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은 아프리카 우간다 성인들이다.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우간다 왕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처형했는데
이들은 이때 순교하였다.
가롤로 르왕가는 우간다 왕의 몸종이었는데 가톨릭 교리를 배우고 난 뒤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고백하며 다른 동료 몸종들에게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이끌었다.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왕의 비윤리적 행동을 거부하고 오히려 왕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왕에게 분노를 사게 되어 순교하게 된다.
1964년 가롤로 르왕가와 그의 동료들은 바오로 6세 교황에게 시성되었다.
입당송
지혜 3,6-7.9 참조
주님은 뽑힌 이들을 금처럼 용광로에 시험하시고, 번제물로 받아들이셨으니,
하느님이 돌아보실 때, 뽑힌 이들은 은총과 평화를 누리리라. 알렐루야.
본기도
주 하느님, 순교자들의 피를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게 하시고,
복된 가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의 피로 주님의 교회를 비옥한 땅이 되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언제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가 코린토에 머물고 있을 때 유다인들은 합심하여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간다.
당시 로마법은 유다인들의 율법을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총독 갈리오는
그들의 고발을 단순한 유다교 내부의 일로 여겨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여인이 해산하는 것에 비유하신다.
해산을 위한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듯이,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전해 주신다(복음).
제 1독서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7(46),2-3.4-5.6-7(◎ 8ㄱ)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다. (또는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그분은 민족들을 우리 밑에, 겨레들을 우리 발아래 굴복시키셨네.
우리에게 상속의 땅을 골라 주셨네. 사랑하시는 야곱의 영광을 주셨네. ◎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
복음 환호송
루카 24,46.26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 알렐루야.
복음
<너희의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간절히 기도하며 예물을 바치오니,
복된 순교자들이 죄를 짓기보다는 주님의 은총으로 죽음을 택하였듯이,
저희도 오로지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주님 제단에 봉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부활 또는 성인 감사송 참조>
영성체송
시편 116(115),15 참조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그분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순교자들의 승리를 기념하며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온갖 고문을 이길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신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가
시련을 겪을 때에도 영원한 믿음과 사랑을 지키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지금까지 혼자 사는 동생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도 가정을 가지고 있고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동생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희귀병에 걸려 혼자서 투병하는 것을 알고, 힘들지만 시간을 내서
동생을 간호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짓눌렀던 근심이 오히려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교우가 복음 나눔을 하면서 전한 말입니다.
혼자가 되어 술로 방황을 하던 동생을 외면하고 있을 때는 늘 근심과 갈등을 안고
살았는데, 결단을 내리고 그를 돌보아 주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동생을 돌보아 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은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교우는 동생 때문에 겪은 갈등의 시간을 ‘영적인 해산’의 순간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려면 반드시 이런 ‘영적인 해산’의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겨 내야 할 고통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그저 안락함만을 좇으며 살면,
기쁨은 없고 오로지 ‘거짓의 나’를 붙잡는 삶만 남게 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 말씀하셨지요. “고통이 깊은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
신앙인에게는 이런 사랑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축일: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성녀 클로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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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St. Carolus Lwanga St. Charles Lwanga and Companions San Carlo Lwanga e compagni Martiri Born:1865 at Bulimu, Buganda, Uganda Died:burned to death in 1886 at Namugongo, Uganda Canonized:18 October 1964 by Pope Paul VI at Rome, Italy Patronage:African Catholic Youth Action, Catholic youth, converts, torture victims Carlo = forte, virile, oppure uomo libero, dal tedesco arcaico = strongly, it turns them, or free man, from the archaic German
1885~1887년 사이에 우간다의 무왕가왕은 종교를 증오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이 중에 어떤 이들은 왕의 궁전에서 일하던 사람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왕의 개인 수행원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롤로 르왕가와 21명의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톨릭 신앙을 열렬히 신봉하여 왕의 불순한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에 몇몇은 참수형으로, 또 다른 이들은 화형으로 순교했다.
우간다의 순교자 시성식에서 행한 교황 바울로 6세의 강론에서 (AAS 56[1964], 905-906)
순교자들의 영광은 재생의 표지입니다.
이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은 승리자들의 목록인 이른바 순교록에 지극히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더해 줍니다. 이들은 옛 아프리카의 그 놀라운 이야기들과 참으로 어울리는 합당한 페이지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미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결코 되풀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실리의 순교자들, 카르타고의 순교자들, 성 아우구스띠노와 프루덴시오가 말해 주는 우티카의 "흰 군대"라는 순교자들,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가 큰 공경심으로 기록하는 에집트의 순교자들, 그리고 반달족의 박해 시에 순교한 분들- 이분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후에 이에 못지 않게 용감하고 찬란한 새로운 행위가 뒤따르리라고 누가 짐작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프리카의 순교자와 성인들, 즉 치쁘리아노, 펠리치따스, 뻬르뻬뚜아, 그리고 위대한 아우구스따노와 같은 뛰어난 역사적 인물들에다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가롤로 르왕가, 마티아 물룸바 칼렘바와 그 동료 20명의 이름을 더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 간 성공회의 다른 형제들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은 참으로 새시대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종교 박해와 종교적 충돌의 시대가 아닌 새로운 그리스도 생활, 새로운 사회 생활로 이룩된 새 시대를 말합니다.
