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향 나무처럼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
부서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 나무처럼
마음이 맑은 사람은
아무리 더러운 세상에서라도
그 마음 흐려지지 않는다.
뱀들이
온몸을 친친 휘감아도
가슴에 독을 품지 않는
전단향 나무처럼
▦ 순천엔 잔잔이 비가 내립니다. 마른 들 마른 숲을 적시며 내리는 이 비가 늘 쫓기는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도 촉촉하게 적셔 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날 지친 사람들이 모여 김치전 한 조각이라도 나누며 그동안 차마 말 못하고 살아온, 가슴을 짓누르는 바윗덩이 같은 이야기 보따리도 풀어놓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의지처가 되어 주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어려워도 어렵고 외로운 사람끼리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간의 고통과 슬픔이 즐거움으로 바뀌고 생기가 돌며 마음 풀어 놓을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용기도 돋아오를 것입니다. 그곳이 허름한 시장 귀퉁이 주막이건, 채소전이나 생선전이건 어느 노가다꾼의 땀내 나는 작업복이 쌓인 집안이건 그곳은 따뜻하고 성스러운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보름날 시민단체 일을 하는 몇몇이 모여 앞으로 해 나갈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순천에 있는 중앙시장을 거쳐오다가 남문다리 옆 전봇대에 기대어 갈치와 꼬막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책을 읽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찬바람 속에서 군용 방한모와 비슷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추워서 동동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꼬막을 사라고 애원하는 작달막한 그 여인.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보곤 웬일이야! 하더니 손을 잡고 끌며 횡단보도를 건너 건너편 약국 앞에서 풀빵을 굽는 아주머니에게로 갔습니다. 거기엔 일을 못하고 돌아온 일용 잡부 같은 사내도 둘 있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라방이라고 소개를 하더니 종이컵에 늘 준비해 놓고 마시던 소주를 가득 따라 주었습니다. 안주는 그들이 파는, 바로바로 굽는 풀빵과 꼬막이었습니다. 찬 바람 속에서도 소주잔을 서로 채워주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추위도 잊었습니다. 풀빵 굽는 아주머니는 갈쿠리로 뜨거운 기계를 두드리며 처녀 때 많이 불렀음직한 동백아가씨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끼리 모여도 그날은 외롭다는 생각도 춥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대승사 뒷길에서 미용실을 접고 옷가지들을 파는 친구에게 책 한 권을 주니 새로운 털모자 하나를 씌워 주었습니다. 그날은 오곡밥은 못 먹어도 정말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행복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외로워도 서로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 주는 것도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입니다. 늘 처량하게만 보일 것 같은 나에게도 행복이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커다란 검은 바위들에 가려 내 행복을 내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 출처 : 인도 잠언시집 '수바시따'(재연스님 엮음. 자음과모음)
- 수바시따 : 인도 초기경전으로 시노래로 전해진 명언
- 선율 : 홀로 앉아서
- 사진 : 화가 Fernand Hick의 작품
첫댓글 마음의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