대칭적으로 서쪽의 성당이라는 데서 기인한 이름이 주는 역사성은 기억과 기록이 상징으로 남아 영국을 이끌고 가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데서 강력한 현재성을 느끼게 했다.
무심코 지역명으로 되뇌였던 Westminster에 담긴 시간과 기록의 내용확인은 아마 런던의 곳곳을 보는 관점의 결정적 전환이 될 것 같다. 영국은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유지해야 하는것이 참 많은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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