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준비 / 조미숙
시아버지 제사가 있었다. 간단하게 시장을 봐 왔다. 졸지에 막내딸에서 큰며느리로 역할이 바뀌면서 제일 애먹는 일이 명절과 제사였다. 결혼 초에는 내가 하는 일은 전을 지지는 것이 전부였다. 시어머니는 새벽에 나물을 해 놓고 일하러 간다. 시장에서 남편과 가게를 하고 있어서 명절 준비를 미리 해 놓는다. 손도 빠르고 음식 맛도 좋았다. 나와는 정반대였다. 난 결혼할 때까지 손끝 하나 까딱 안 해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물론 어려서부터 밥은 해 먹었지만 반찬은 엄마 몫이었다. 서울에서 자취하면서는 함께 사는 작은언니가 다했다.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 늘 꾸지람을 받느라 명절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책잡혀 시어머니 앞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집안에 일이 생겨 우리 집으로 차례를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제사도 모시게 되었다. 시댁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 어찌됐던 내 요량으로 음식 장만하면 될 터였다. 그동안 음식 솜씨도 늘어 준비하는 것은 별일 아니지만 다만 문제는 나물을 맛있게 무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내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특히 도라지의 쓴 맛을 없애기가 힘들었다. 소금에 바락바락 주물러도 보고, 삶아도 보았지만 특유의 쓴 맛은 잡지 못했다. 거기에 금방이라도 밭으로 돌아갈 것처럼 늘 뻣뻣하게 살아있었다.
고사리는 제대로 삶는 것이 관건이다. 어쩔 때는 너무 안 삶아서 질기기도 했다. 탱글탱글한 게 적당한데 매번 이것을 못 맞춘다. 거기에 잘못하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나물이 되기도 한다. 간을 맞추려고 간장을 계속 넣어도 고사리는 간이 안 배고 따로 논다. 제아무리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도 아리송한 맛이다. 시금치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정답을 찾지 못했다. 음식 잘 한다는 말은 내 실체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게다. 못하는 것들이 정말 많은데 말이다.
언제부터 지인이 육수를 내서 나물에 쓴다는 말을 듣고 따라해 봤다. 멸치와 뒤포리(밴댕이), 다시마 등의 재료를 넣고 푹 끓인다. 요즈음에는 시중에서 파는 육수팩을 사용한다. 조금씩 맛이 달라졌다. 여전히 제일 어려운 게 도라지나물인데 오늘 제사에서는 성공했다. 천일염으로 박박 주물러서 물에 담갔다가 다시 한 번 더 해서 삶은 뒤에 볶았더니 부드럽고 쓴맛도 없어 맛이 있었다. 물론 도라지나물은 알싸하게 쓴 맛에 먹는다지만 난 항상 너무 과했다.
생선도 항상 문제였다. 제수용을 사다 쓰긴 하지만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병어 한 마리가 보통 만 오천 원 정도였다. 제수용품은 홀수로 준비하다 보니 최소한 5마리는 사야 한다. 시댁에서는 병어, 조기, 장대 등 세 가지를 상에 올렸다. 시어머니가 하던 대로 나도 따라 했다. 전이나 나물 등은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하긴 하지만 그래도 보고 배운 대로 하려고 한다. 친정에서 하던 거와는 반대일 때도 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다. 특히 우리 집에는 제사가 없었다. 제사상은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생선 값을 아껴 보려고 생물을 사다 말리기로 했다. 누구한테 물어 볼 생각조차 안 하고 덜컥 조기를 사왔다. 그냥 그물망에 넣어 걸어두면 끝이라 생각했다. 결론은 그냥 다 썩혔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니 하룻밤 선풍기 틀어놓고 다음 날 아침 꼬들꼬들해지면 냉동실에 넣으면 제일 괜찮다고 했다. 이번에 큰마음 먹고 다시 말렸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뒷베란다에서 창문을 열어 두고 뒤집으면서 이틀을 말렸다가 냉동실에 넣었다. 다행히 이상야릇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소금에 오랫동안 절여 간이 좀 짜긴 했지만 성공했다. 그런데 조기는 그만 비늘을 제거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칼등으로 살살 걷어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27년차 주부로,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그만큼의 명절과 제사를 지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요령도 생겼지만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명절에는 남편에게 차례를 지내지 말자고 했더니 웬일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며칠 전에 남편은 나에게 이번 제사도 안 지낼 거냐고 물었다. 난 차례상을 안 차렸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얼굴 한번 뵌 적이 없긴 하지만 며느리 된 도리로 한다고 했다. 제사에는 목포에 사는 작은시누이네만 오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저녁까지 먹고 오기 때문에 따로 장만할 음식은 없다. 이젠 음식 장만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힘들기는 해도 늘 혼자 해 왔던 일이다. 그냥 시장에서 사 올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제사의 의미가 사라진다. 난 오늘도 제 할일을 다했다.
첫댓글 저도 일 년이면 제사를 여러 번 지냅니다.
다행이라면 엉터리로 차려도 누구에게도 야단맞지 않는다는 거죠.
그저 차려 내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여기는 분위기랍니다.
왜냐면 막내아들에게 시집왔는데 다 제 차지가 되었거든요.
제사 지내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준비 과정이나 시행착오는 충분히 저도 공감이 됩니다.
와! 대단하시네요. 집사람이 이글을 보면 기겁하겠어요. 우리집은 제사가 안 지내거든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글에서 본 선생님은 김장 김치도 맛있게 담그고, 산에 가실 때 찰밥으로 도시락도 부담 없이 싸고, 자녀들에게 보낼 반찬을 쉽게 척척 해 내시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경지에 다다른 거였네요.
제사 좀 간단히 하자고 해도 아내는 뭘 그렇게 많이 준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까끔 다투기도 해요.
요즈음은 그냥 산소에서 지내는 집도 많드라고요.
한 번도 준비 안해봤지만 힘들다는 건 알아요. 선생님 대단하세요.
저는 손이 커서 제사 음식을 많이 장만하니 문제가 된답니다. 제사를 소재로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쓰시는지 보고 배웁니다. 늘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