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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우리 기드온 찬양대 아름다운 찬양 감사합니다. 기드온 찬양대가 이제 우리 교회 얼굴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더 부응하고 더 은혜로운 찬양을 불러주시기를 또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제 성가대원이 우리 찬양대가 너무 노래를 잘하니까 전원이 다 성악가인 줄 알거든요. 그래서 찬양대를 하고 싶지만 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동네 축구하는 사람이 프로들하고 축구하려면 굉장히 졸리잖아요. 그런 마음 가지고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될까 마음은 있는데 그런 분들이 다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금년에 우리 찬양대에서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니까 또 이제 벌써 이번 주에 두 분이 또 이제 귀국을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서 찬양대에서 섬기고 싶으신 분들은 오늘 예배 후에 우리 지휘자님한테 꼭 말씀을 하시고 참여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꼭 잘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성악가들이 다 잘하니까 우리는 더 하기가 쉬워요. 그러니까 골은 이 사람들이 넣는 거니까 우리는 옆에서 같이 분위기 맞추고 좋은 은혜로운 예배를 만들면 됩니다. 예배 후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벌써 2025년 두 번째 주일이 됐습니다. 제가 매년 벌써 연초입니다 하고 금방 한 해 마지막 주일이 됐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22년을 보내왔어요. 진짜 시간이 빨리 지나갑니다. 빨리 결심하고 부지런히 살지 않으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가고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한 생이 지나가요. 인생이 그런 겁니다. 우리가 기왕 신앙생활 시작했고 2025년 교회에서 시작했으니까 매주 하나씩 결심하면 좋겠어요.
지난주에는 우리가 태신자와 선교 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날 못하신 분들은 꼭 작정을 하셔가지고 제출을 하고 오늘 예배 후에 제출을 하고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주일 성수를 좀 해야 되겠다. 연초에 결정을 해야 돼요. 신앙생활의 기본이 주일 성수입니다. 아무리 성경 공부 많이 하고 봉사를 탁월하게 해도 기본을 안 하면 안 돼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예배를 드려야 된다. 특별한 일이라는 건 병원에 입원했다든가 출장을 갔다든가 이런 경우 출장 가서도 훈련이 잘 된 분들은 현지에 있는 교회를 찾아서 꼭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결심을 하셔야 돼요. 내가 기왕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내 인생을 하나님께 걸었는데 신앙생활의 기본인 주일 성수를 한번 하겠다. 1년 동안 1년 하고 나면 또 2년 하게 되겠죠. 10년 하게 되겠죠. 이번에 꼭 지금 마음에 여러분들이 꼭 결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은 이쪽만 나오는 것 같아요. 이쪽은 이쪽도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우리 권사님들이 참 이쁘네요. 연세는 드셨지만 아멘을 잘하시니까 좋습니다.
다시 사도행전 강의로 들어가겠습니다. 60번이 넘었어요. 사도행전 강의가 오늘 본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위기를 경험합니다. 간신히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제 다시 천부장에 의해서 그가 공예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고 또 위기를 극복하는 그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바울을 고발했는지 궁금한 거예요. 유대인들이 저렇게 쌍심질을 켜고 저렇게 달려드는지 이 한 사람을 놓고 바울에게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진상을 파악할 목적으로 제사장 그룹과 공예를 소집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워서 말하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내용이에요. 살펴보면서 바울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또 우리 삶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바울이 자기 관리를 잘한 것을 보게 돼요.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바울이 공예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나는 범사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이 유대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하나님을 어떻게 잘 섬기느냐예요. 그게 권위에요.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오늘날까지 범사에 모든 상황에서 내 양심에 어긋남이 없이 하나님을 섬겼다.
바울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그렇게 고백했어요. 그것이 바울의 힘이고 그것이 바울의 담대함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담대하다고 말합니다. 의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한 하나님 뜻대로 산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는데, 이 의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아. 지혜자는 잠언 28장 1절에서 말하기를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악인은 늘 불안합니다. 여러분 범죄자는 늘 불안해요. 그래서 자기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 오버 액션을 해요. 큰 소리를 내요. 말을 많이 해요. 그러나 그 안에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그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을 느껴 부끄러움을 느껴요. 그래서 누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그냥 지레 겁을 먹고 당황하고 스스로 숨고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악인이 악인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1차 심판이에요. 그걸 감추기 위해서 더 막 강한 척하고 더 사나운 척하고 괜찮은 척하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가 우리 집에 코로나 때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웁니다. 은돌이라고 우리 아들들 저기를 이렇게 해서 은광은석 은돌. 처음에는 애들이 약간 반대했어요. 근데 제가 우겼어요. 은돌이라고 하자. 은돌 이제 등록이 됐는데 은돌로 등록이 됐습니다.
