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민연합 대표 최태열
세계사에서 시민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근대부터였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봉건왕조와 교조적 종교에 의하여 개인의 자각을 바탕으로 한 시민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르세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하여 천부인권을 가진 개인이 탄생하였고 그렇게 깨어난 개인들이 사회의 변혁을 위하여 뭉쳐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면서 시민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이란 합리적 의사결정능력을 가진 공화정의 구성원으로서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을 뜻한다. 대중과는 다른 개념이다. 대중은 자발적 의사결정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누군가의 조정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따르는 다수를 뜻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였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조정을 받는 어리석은 다수를 뜻하는 것이다. 직설적으로는 우중이라 표현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현되려면 다수의 시민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다수의 대중만 존재한다면 그런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전락하여 결국 소수의 지배자에 의한 전제정치로 추락하게 된다.
미군이 1946년 7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70%는 사회주의, 7%는 공산주의, 14%는 자본주의에 찬성한다고 하였다. 그 당시 한국인의 대다수가 개인의 소유권을 존중하는 우파보다는 재산의 공유를 지향하는 좌파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대중들의 그러한 의식과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미군정하에서 이승만이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였던 것은 차라리 기적이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의식은 어떠한가. 소위 좌파와 우파, 중도파가 3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인 중에 시민이라고 부를 만한 세력이 과연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한국인 대다수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시민의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토크빌은 미국을 둘러보고 “미국의 민주주의”(1835년)라는 위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프랑스혁명의 혼란 후에 등장한 루이 나폴레옹에 의해 잠시 외무대신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던 토크빌은 신생 미국의 활기찬 사회상을 보고 프랑스의 변혁을 기대하면서 그 책을 저술하였다. 토크빌은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없는 미국이 저토록 활기찬 국가가 될 수 있는 비결은 시민사회의 등장이라고 보았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독립국가를 건설한 미국이 전제정치로 빠지지 아니하고 참다운 민주정치체제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결정에 참여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수많은 타운마다 존재하는 다수의 시민단체들이 그런 시민들을 양성하고 위정자들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런 민주주의가 다수의 어리석은 대중에 의한 중우정치로 전락할 위험은 상존하고 있음을 토크빌은 강조하였다. 다수에 의한 폭정이 등장할 위험에 대하여 토크빌은 특별히 주의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교육과 조직화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은 시민인가 대중인가. 나는 대다수의 한국인은 대중이라고 본다. 그들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 언론에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뉴스에 포획되어 그것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역사와 이념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한 한국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인들마저 대다수가 그렇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민 다수가 시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와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여야 하며,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이념에 대한 학습도 제대로 하여야 한다. 특히 국민을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은 그런 학습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고 번호만 보고 찍어왔던 지방선거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민단체의 역할은 그런 시민들을 길러내고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