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추억』
우리 시대 대표 주자
33인을 키운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ㆍ딸
그 영원한 윤회
우리 시대 대표주자
33인을 키운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도리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
아버지가 허공을 올려다보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어머니의 명령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러
거리로 나섰다가
술집에서 만난 아버지는
홀 전체의 술값을 다 내더니,
종업원을 불렀다.
“야, 2층은 얼마냐?”
‘나는 언제나 좀 저래보나…’
아버지가 부러웠다.
그것이 아버지의
가엾은 ‘광야’였다.
우리 시대의 문사 김훈은 언론인으로, 문필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아버지 김광주 선생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엄혹한 사회의 톱니바퀴에 끼인 채 제자리를 맴돌며 주변을 서성이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점점 늘고 있다. 아내가 없으면 금세 ‘폐인’이 되고 자식들과 선뜻 대화를 잇지 못하는 아버지들은 가정에서도 어느덧 ‘왕따’가 된 듯하다.
안방 아랫목에 정좌하지 못하는 오늘의 아버지들을 바라보며 이제 하얗게 빛바랜, 그러나 한없이 듬직했던 우리의 아버지들을 떠올려 본다. 그 추억 속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디딤돌이요, 버팀목이요, 큰 산이었다. 때로는 죽마고우처럼 다정하게, 때로는 묵묵히 행동으로, 때로는 회초리를 들고 엄정한 역할 모델을 자임했던 우리의 아버지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시나브로 좁아져가고 있는 아버지들의 자리를 복원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람직한 아버지의 상을 제시하고자,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주자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고백한 추억 모음집이다.
이제는 아버지의 나이에 이르러 음으로 양으로 현재의 나를 가능케 한 어제의 아버지를 편편이 떠올린 아련한 추억들은 모두 33편이다. 첫 번째 장 [아버지 ― 내 삶의 디딤돌]에는 마치 친구 같은, 낭만적이고 따뜻한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두 번째 장〈아버지 ― 내 삶의 버팀목]에서는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거나, 스승 같은 아버지에 관한 추억들이 담겨 있다. 세 번째 장 [아버지 ― 내 삶의 큰 산]에는 외길고집과 권위로 바로 선 대쪽 같은 아버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반 정도(고도원·김명곤·김채원·김혜자·김 훈·박중훈·베르나르 베르베르·사석원·신봉승·심경자·안규철·이연수·이현세·장영희·정양모·정호승·진명)는 조선일보에 같은 제목으로 게재되었던 글이다. 소설가 김훈은 지면 관계상 못다 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냈다.
[아버지의 추억]은 기억을 되짚어 느린 걸음으로 서른세 개의 문을 통과하며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아버지의 길을 다시 찾는 구도(求道) 여행이다. 각계의 대표주자 33인이 그들의 뿌리를 찾는 동안, 앞만 보고 내달리던 우리 역시 이제는 희미한 각자의 ‘아버지의 추억’에 젖어 ‘나는 어떤 자식이었고, 어떤 아버지인가?’ 하는 회한과 성찰의 걸음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윤회하듯 세대를 거듭하는 장구한 세월의 향수와 함께 지난날의 사회적 풍속도와 가정의 분위기를 음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 우리시대 대표 33인
정운찬(전 국무총리) / 장영희(수필가·번역가) / 김 훈(소설가)
정호승(시인) / 신경림(시인) / 김혜자(연기자)
사석원(화가) / 고승덕(변호사) / 장사익(소리꾼)
이현세(만화가) / 베르나르 베르베르(소설가) / 고도원(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김명곤(연기자) / 유근상(서양화가) / 진 명(종교인)
이종구(이종구심장클리닉 원장) / 신봉승(극작가) / 권홍사(대한건설협회 회장)
강석진(CEO컨설팅그룹 회장) / 김채원(소설가) / 천호균(기업인 쌈지 대표)
김현탁(공학박사) / 정양모(전 국립박물관장) / 송 자(명지학원 이사장)
고 건(사회통합위원회) / 로버트 김(전 미 해군정보국 군무원) / 이 석(조선조 황손)
심경자(한국화가) / 이연수(모란미술관장) / 설희관(시인)
김 홍(전 KBS 부사장) / 안규철(조각가·설치미술가) / 박중훈(영화배우)
나에게는 아버지가 네 분이다.
생부·양부·
스코필드 박사·조순 선생님.
나의 몸과 나의 정신을 키운
아버지들이다.
이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 동거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신다.
더 부지런하게,
더 정의롭게,
더 사랑하며 살라고.
( '정운찬전 국무총리 편' 중에서)
아버지는 늘 “난 널 믿는다.
넌 잘 해낼 거야”라고 격려해 주시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입니다.
만일 다음 세상에서 나에게
선택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내 선택을
아버지가 받아들이신다면,
나는 다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가 편' 중에서)
해방 전 단신 월남,
이곳에서 자수성가하실 때까지
아버지의 삶은 끝없이 외로운 고투였다.
하지만 지금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선량하고 평화로운 눈매로
웃으시는 모습 그대로다.
매일매일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힘든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재주를 지닌,
맑고 밝은 품성의
영원한 소년 모습이시다.
( '장영희 수필가·번역가 편' 중에서)
처음 노래하던 날 아버지는
객석의 맨 앞자리에 앉아
무대를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앞에 선 것이 외람스럽고
당신의 밝은 귀가 두렵던 것도 잠시,
나는 그날 그냥 신나고 행복했다.
넓고 깊은 아버지 품속에서
좋은 양분 먹고 성장해서
오늘날까지 온 내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장사익 국악소리가 편' 중에서)
내가 아주 오래전
어느 고아원에 갔을 때,
그곳 원장님이
“아버님이 사회부 차관으로 계실 때
우리 고아원을 그렇게 도와주셨는데,
이제 따님이 오셨군요”
하며 반기셨습니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입니다”하시며.
아버지를 닮은 딸이 되고 싶습니다.
( '김혜자 연기자 편' 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의 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주신
책을 읽어내려 가다
그 책에서 아버지가 그어놓은
밑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전류에 감전된 듯한
뜨거운 느낌을 받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어놓은 밑줄에서
살아 있는 아버지의
숨결을 느낀 것이다.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편' 중에서)
[예스24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