근데 얘가 밖에 이렇게 산책을 나가면 개들을 만나면 서로 만나서 냄새도 맡고 인사도 하고 봉주해야 될 거 아니에요 만나면 큰 애든 작은 애든 막 하다가 막 달려드는 거예요. 그럼 막 다른 개들이 막 놀래가지고 그래서 나는 우리 개가 강한 줄 알았어요. 우리 개가 상당히 세구나.
근데 나중에 이렇게 공부를 해보니까 이 강아지가 두려워서 그런다는 거예요. 겁을 먹어서 소리치고 달려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겁먹은 개가 짖는다고 그러잖아요. 자기를 감추는 거예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근데 진짜 겁이 없는 개는 안 짖어요. 그냥 딱 쳐다보고 약간 소리만 하다가 확 물어버려 그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우리 개는 물지는 못하면서 막 짖고 이렇게 제가 이제 좋아하니까 이렇게 귀엽게 보지만 사실은 참 부끄러운 거죠. 약한 것입니다. 자기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 누구에게나 악인은 그런 두려움이 있어 그걸 스스로 감추려고 추한 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양심이 망가진 사람도 사실 있어요. 양심이 망가진 사람은 보통 사람들은 양심의 기본적인 기능이 돌아가는데 양심이 망가진 사람 성경에서는 화인 맞은 사람 이런 사람은 죄를 짓고도 잘못 살고도 떳떳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예요.
그걸 우리가 세상에서 많이 봅니다. 어떻게 저렇게 하고도 돌아서서 또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을 할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혼란한 거예요.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어요. 이렇게 지내다 보면 거짓말을 많이 한다든가 그리고 나중에 자기 거짓말을 믿어 스스로 그런 사람들 근데 자기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자기 감정 컨트롤 하고 하는 사람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정상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돼 있고 정상인은 스스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악인은 불안한 거예요. 의인은 담대합니다.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면서 자신의 양심을 늘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없어요.
의인이 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입니다. 이 올바른 관계에서 확신이 오고 용기가 오고 평안함이 와요. 의인은 평소에는 약해 빠진 것 같아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이름이 선한 교회잖아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다 선하고 저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을까 약에 빠져 보여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비상 상황이 되면 하나님과 관계가 참 잘 맺어진 사람들은 그 순간에 흔들림이 없어요. 담대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막 자기가 힘 있는 것처럼 하다가 어떤 상황이 되면 막 숨고 비열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크리스천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된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바라는 거예요. 흔들리지 않아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들어오는 걸 알아요.
오늘 사도 바울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신 앞에 있는 권력자 천부장입니다.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어요. 성난 군중들 누가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바울은 한 방에 날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그 앞에서도 바울은 비겁하거나 숨거나 또는 쫄지 않았어요.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다가 어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그때 크리스천으로서의 모습이 빛나야 돼요. 마음의 평화 다 불안해하는데 하늘로부터 오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면서 담대하게 상황을 직면하는 모습. 그러면 세상이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두려워합니다.
그게 리더십이 되는 거예요. 바울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기를 잘 관리했기 때문이에요. 신앙 관리, 영성 관리, 하나님과의 관계 관리를 잘하면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앞에서 제가 설교하고 늘 말씀드리는 게 그걸 잘하자는 거예요. 그 기본 하나님을 섬기는 예를 잘 하면 그게 하나하나 겹겹이 쌓여서 내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지혜롭게 위기를 돌파하고 있어요. 바울의 당당한 고백을 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딱 있다가 저 입을 쳐라 명령한 거예요. 거기 최고의 실권자입니다. 유대 세계에서 대제사장이 저놈의 입을 쳐라.
