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필경사 인근에 있는 심재영 고택을 소개하겠습니다. 당진시 송악읍 소재지에서 619호 지방도를 따라 한진 방향으로 가다 필경사 이정표에서 우회전하여 조금 더 가면 왼편으로 솔밭이 보여요. 솔밭 입구에는 '나의 강산이여'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시비 북쪽에 보이는 독립 가옥이 심재영 고택입니다.
심훈의 맏조카인 심재영은 19살인 1930년에 당진에 내려와 농토의 관리사에서 기거하며 1931년에 집을 짓고 정착해 산 곳입니다. 1931년 심훈의 부모가 먼저 낙향하며 살았으며 1932년 서울생활을 청산한 심훈이 필경사를 지을 때 까지 거처했던 곳입니다. 소나무숲을 걸어 들어가면 솔밭 너머로 드넓은 벌판이 이어집니다. 위쪽으로는 제법 규모가 큰 근대식 기와집 심재영 고택이 있습니다.
드넓은 벌판 앞엔 '애향가 빗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사가 친숙한 느낌인데 이 노래는 당시 애국가 곡조에 맞추어 부를 수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에 맞춰서 불렀는데 일제는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심훈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애국가 곡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애국가 형식으로 애향가를 지어 주었다고 하네요.
애향가/ 심훈
1. 아산만과 송악산이 마르고 닳도록 정들고 아름다운 우리 한곡(漢谷) 만세!
(후렴) 비바람은 험궂고 물결은 사나워도 피와 땀을 흘려 가며, 우리 고향 지키세!
2. 우리들은 가난하고 힘은 아직 약하나 송백같이 청청하고 바위처럼 버티네!
3. 한 줌 흙도 움켜쥐고 놓지 지 말아라 이 목숨이 끊기도록 북돋우며 나가자!
고택 맞은편에는 상록수의 남자 주인공인 박동혁의 모델 심재영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심재영 선생은 경성농업을 졸업하고 낙향해 야학당을 만들고, 동네청년 16인과 공동경작회를 시작해 낙후된 농촌의 발전에 젊음을 바친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입니다. 심재영 선생은 이곳에서 1995년 소천하실 때까지 평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심재영 고택은 특히 1930년대 당시 부유한 농가의 가옥 형태를 알 수 있는 고택인데요.
대문에는 <심재영 고택 1930년 준공>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심재영 고택은 필경사 이전 심훈의 문학산실로 ' 직녀성', ' 영원의미소', 황공의 최후 등을 집필하였고, 시집 '그날이 오면'의 원고도 이 집에서 정리를 했으니 당진 생활 초기 심훈 문학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심훈 선생은 한진 앞바다와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붓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는 주옥같은 작품을 써 나가셨겠지요.
<청련시경>은 심훈 선생의 증조부인 심의붕 선생이 김정희 선생과 교류하여 얻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훈가(家)에서 170년간 소장하다가 종손 심천보 선생이 2019년 5월 10일 예산군에 기증했습니다.
<청련시경>의 글자는 양각으로 새겼으며 제작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김정희가 만년에 직접 쓴 글씨입니다. 청련은 당나라의 시인 이백의 호를 의미하고 시경은 시를 지을 만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장소를 가리키는데 이처럼 청연과 시경이 결합되어 이백이 시를 지을만한 뛰어난 장소를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위 현판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0호 해초 박학규 선생이 각(刻)한 현판으로 예산군에서 기증하였다고 하네요.
1919년 3.1운동이 있었던지 어언 100년 광복을 맞이한지도 75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갔으나 작품과 역사는 남아서 민족적 자존심을 높여줍니다. 잊지말고 영원히 기억해야할 우리의 역사를 당진 필경사에서 함께해보세요
심재영 고택에서 당진시 부곡리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광도 즐기고 심훈 문학 산실을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교과서 밖 문학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심재영 고택은 현재 아들인 심천보가 거주하면서 관리를 해 보존 상태가 양호합니다.
심재영고택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29-8
고택 옆 꽃밭 뒷편 송림 사이에 상록수 교회가 보입니다. 상록수 교회는 심훈 선생의 형 심명섭 목사가 1950년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게 납북을 당한 후 향리에 내려온 부인 권유희 권사와 심훈가 가족 중심으로 소수의 피난민과 주역주민이 참여하여 1951년 9월 23일 필경사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21년간 필경사를 교회당으로 사용하여 예배를 드린 후 2차 교회당을 거쳐 2001년 4월 16일 지금의 자리에 3차 교회당으로 신축 봉헌되었다고 합니다.
심훈 선생의 이모 윤병영 전도사가 초대와 제8대 담임교역자로 사역했고 부곡교회로 설립되었다 2007년에 심훈 선생의 농촌계몽운동을 신앙적 계몽운동으로 이어가려는 뜻을 담아 당진 상록수교회로 개명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