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예원 | 날짜 : 09-06-06 13:06 조회 : 1869 |
| | | 왜 브람스 곡일까!
이 예 원 소식이 끈긴지 10년이 지났는데, 나는 유럽 방문이 있을 것 같아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소식을 물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아들집을 방문하려고 한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루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기대보다도 빨리 답장을 받고 이번 기회에 만날 수 있을런지! 루이는 CD Brahms piano concerto N01 in D minor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만일 없다면 보내주겠다는 메일이 왔다. 언제 국제 우편물을 기다렸다가 도착해서 들어 보겠는가 하는 급한 마음에 즉시 새로 샀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지리 벨로라벡과 피아니스트 이반 모라벡이 연주한 브람스 피아노 콘체르토는 어느 연주자들 보다 가장 밝게 표현 되었다고 평가가 되어 있다. 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중요한 동기가 있다는 그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썼다. 1악장은 한참 후에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화답하듯 명확한 타건 과 관현악이 주고받는다. 온화한 울림은 자기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보이려는 듯 환상곡으로 이끌어 간다. 2악장은 숨을 다시 고르듯 차분하게 그리고 감정을 절제 하는 표현의 여유를 보여준다.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강렬함은 잠깐이다. 과거를 회상하듯 평화스러움 속으로 빠져든다. 3악장은 용기를 발휘하려는 듯 힘이 있고 분명한 손가락 움직임을 느낀다. 무슨 사연을 보내오는 것처럼 미래에 잠겨 음률을 음미한다. 나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내 멋에 취해 명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브람스 곡들 중에 하필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없어 여러 번 들었던 곡은 아니다. 브람스 교향곡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 협주곡, 피아노 소품 등이 있 다. 브람스 자장가 ‘잘 자라 내아기 내-귀여운 아기’로 시작한 이 노래는 내가 아이들에게 불러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장가 노래이다. 루이는 서울에서 4년의 근무를 마치고 본국인 파리로 돌아갔다. 그가 서울에 있는 불란서 문화원에 근무하는 동안 문화적 갈증을 모르고 지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이제는 잊은 지 오래다. 무슨 관련이 있는지 브람스 곡을 챙기는 짧은 메일이 왔다. 실제로 평생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가 열네 살 연상인 클라라 슈만을 수 십 년간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는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의 네 번째 소설이다. 1954년 19세 나이로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강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불행이 언제나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우리의 일상을 배경으로 난해하고 모호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진솔하게 그려 냈다. 2009년 4월 연극배우 박정자의 클래식 모놀노그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음악영상소설과 연극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1인극이었다. 삼각관계인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미묘한 사랑과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1960년대 이후 한동안 유럽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소설 및 브람스 음악과 더불어 입에 오르내렸다. 브람스(1833-1897)는 진정으로 슈만을 자기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모셨던 것이다. 슈만이 죽었을 때 클라라는 35세요. 브람스는 24세였다. 아직도 젊은 미모의 여인, 자기의 예술을 누구보다도 이해 해주는 명 피아니스트에 마음이 쏠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창작의 초안을 클라라에게 보여준 후 그 의견을 듣고 초연을 했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 소나타 작품 2>를 그녀에게 헌정 한다. 클라라에게 사모의 마음을 존경, 경애로 부르며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간다. 일생 동안 그녀를 흠모하면서 독신으로 살다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 생을 마감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브람스가 21세 때인 1854년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의 충고와 의견을 참고로 개작을 거듭하다가 1858년 2월에야 3악장 전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처음에 교향곡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장중한 관현악이 전개되어 피아노가 있는 교향곡이라고도 한다. 관현악의 강주로 1악장이 시작되고 피아노 독주는 연주가 시작 된지 4분 안팎이 돼서야 나온다. 