여러분 양심에 떳떳하게 살아도 공격을 받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 뜻을 따라 살려고 할 때 박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순교가 있는 거예요. 주님 뜻대로 산다고 해서 평탄한 대로가 펼쳐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위기는 다가와요. 그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거지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의인은 늘 공격을 받습니다. 바울이 지금 그러고 있어요. 담대하게 이제 자기 모습을 딱 보여줬는데 저놈의 입을 쳐라 그런 거예요. 그때 바울이 다시 담대하게 응대했습니다. 회칠한 담이요. 지금 제사장 대제사장한테 하는 얘기예요. 하나님이 너를 치겠다. 니가 나를 치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치리로다. 내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칠하느냐 소리를 칩니다. 대제사장인 줄 몰랐던 거예요.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저분이 대제사장이다.
바울이 다시 역으로 위기를 당한 거예요. 당당하게 얘기했는데 해서는 안 될 얘기를 한 거예요. 그때 바울이 속히 이렇게 말하고 수습을 합니다. 나는 몰랐다. 그분이 대제사장인 줄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 백성의 관리를 비호감하지 말라 하였다. 나 그거 잘 안다 하면서 자기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하고 그리고 수습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사실 지혜예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실수할 때 막 우기고 고집부리고 그러면 일이 더 꼬입니다. 사람 실수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바울처럼 쿨하게 인정하면 돼요. 그렇다. 권위가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나는 몰랐어요.
성경에는 관리를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원래 그렇게 살았어요. 미안합니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이게 지혜입니다. 바울의 지혜 싸워야 될 걸 싸워야지 우길 걸 우겨야지 계속 고집부리고 우기면 꼬입니다. 거짓말과 변명은 또 하나의 그걸 덮으려고 또 거짓말해야 되고 또 변명해야 되고, 나중에는 거짓말과 변명의 릴레이가 이어지면서 이게 끝모를 끝이 없는 다툼을 해야 되는 거예요. 가장 지혜로운 건 잘못했을 때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몰라서 그랬어요.
실수를 인정하고 불이익을 당하면 돼요. 그러면 일이 더 커지지 않습니까? 바울이 지금 그런 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셔야 그러면서 바울이 지금 사실은 이게 전쟁이거든요. 죽느냐 사느냐 그런 상황이에요. 자칫하면 그냥 거기서 바울이 죽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이 위기를 모면하는 것을 그 지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야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까 뭔가 해야 될 로마로 가서 해야 될 일이 있잖아요.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청중들을 보니까 상황이 딱 파악되는데 한쪽 무리는 바리새파, 한쪽 무리는 사도 계파 이 두 파가 지금 마음을 합쳐서 바울 하나를 공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두 파는 원래가 계보가 다르고 신학적 입장이 달라 그런 사람들이 지금 공격 목표를 바울로 잡고 연합이 된 거예요. 그것을 바울이 다 파악했어요. 사도 계파라는 것은 신구약 중간 시대부터 나오는 파입니다. 이 사도 계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와 세속 권력을 잡은 주류 세력이에요. 그 사회의 주류 세력 이 사람들은 과거에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사독이라고 하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게 이제 쭉 유대 사회의 제사장 주류 제사장 계열로 이어 내려오는데 그 후손들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귀족 세력들이에요. 그래서 사도의 후손들이라는 의미에서 사두개파가 된 거예요. 사두패 사두개파 그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이 사람들은 모세 오경 토라라고 하는 모세 오경만 믿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좀 편하게 신앙생활 이게 권력의 맛을 보니까 내 세 죽은 이후의 세상 이런 거보다는 지금이 좋은 거예요. 지금 규정을 아주 간소하게 하고 자기들이 누릴 수 있는 세속적인 그 권력 또 종교적인 권력을 탐닉하는 그런 세력들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강하게 비판합니다.
요 세력들에 대해서 반면에 이 바리새파는 그 그룹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율법 성전이 아닌 율법을 연구해서 율법을 중심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 예수님 당시에는 이 바리새파 정통 바리새파가 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그래요. 한 7천 명 정도로 예상을 합니다. 그 정도로 바리새파가 되기가 어려워요. 이 사람들은 모세 오경뿐만 아니라 장로의 유전 그밖에 여러 가지 규정들을 다 다 인정하면서 그걸 철저하게 지켜야 되니까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겠어요 그게 바리새파입니다.
