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fzer-H55Lc
약 1:5,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신다(God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
대학교에 가면 등록금을 내야 합니다.
큰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학금을 내고 등록했더니, 학교에서 학과 항생운영비를 내라고 학생회에서 용지가 나왔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 학과 운영비가 등록금에 포함되어 있어서, 등록금만 내고 싶어도 받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학과 운영비를 내야만 했습니다. 큰 아이의 학과 운영비는 30만원이 넘었습니다. 아이에게 낼 필요가 없다고 해도, 내야 한다고 조릅니다.
결국 아이가 학교 장학금을 받으면 대체할 테니, 학과 운영비를 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니 운영비를 내 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꾸짖고 후히 주려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인생의 경험이 조금 도 많다고 아이에게 함부로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저의 잘못입니다. 기도해 주면서 말씀으로 권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해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속성 2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실 때는 ➊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하나의 속성은 주실 때에 ➋꾸지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두 가지 성품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첫째, 믿음의 시련이 닥칠 때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늘 본문의 주 단어 중 하나는 “부족”입니다. 4절에서 이미 이 단어가 언급되었습니다.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닥치는 “믿음의 시련”(3)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험’(test)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했듯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시험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은 그 시련을 잘 이겨냈습니다. 오래 참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히 6:14,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사도 바울이 창세기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창 22:16~17,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은 ➊시험하시고, ➋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고, 그러면 ➌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욥이 풍자하여 말하기를 지혜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욥 28:12,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그런데 잠 1:7은 지혜를 얻는 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받게 될 것(수동태)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에서 이 지혜는 믿음의 시련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시험을 인내로써 온전히 이루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험문제를 냈으니, 하나님께 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답을 가르쳐 주겠으니,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유대인의 지혜문학인 솔로몬의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7:7, “내가 하나님께 구하였디니 나에게 지식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지혜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7:21,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를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지혜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 마음 전부를 다해 하나님께 간청하고 애원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시련이 닥치면 그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견딜 지혜를 주십니다(고전 10:13,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둘째, 하나님의 속성1: 후히 주십니다.
5절 “..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➊모든 인간에게는 예외 없이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주고 싶어도 모든 사람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후히 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두 마음을 갖습니다. 주고도 후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만큼 주면 됐지” 하고 한계를 정해 버리곤 합니다. 8절에서는 “두 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➋하나님은 여러분과 전혀 다릅니다.
“후히 주신다”는 히브리어, ‘하프로스’는 라는 말은 ‘주저하지 않고’, ‘확실하게’, ‘바보스럽게’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확실하게, 정말 바보같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두 마음”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련이 닥치면, 무조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 때는 특별히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➊지혜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➋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또한 여러분이 따라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롬 12:12~13,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셋째, 하나님의 속성2: 꾸지지 않으십니다.
5절 “..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➊‘꾸짖다’는 말은 ‘모욕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분사입니다.
이 단어는 ‘욕설을 퍼부어 되고 해롭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자주 관용을 베풀고 너그러워야 한다고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베풀지는 않고 지나치게 꾸짖기만 한다. 그는 입을 열 때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대하듯이 말한다”.(Sir 20:14~5)
사람들은 이렇게 꾸짖고 욕설을 퍼부어 되고 해롭게 합니다.
그런데 ➋하나님의 속성은 주실 때에 즉시 자발적으로, 너그럽게 은혜롭게 주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서 남김없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기꺼이 들으시고 또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➌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요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렘 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➍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을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후히 주십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십니다(눅 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