음악가들 중에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가장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브람스라서 뜻밖에 날아온 메일을 읽고 내 과민반응은 계속된다. CD를 보내겠다고 하면서 자기에게는 중요한 동기가 있다는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루이는 서울에 근무 할 때, 일 년에 한번 연극 활동을 하면서 나를 초대 했다. 그때 미리 보낸 한국어 번역된 투박한 연극 대사를 읽어 본 후, 나도 해마다 참석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여자대학 강당을 빌려서 하루 한번 공연을 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연극이었다. 본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연극 아마추어 협회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사진이 왔다. 내년 2010년 10월에 그는 작은 도시들을 돌면서 연극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대본이 서울에 근무했을 때 쓰기 시작한 것이 라고 한다. 그가 쓴 “요정들에게 말하지 말아요.” 이 공연의 첫 장면에 “Brahms Piano concerto No1 in D minor" 곡이 흐르면서 무대가 시작된다고 했다. 나는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 소설까지 생각하면서 오해에 빠져 들어 간 까닭이 무엇일까! 착각은 자유라더니 음악을 듣는 동안 행복했다. |
| 박원명화 | 09-06-07 08:04 | | 역시 이예원선생님의 음악적 관심이 예사롭지 않은 글을 만들어내셨군요,. 음악과 문학의 길을 오가며 좋은 소재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한 곡의 아름다운 예술의 완성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사강의 소설을 좋아한답니다. | |
| | 이희순 | 09-06-07 16:47 | | 루이는 또 다른 브람스일까요, 그렇다면 클라라 슈만은... 선생님의 글은 왜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떠오르게 하는지요. 문학도, 음악도 심혼을 울리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시대를 초월하여 불후의 명작으로 회자되는가 봅니다... | |
| | 이예원 | 09-06-07 18:46 | | 박원명화, 이희순 선생님, 글을 쓰자마자 올렸습니다. 잠깐 사이에 세월은 속력을 다해서 달려 가버렸는데 마음은 청춘에 머물고 있어 음악 탓인지, 문학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노트북을 들고 가려고 합니다. 네델란드의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인간미를 글로 승화 시킬 수 있다면 다시 또 글을 올리겠습니다. | |
| | 임재문 | 09-06-07 19:15 | | 이국적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음악과 문학과 그리고 미술도 함께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들 다 함께 오케스트라처럼 그렇게 느껴보고 싶어 집니다. 고맙습니다. | |
| | 최복희 | 09-06-08 20:31 | | 이예원 선생님! 격조 높은 글을 쓰셨군요. 음악과 문학 모두 아름다운 예술이지요. 그 어울림이 있으면 더욱 좋은 결과를 낳겠지요. 노트북을 들고 해외 여행을 떠나시는 선생님 모습 참 멋지십니다. 그래서 늘 마음도 소녀 같으신가봐요. 더욱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 |
| | 이예원 | 09-06-10 10:48 | | 임재문, 최복희. 선샘의 의견을 읽고나니 글을 더욱 잘 쓰도록 온 힘을 다 하겠습니다.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여기 있다는 전체가 글감인데 늘 머리속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정희승 | 09-06-12 12:24 | | 음악과 사랑과 문학이 어우러진 글을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름이 암시하듯 예술의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루이와는 知音이겠지요? 서로가 직조하는 화음이 아름답습니다. | |
| | 이예원 | 09-06-13 13:03 | | 정희승 선생님 '악마의 협력 없이는 예술작품의 창작은 불가능하다. A. 지드의 말처럼 나의 창작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착각에 빠져 영혼을 위협 받곤 하는 가운데 나온 글입니다.감사합니다. | |
| | 하재준 | 09-06-17 17:56 | | 이예원 선생님, intelligentsia 다운 글을 잘 읽었습니다. 고향이 같은 분이라서인지 항상 정이 가는 분입니다. 더욱이 이 선생님이 중학교에 들어갈 당시 수재 아니고선 아무나 입학할 수 없는 '전주여중' 그 학교출신인 이 선생님이기에 더욱 실력을 인정할 수 있고 그뒤 서울에 오셔 공부하셨지요. 이 선생님 오빠들이 전주에서 얼마나 인심을 보였으면 그같이 전주 제일의 사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까요? 그 형제분이 모두 넉넉한 인심과 정의 소유자이시지요. 이런 마음으로 늘 이 선생님을 대하니 더욱 정이 갑니다. 그러던 중 오늘 쓰신 글을 읽고 보니 그간 지닌 잠재의식이 자연스럽게 표출 되나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어찌보면 예술이요. 음악이지요. 우리 몸이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호홉도 리듬이요. 감정도 리듬이 아닙니까? 희노예락 말입니다.하나에서 열까지 리듬을 잃었을 때(깨질 때) 절망이요 죽음이 아닐까요? 이것을 잘 살려내는 것이 멋쟁이지요. 이 선생님은 정말 멋쟁이이십니다. 늙어도 멋이 흐르시는 분이라고 나는 봅니다. | |
| | 이예원 | 09-06-18 22:52 | | 하재준 선생님, 한 작가를 비평하기는 쉬우나 그 작가의 진가를 평하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저를 너무 잘 보고 있다는데 놀랬습니다. 저는 형제들의 특별한 사랑으로 살아와서 오빠, 말만 나와도 내 눈은 젖어 옵니다. 작가중에 저를 잘 이해하시니 저 또한 정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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