파리 사이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바리새파가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바리새파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이 바리새파 같은 사람들. 그렇게 예수님이 나중에 책망하셨지만 사실은 굉장히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도개인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바리새파 사람들은 재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그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장로의 유전까지도 믿고 그래서 나중에 너무 그게 이제 심하니까 예수님이 책망하시잖아요. 니가 장로의 유전은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다 하면서 책망까지 하셨지만 사실은 이 사람들이 훨씬 더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사람들이에요. 천사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활과 넷의 영을 믿는 사람들. 바울은 여기에 속했어요. 바리새파 사람 바울은 자신을 뭐라고 했냐면 나는 바리새파 중에 바리새파요. 이건 굉장히 자기 자랑을 하는 거예요. 바리새파 중에 바리새파 진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바울이 기독교 복음을 처음에는 막 박해자였지만 기독교 복음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유리했던 게 뭐냐 하면 이미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천사와 부활과 영과 내세에 대한 이런 내용들이 바리새파에 있었던 거예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그게 이제 이미 오리엔테이션 돼 있었던 거 쉬운 거예요. 바울은 자신을 바리스테파의 아들로서 죽은 자의 소망인 부활을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황을 파악한 다음에 이제 자기 변호를 이렇게 합니다.
내가 이렇게 지금 심문 당하는 이유 내가 여기서 어려움 당하는 이유가 뭐냐? 바리새파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믿고 우리 조상이 믿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그 소망을 전했더니 이렇게 나를 지금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고 말을 했어요.
이 한 마리가 폭탄을 던진 겁니다. 6절에 보면 바울이 그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오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파악했다는 거예요.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 아들이라 우리가 믿는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으로 내가 심문을 받고 있다.
이렇게 한마디 던졌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갑자기 막 바울을 죽이려고 이 전 청중이 지금 시선이 마음이 모아졌는데 갑자기 바울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사도 계파와 바리새파의 싸움이 시작이 된 거 뭐야 이거 우리 편이잖아 사도교회 뭐야 이거 저거 그래가지고 이제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요.
그게 7절에서 9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말을 한, 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뉘어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서로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하나도 없도다. 혹이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했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며
야 그 막 죽이려고 달려들다가 이 한마디에 우리가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는 얘기예요. 우리가 보니 이 사람에게 악한 게 하나도 없어 이제 게임 끝난 거예요. 그리고 이제 바울은 가만히 있는데 이 두 그룹이 싸움이 시작이 된 겁니다.
바울을 공격하는 자들, 그리고 바울을 옹호하는 자들로 나눠졌어요.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공격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바울이 거짓말한 건 아니에요. 팩트를 얘기했어요. 근데 그 한마디로 이제 이 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가게 된 거예요.
우리도 위기를 만날 때 이런 지혜가 필요해요. 일부러 싸움 붙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떤 위기를 만났을 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한마디 던지는 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은혜가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맨날 그 소용돌이 속에 빠져가지고 허우적댑니다.
이렇게 위기 상황을 만났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 그것을 우리가 지난 부흥회 때도 말씀을 나눴지만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 첫 번째 지혜의 말씀의 은사입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적용하는 지혜, 또는 그 지혜의 말씀을 하나님이 넣어주신 거예요.
바울이 그때 막 계산하고 갔겠어요. 근데 딱 상황을 파악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지혜를 확 주신 거예요. 이 말을 해라 이거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너희가 공예에 잡혀갈 때 뭘 말할까 염려하지 마라. 너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할 말을 넣어주시겠다는 거 그게 뭐냐 하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예요. 그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이런 은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병 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것만이 은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넘치게 되면 우리가 세상을 정말 힘 있고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어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겠다 말씀하셨어요. 갈등이 있을 때 진리를 중심으로 분별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 지혜를 구해야 해요. 바울에게는 이 지혜가 있었어요. 성령께서 막 은사로 지금 부어주신 겁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위로와 격려와 확신을 받았습니다.