새 시대의 첫 열매인 이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아프리카 대륙은 자유를 얻어 독립된 아프리카로 일어서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너무도 참혹하고 너무도 보배로웠던 이 희생이 마지막 희생이 되게 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을 앗아간,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하고 깊은 뜻을 지닌 이 비극은 새로운 민족의 윤리교육과 새로운 영신적 전통의 기초를 위해 충분한 몇 가지 대표적인 요소들을 제공해 줍니다. 이 비극은 위대한 인간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나약한 타락으로 노예가 되어 얼룩지고 병들어 버린 원시적인 생활 방식으로부터 더 나은 정신적 표현과 더 나은 사회형태를 향해 열려 있는 새로운 문명에로의 전환을 상징해 주고 또 증진시켜 줍니다.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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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가롤로 르왕가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열대 지방에서 청년들과 여러 가톨릭 활동 단체의 수호자이다. 그는 바간단 지도자인 므왕가의 "동성애 요구"로부터 동료 시종들을 보호했고, 그들이 동성애 요구를 거절했다고 해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가톨릭 신앙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가르쳤다.
자기 자신이 부도덕한 행위에 복종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또 자기 친구들의 신앙을 보호하려는 노력 때문에 가롤로는 므왕가의 명령으로 1886년 6월 3일 나무공고에서 화형되었다. 가롤로는 처음에 마울루궁구 추장의 거처에 있는 두 명의 시종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가 예비 신자로 있을 때 그는 추장의 시종장인 요셉 무카소의 조수로 추장의 거처에 들어 갔다.
무카소가 므왕가에게 저항하도록 아프리카의 청년들을 격려했다는 이유로 순교하게 된 날 밤, 가롤로는 세례를 자청하여 받았다. 그의 친구들과 함께 감옥에 갇힌 가롤로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용기는 그들이 정결하고 충실하게 머물러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22명의 순교자들은 1964년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 때 시성되었다.
가롤로 르왕가처럼 우리는 모두 우리 생활의 표양으로써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증인이 되고 스승이 된다. 우리는 모두 말로든 행동으로든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하여 불림을 받은 것이다. 윤리적, 육체적 유혹을 당할 때 우리 신앙을 용감하고 흔들림 없이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생활하신 것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1969년 아프리카의 순방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22명의 젊은 우간다 개종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
영적 나이
현재 우간다에 속하는 부간다 왕국의 므왕가 왕은 1885년 시종장인 요제프 무카사가 왕의 불멸성을 부인하고 성공회 선교사를 살해한 것에 대해 비판하자 그를 죽이고 가롤로 르왕가를 그 자리에 임명하였으나 그 역시 그리스도인이었다. 몇 개월 후 왕은 부도덕한 행위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한 시종과 그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한 데니스 세부그와오라는 기사를 사형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시종들을 모두 소환하여 배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때 순교한 사람들은 거의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들은 혹독한 고문 끝에 산 채로 화형을 당하거나 참수당하였다. 가롤로 르왕가와 다른 순교자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기꺼이 참아 받고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적인 성숙함을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나이가 있다. 육체의 나이는 한 해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한 살을 더 먹게 되지만 영적인 나이는 그런 자연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진리를 갈구하고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영적인 성숙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내 영적인 나이는 몇 살인가? 내년 이맘때쯤 내 영적인 나이는 몇 살쯤 될까?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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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6월3일 성녀 클로틸다 Santa Clotilde Regina dei Franchi Lione (Francia), ca. 474 - Tours (Francia), 3 giugno 545 Born: 475 at Lyons, France Died: 545 at Tours, France of natural causes; buried in the church of Saint Genevieve, Paris, France Clotilde = illustre in battaglia, dall'antico franco(illustrious in battle, from the ancient franc)
성녀 클로틸다(Clotildis)는 부르고뉴(Burgundy) 공국의 국왕 칠페릭의 딸로서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나 492년에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 클로비스(Clovi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국왕인 남편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는데, 이 일은 왕이 ‘클로틸다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패할 듯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496년 성탄절을 기하여 일어났다. 클로비스 국왕이 511년 사망하자 그녀는 네 아들과 함께 살다가 투르(Tours)로 가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여생을 조용히 마쳤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클로틸다 왕후',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79-382쪽. (가톨릭홈에서)
축일:6월3일 성녀 클로틸다 Santa Clotilde Regina dei Franchi Lione (Francia), ca. 474 - Tours (Francia), 3 giugno 545 Born: 475 at Lyons, France Died: 545 at Tours, France of natural causes; buried in the church of Saint Genevieve, Paris, France Clotilde = illustre in battaglia, dall'antico franco(illustrious in battle, from the ancient franc)
성녀 클로틸다(Clotildis)는 부르고뉴(Burgundy) 공국의 국왕 칠페릭의 딸로서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나 492년에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 클로비스(Clovi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국왕인 남편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는데, 이 일은 왕이 ‘클로틸다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패할 듯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496년 성탄절을 기하여 일어났다. 클로비스 국왕이 511년 사망하자 그녀는 네 아들과 함께 살다가 투르(Tours)로 가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여생을 조용히 마쳤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클로틸다 왕후',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79-382쪽. (가톨릭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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