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매력에 반했다 / 최종호
그간 뉴스 이외에는 그다지 즐겨보는 방송이 없었다. 하지만 3월부터 매주 금요일이 다가오면 은근히 기다리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저녁 아홉시부터 11시까지 방영되는 ‘팬텀싱어4’가 그것이다. 시즌 3까지는 순조로웠으나 코로나 시국 때문에 무려 3년 만에 열리는 노래 경연대회다. 이전까지는 열렬한 시청자는 아니었으나 아내도 그 시각을 기다린다. 1인 무대를 시작으로 2인, 3인을 거쳐 최종 네 명이 한 팀을 이루어 4중창으로 실력을 겨루는데 우승팀은 2억원, 준우승은 1억원의 상금을 받는다.
지난 3월 10일, 본선 진출 1라운드를 앞두고 예선전이 열렸다. 참가자 중에는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학생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유학하다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온 젊은이도 있었다. 유럽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경력자도, 현재 국내에서 잘나가는 뮤지컬 배우도 여럿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음악 강사, 합창 단원, 국립 창극 단원 등 하나같이 쟁쟁한 우승후보들이었다. 성악이나 뮤지컬 쪽에서 유명한 경력 26년차 카운터테너도 있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그를 알아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예선에는 모두 74명이 출연했다. 이를 4조로 나뉘었고 사회자가 이름을 부르면 무대에 나가 차례대로 기량을 펼친다. 모두 큰마음을 먹고 나왔는지 긴장한 모습도 역력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가 하면, 이마에 땀을 흘리기도 하고 주먹을 단단히 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혀 안타까움을 더했다. 해당 조의 발표가 끝난 뒤에는 여섯 명의 심사위원 모두에게 합격을 받아야 본선 1라운드로 직행한다. 그렇지 못한 참가자는 오디션을 마치고 프로듀서가 회의를 통해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데 34명이 진출했다.
그 중에는 은행에서 자산가들에게 세무 컨설팅을 해주는 특이한 경력자도 있었지만, 특별히 내 눈길을 끈 이는 아이돌 출신 가수 조진호다. 목소리도 감미로운데다 얼굴도 곱고 예쁘장하게 생겼다. 명성이 있는 만큼 출연을 쉽게 결정한 건 아니라며 “팬텀싱어만큼 전율이 큰 프로그램은 없다. 부딪히면서 몸으로 느끼고 싶다.”고 출연하게 된 동기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는 예선에서 다음 라운드로 직행하지 못했다. “너무 빠른 곡을 선택해서 가사를 따라가기에 바빴다.”라는 평을 받았을 때 불길했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본선 1라운드 포지션 배틀(바리톤, 테너, 뮤지컬, 베이스, 국악과 가요 등 성부가 같은 참가자끼리 대결)에서도 국악인 김수인에게 밀렸으나 최종 탈락자 명단에는 들지 않았다. 위기에 몰려서인지 본선 2라운드 두엣 대결에서부터 숨어 있는 진가를 발휘했다. 팀이 정해지면 함께 호흡을 맞출 사람을 생각하여 곡을 선정하고 어떻게 재해석하여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화음을 어우러지게 할 것인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노래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안무까지 짜내서 이끌어 가는 구성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았다.
3라운드 트리오 대결, 본선 4라운드 4중창 대결을 두 번 거치는 동안 부침을 거듭했으나 천신만고 끝에 결승전에 올랐다. 이중에는 실력이 월등한 성악가도 있지만 팀원이 잘 이끌어 주어 운 좋게 올라온 이도 있다. 아이돌 출신 가수처럼 위기에 몰렸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던 뮤지컬 배우도 있다. 이제 12명이 3조로 나뉘어 대결을 펼치지만 순위만 가려진다. 그 동안 여러 대결을 거치는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며 형제처럼 지냈던 팀원이 탈락하면 아쉽고 미안한 마음에 보는 사람마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결승을 앞두고 아내는 나와 다르게 성악가 출신의 그 뮤지컬 배우가 속해 있는 팀을 응원했다. 그도 초반에 두 번이나 탈락 위기에서 벗어나서 여기까지 왔는지 멋있게 보였던가 보다. 대학에서 발성법을 정통으로 배워서 그런지 곡을 선택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이 있고, 팀원을 이끌어가는 실력이 탁월했다. 첫 번째 경연에서는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 가수 출신의 팀이 상대적으로 점수가 가장 낮게 나와서 아쉬웠으나 마지막 대회를 남겨두고 어떤 작전을 펼칠지 자못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도 다음 주 금요일이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 동안 팬텀싱어에 도전한 젊은이들이 너무나 대견했다. 그간 쌓아온 명성에 아랑곳하지 않거나,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꿈을 찾아 도전장을 내민 젊은이들이 많아서다. 팬텀은 ‘세상 나오지 못한 숨어있는 실력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다음 주면 드러난다. 남은 결승 2회전에서 순위가 어떻든지 모두 명성이 드높아졌다. 그렇더라도 이왕이면 내가 응원하는 이가 있는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매번 그의 미성과 인상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응원했기에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첫댓글 아이구, 팬텀싱어 팬이셨네요. 다음 주가 기다려집니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고 하잖아요. 들으면서 감동할 때가 많답니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답니다.
하하. 교장 선생님도 팬텀싱어 팬이셨군요.
'조진호'를 응원할게요.
음악은 좋아하지만 경연은 즐겨보지 않습니다.
노래 자체보다 '사연팔이'를 너무 하는 게 싫어서요.
트로트 경연과는 품격이 달라요. 아니 비교할 수가 없죠. 몇 옥타브를 오르내리며 전하는 음의 깊이가 다르니까요. 그런 만큼 때로는 많이 감동하며 듣는 답니다.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패기와 용기도 좋구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어 고맙습니다. 댓글까지 달아 주시구요.
아내 분은 혹시 김지훈 씨를 응원하시는 걸까요? 저는 두 분 다 응원하거든요.하하
금요일 아홉 시부터 열한 시 기억하고 있다가 봐야겠어요. 자세하게 쓰신 선생님의 글에서 그동안 예선은 다 봤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팬텀 싱어 팬이랍니다.
노래는 못해도 노래 프로그램은 죄다 챙겨 보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