이제 바울의 이 지혜로운 말로 상황이 정리됐어요. 분쟁이 생겨서 시끄럽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천부장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정치적인 입지에 타격을 받아요. 야 얼마나 너 리더십 그거 하나 못하고 폭동이 일어나고 싸움 나면 너는 리더십이 없어 그래가지고 벌써 로마 본국에서 듣는 거예요. 쟤는 안 되겠다. 다 천부장 정도 된 사람이면 그 이상의 야망을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이거 큰일 났네. 이 싸우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바울을 끄집어냅니다. 그대로 나는 바울이 찢기겠다 이 사이에서 그래서 끄집어냅니다. 놀라운 일이잖아요. 하나님께서 바울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그 로마의 군대를 통해서 드러내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홀로 있는 그 밤에 두려웠습니다. 인간이니까 그때는 담대하게 막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행했지만 혼자 또 이렇게 있다 보면 엘리야처럼 그 아합의 제사장들을 처단하고 말이죠.
바울의 제사장들을 처단하고 지금 쫓겨서 광야에 가가지고 혼자 처량하게 있는 그 엘리야를 보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혼자 있으면 또 두려움이 오는 거예요. 나 혼자 남았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인간이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 처해서 혼자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나셨어요.
11절에 보면 그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되 어떨 때는 주님은 멀리 계셔서 그냥 구경만 하셔 지혜도 지혜 정도만 이렇게 넣어주시고 멀리 주님이 마치 자기와 관계없는 것처럼 바울이나 우리의 삶을 그냥 방관하시는 것처럼 멀리서 응원만 해 힘내라 이렇게 하실 때가 있지만 바울의 고린도에서도 그랬죠.
지금 여기서도 그러는 거예요. 주님이 곁에 서서 가까이 오신 거예요. 말씀만 하셨을까요? 주님이 바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말씀하시되 담대하라. 내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라 하리라 하시니라.
이게 주님의 역사입니다. 바울아 너 죽을 때가 아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가 바울이 마음속에 로마에 대한 계획이 이미 있었어요. 그 계획을 하나님이 넣어주신 거예요. 그 계획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 되는 일을 내가 마치게 하겠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천부장에 그 강력한 군사력, 그리고 화난 다음 주에 보겠지만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내가 물도 안 마시고 먹지도 않겠다고 작정한 그 광신자들 70명이 결단을 했어. 아니 40명이 나는 바울 죽이기 전에는 나는 그냥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으면 주님이 보호하시고 우리가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합니다. 바울을 하나님이 살려주신 이유는 사명을 감당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노라면 우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은 전쟁터예요.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돌아보세요. 편안한 날이 어디 있었어요? 덜 불안하고 이거 하나 풀리면 또 저기 산 넘어 산이라고 그러잖아요. 산 하나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고 바른 양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1차적으로 극복할 힘이 있어요. 그래도 어려움이 올 수 있어요. 그때 어떻게 하냐? 지혜를 구해야 돼요. 하나님 어떡할까요?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거 안 구하고 그냥 막 혼자 고민하니까 그렇지. 그때 딱 엎드려서 잠시라도 주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 음성을 안 들려주시면 내 속에 지혜라도 주세요. 내 생각을 바꿔주세요. 그러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걸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산호라면 광야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인생길 또 막혔고 뒤도 막혔구나. 그럴 때는 사명에 집중하면 돼요. 그럼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그러다가도 내가 견딜 수 없는 그 번아웃이라고 그래요. 번아웃. 완전히 내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내게 하나도 없어. 야 이거 어떡하지?
내가 가장 연약할 때 일어날 힘도 없을 때 그때가 주님이 내 옆에 오실 때 주님이 내 가까이 서서 얘야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내가 너를지 켜줄 것이다. 주님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예요.
그래서 약할 때 강함 주시는 주님 이게 기독교의 역설이에요.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 주님의 강하심이 내게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아주 힘이 있고 내가 잘할 수 있을 때는 그냥 주님이 그래 잘해라 이렇게 놔두시지만 그러다가 정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든 것을 놓을 때 주님이 옆에 계십니다. 2025년 한 해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어요.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을 경험하고 또 주님과 함께 모험하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때로는 너무 힘겨울 때 정말 나 스스로 어떻게 살 힘도 없다. 그런 순간이 오면 절망하지 마시고 옆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내 곁에 서서 말씀하실 거예요. 담대하라.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런 음성을 들으며 한 해를 달려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