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2월10일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님의 간 경화 등의 병환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서 중학교 진학을 못했었습니다.
16세에 서울로 상경하여 세탁소기술을 익히고, 19세에 세탁소를 개업하였으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일대에서 꽤나 모범적인 청년으로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돌봐야 했고, 동생들의 교육비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청년기에는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졸이라는 이유로 병역검사 신체검사장에서 보충역으로 분류되고, 군의관 대위로부터 학력을 속인 것이 아니냐는 꾸중을 들은 바 있습니다.
사실적인 살아온 형편을 이야기하자, 자네의 관상 정도면 사회에서 고졸학력 정도는 실력을 쌓아야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를 듣고,
지나온 삶들을 반추해보고 인생의 앞날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국졸이라는 이유로 보충역, 장기대기 소집면제로 병역을 면제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낮에는 세탁소 일을 하고 밤에는 노량진 대신학원 검정고시 학원에서부터 신설동 고려학원 등을 전전하면서 중,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동생들의 고려대학교 등 대학 뒷바라지를 하다보니 자신은 대학을 진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 스스로는 고졸 학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국졸로 살았을 때는 세상을 보는 눈이 협소했지만, 약간의 먹물이 들어간 뒤로는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가 눈에 보이고, 틈나는 대로 법학 공부를 하다보니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평민당 창당 발기인으로 입당하게 되었고, 김대중 대통령 후보 연설원으로 활동하면서 선거기간 중에는 주로 서민적 삶을 살아가는 아픔들을 우리 사회가 민주정부를 수립해서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사회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생들이 나름 성공해서 자리를
잡은 뒤 고향의 부모님의 노후와 대농의 꿈을 원하시기에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원이라도 풀어드리자 하고 3남매의 아이들을 이끌고 귀촌한 유턴 세대입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중,고등학교의
학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텃세가 어찌나 심하던지 야당활동을 더 심하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렬히 야당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왔던 것 같습니다.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이화여자 대학교 등 5남매의 대학을 졸업시키고, 현재 늦깎이로 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전공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정치하는 나의 꿈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가 각 행정리 단위의 노인복지 시설을 갖춰서 노후에 양로원으로 가지 않고, 여생을 고향마을에서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시설들을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번의 낙선 끝에 초선 군의원으로 활동을 해보니,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낙후된 우리 장흥, 강진, 보성, 고흥 지역구는 전남의 3획 3축에서 개발의 사각지대가 되어있고 날로 인구가 줄어가는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권, 목포권, 순천권의 3획 3축에서 4획 4축으로, 중남부권 중심 관광산업도시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흥수문에서 득량도를 거쳐 고흥녹동까지 연륙교 추진을 정책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정책제안이 우리 전라남도당에서 받아들여져서 김승남 지역구 국회의원님의 제1공약, 이재명 대통령 후보님의 공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일이 성공해서 낙후된
우리 지역도 첨단 산업단지와
관광인프라를 활용한 관광과 산업중심 도시로 발전하여 인구 유입이 활성화되고, 사람이 모여드는 희망적인 장흥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의 내용이 백광철 본인의 정치를 하는 이유이고 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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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역시 공심위에 제출한 의정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의정활동과 앞으로의 계획)
초선으로서 활동해본 바 농촌의 어려운 환경과 인구고령화 탓에 날로 어려워져만 가고 있는 농촌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역의 균형 발전과 노인복지 차원에서 희망을 불어넣어서 사람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볼까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군민과 소상공인들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도움이 되고자 타 시군들은 군비 지원을 통해서 주민을 군비 등을 보태서 보편적 지원하고 있었지만, 장흥군은 선별적 지원만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몇 번의 5분발언과 집행부를 설득해서 재난 지원금을 보편적 지원금으로 전 군민에게 지원하게 한 바도 있습니다.
소,상공인 지원조례와 교복지원 조례, 양봉농가 지원조례, 연안자망 협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회칙과 조례를 제정해주고 예산을 세워주도록 주도한 일도 있습니다.
무산김 물김생산자들의 생계를 위하여 위판장과 군의 지원을 행정사무 감사 시 지적해서 지원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을 해준 일도 있고
장흥문학상 지원조례를 제정한 바도 있습니다.
지역이 균형 발전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되게 하려면 지방의회가 확실한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더불어민주당이 재 공천을 주셔서 지역의 군민들에게 재선의원으로 선택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저는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첫 째,
광주권, 목포권, 순천권으로만 개발의 중심축이 되어 있는 것을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장흥, 강진, 보성, 고흥을 전남의 중남부권 산업관광 중심 도시로 발전시키는 대안을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둘 째,
거기에는 우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문화적 지리적 관광, 산업기반들이 출중합니다.
가사문학의 발원지이고 현대문학의 산실인 장흥, 남도답사 1번지의 강진, 차 문화와 소리문화의 보성, 항공우주기지로서 천혜의 관광산업요건을 갖춘 고흥 등을
장흥과 고흥으로 연륙교를 놓음으로써 1시간 20분의 거리를 15분으로 단축시키고, 항공우주기지의 배후 첨단 산업단지도 유치해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남부권 중심 산업,관광도시가 된다면, 전남 어느 곳도 30분 이내 코스 교육 도시로 발전할 수도 있고, 주거 환경 여건을 개선한다면, 주거문화 도시로도 환경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장흥군의회
백광철의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