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년의 시간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길입니다. 부산 부전역에서 포항까지 숨 가쁜 역사의 현장을 울분도 기쁨도 가난도 성장도 함께한 길입니다. 1934년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놓은 철도는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을 실어 날랐고 산업화 시기에는 가난한 농촌을 박차고 나온 젊은이들을 공장으로 실어 부산 울산 포항의 산업단지 화물수송에 막대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부산 시내와 시외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장사꾼 아주머니들과 관광객, 출퇴근 시민을 태우고 느린 듯 분주히 다닌 재미난 철로의 삶이었습니다.
2013년 12월 2일 동해남부선 해운대에서 송정역까지 6.8㎞가 폐선되었습니다. 해운대에서 송정역까지 철도 복선화 사업으로 산수(傘壽)의 노구를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침목을 베고 누워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기적소리를 내며 쌩쌩 달릴 때는 미처 듣지 못한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파도 소리가 이토록 갖가지 음을 내고, 바람의 유희가 이다지도 즐거운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저 멀리, 한 여자가 작은 배낭을 메고 물병을 달랑거리며 걸어오고 있습니다. 하릴없는 늙은이에게 딱 걸려들었습니다.
미포에서 출발해 달맞이 근처 모퉁이 터널을 통과하기 전입니다. 청사포를 거쳐 송정까지가 그녀가 다니는 산책코스란 걸 익히 압니다. 탁 트인 바다와 손톱 달처럼 굴곡진 해안선, 하늘을 뚫을 듯한 도시의 건물을, 그 너머 이기대를 바라볼 때입니다. 가슴을 펴며 바닷내를 맡는 그녀의 바지춤을 살짝 당겨 눈짓합니다. 그녀는 노인네에게 잡히면 한참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녀와 내가 걸음을 맞추어 걷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알았습니다. 그녀의 걸음이 왠지 불편해 보인 것은 내 보폭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겐 딱 맞는 침목 한 칸이 젊은 사람이 두 칸을 딛기에는 넓고 한 칸을 딛기에는 남은 어중간한 너비였던 것입니다. 조금은 오종종히 걷는 발걸음이 경보를 하는 듯 살짝 우스워지려 합니다.
무언의 사설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산다는 것이 꼭 보폭이 맞지 않는 침목 같다고 말입니다. 두 칸씩 내달으면 힘에 부치어 오래가지 못하고 한 칸씩 걸으면 뒤처질까 졸갑증이 나는 제 인생이었습니다. 여름날 지열이 펄펄 끓는 사막을 걷듯 레일 위를 달렸습니다. 입안에 서걱대며 씹히는 모래알처럼 혓바늘이 돋고 자고 나면 한 움큼의 이물질이 눈가를 짓무르게 해도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앞에 있었습니다. 마음 같으면 두 칸이 아니라 다섯 칸씩 넘어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녀가 드디어 두 칸을 내딛습니다.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알지 못하는 게 삶이니까. 바쁜 걸음으로 헐떡이며 터널을 향합니다. 다행히 터널은 길지 않습니다. 여름 뙤약볕에는 고마운 처소입니다. 바람의 통로인 양 서늘한 기운이 덮칩니다.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터널을 지나야 할까요. 지금 같은 암전은 충전의 시간이 되겠지만 긴 터널에 갇힌 날에는 절망에 몸부림을 쳤습니다. 하지만 터널의 끝 어디엔가 희망의 햇살을 찾아 달려온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뙤약볕에 독기가 바싹 오른 그녀가 벌겋게 된 얼굴로 묵묵히 걷습니다. 나도 한때는 달구어진 레일 위를 맨발로 달리는 한 마리 경주마였습니다. 눈가리개가 씌워진 경주마는 앞만 보고 달립니다. 야생마 시절의 드넓은 초원도 자유롭던 영혼도 잊은 지 오래되어 기억조차 없었습니다. 오로지 소실점 세상, 풍족한 미래를 꿈꾸었기에 모든 걸 참을 수 있었습니다. 끝없이 희망하던 세상은 모퉁이를 돌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모퉁이 너머에는 또 다른 세상이 반드시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나이를 먹었습니다.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태산이 밀려오는 듯 파도가 내리쳤습니다.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괴기스러운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가 크게 성을 내는 듯 검은 하늘은 번쩍였고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습니다. 세상이 파괴되는 광경이 참혹했지만 작은 희열마저 일었습니다. 다음 날 바다는 잠잠해졌습니다. 세상을 바꿀 것만 같았던 파도는 결국 갯바위에 깨어져 산산이 부서졌을 뿐입니다. 널브러진 잔해들을 바라보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 욕심의 끝을 닮은 풍경이 차라리 속 시원했습니다. 나는 자꾸 기적을 삑삑 울리며 울음 소리를 감추었습니다.
예전에는 감히 꿈꿀 수 없던 세상이 내게 왔습니다. 팔순의 노인이 된 나는 밤이면 침묵을 베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휘영한 달빛을 품은 언덕과 밤바다를 보면 무모하게 달리기만 했지,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을 보지 못하고 변해가는 자연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도 됩니다. 이제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윤이 나던 레일은 멈춘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녹슬어 갔습니다. 기차가 멈춘 첫새벽부터 사람들이 나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때론 고뇌에 찬 사람이, 때론 패기만만한 젊은이들이. 때론 연인들이 내 곁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저 여인처럼 묵묵히 혼자서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그래서 달리듯 걷는 여인에게 넌지시 속말을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가는 것이 최선일지도 몰라.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쉬어가도 괜찮아. 두 팔을 뻗어 바람을 느끼고 파도 소리를 듣고 낮달을 쳐다봐도 좋아. 그러면 아마 좀 더 행복해질 거야.’
뼈마디는 하루가 다르게 녹슬어 갑니다. 사람들이 걷고 사색에 잠기고 자연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게 길을 터준 여생이어서 그나마 행복합니다. 보폭이 맞지 않는 침목을 걸으며, 달구어진 레일 위를 밟으며, 아스라한 소실점 끝에 있을 것만 같은 무지개를 찾으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나는 녹슬고 늙은 철로(鐵老)입니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