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중에서 피부질환의 역사는 매우 긴데, 주로 중금속에 의한 피부궤양에 대해 알려져 왔다. 서기 100년대에 중금속에 의한 피부궤양이 기술되었고 이후 광산, 제련, 무기제조, 유리제조, 금은세공, 주조 등의 작업에서 중금속에 의한 피부궤양이 많이 보고되어 왔다. 다른 직업성 피부질환에 대해서는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유병률이나 발생률과 같은 직업병 통계를 제대로 산출하는 국가들의 자료에 의하면 직업성 피부질환은 전체 직업성 질환 중 약 20~60%를 차지하는 흔한 직업성 질환으로 근골격계질환 다음으로 많은 직업병이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경미한 경우가 많아 보상이 필요하지 않은 사례도 많은데, 선진국에서는 보상 건수도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1년도에 직업성 피부염이 네 번째로 많이 보상된 질병이었고 독일은 2001년도에 세 번째로 많이 보상된 직업병이다. 이처럼 직업성 피부질환은 발생률로만 본다면 매우 흔한 직업병이지만, 산업보건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피부질환은 증상이나 소견이 심하지 않고 쉽게 회복되기 되어 산재요양의 실익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산재요양 신청을 하지 않고 혼자 치료하거나 사업장에서 치료를 받아 공식 통계에 보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성 피부질환이 특수건강진단에서 유소견자로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70년대에 건강진단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직업성 피부질환 유소견자가 많이 보고되었으나, 1982년 건강진단결과에 대한 질병보고 서식이 변경된 이후 직업성 피부질환은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흔한 직업병이지만 주목받지 못해
근로자 특수건강진단을 통하여 보고되는 직업성 피부질환은 1년에 10건 내외(1996년 14건, 1998년 2건)였으나 최근에는 분류방법이 유해요인 위주로 변경되어 직업성 피부질환 유소견자 수는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업성 피부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받는 사례도 많지 않았으나 최근에 백반증, 접촉피부염 등 산재로 보상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산재요양 신청을 하여 직업성 피부염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1999년 28건이었는데, 생물학적 인자에 의한 것이 25건, 기타 원인(물, 암면, 돼지막사 청소 후)에 의한 피부질환으로 3건이었다. 28명 근로자의 직종은 제조 및 건설업 종사자가 1명이었고, 나머지는 풀베기나 숲 가꾸기에 참여하는 일용직 공공근로 종사자와 수해지원사업 등에 동원된 직장인이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간 직업성 피부질환으로 인정받은 건수는 111건이었다. 접촉피부염이 63건(56.8%)으로 가장 많았는데 옻 및 불특정 풀 종류와 같은 식물에 의한 것이 30건, 유기용제, 폐기물, 에폭시수지, 항생제, 염료, 살충제, 농약, 고무장갑, 물과 세정제, 화장품과 같은 화학물질에 의한 것이 31건이었고, 유기분진에 의한 것이 2건이었다. 화농성 연쇄쌍구군 감염에 의한 피부염증(봉소염)이 21건(18.9%)으로 그 다음을 차지하였다.
기타 벌(피부질환 및 전신성질환인 과민성 쇼크 포함)에 의한 피부염, 유기용제에 의한 백반증, 옻 및 식물에 의한 두드러기, 화학물질에 의한 다형홍반, 염료에 의한 색소침착과 피부묘기증, 유리규산에 의한 경피증, 금속 세척제에 의한 스티븐슨존슨증후군, 니켈에 의한 화폐양 습진, 고열작업에서 발생한 한포진 및 축산업자의 항생제 노출에 의한 건선 등이 있었다.
국내에는 최근 들어 산재보상 증가추세
직업병 피부질환은 외관상 눈에 띄기 때문에 직업병 심의를 요청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접촉피부염은 자극성이기 때문에 원인물질이 있고 노출부위에 피부소견이 발생하므로 업무 관련성을 쉽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요청된 직업병 심의 건 중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은 31건이었는데 21건에서 업무관련성이 확인되었다.
백반증이 9건으로 가장 많았고 크롬, 분진, 산 등에 의한 접촉피부염이 6건, 암면과 햇빛에 의한 소양증, 에폭시수지에 의한 광과민성 피부질환, 테트라사이클린에 의한 건선, 스트레스에 의한 원형탈모증, 트리클로로에틸렌에 의한 스티븐슨존슨증후군 등이 있었다.
[사례1]알레르기성 자반증
피부질환은 눈으로 보이는 질환이므로 진단이 쉬울 것 같으면서도 막상 정확한 진단은 매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질병명이 정확해야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수 있는데 질병명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업병 여부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K씨(남, 46세)는 수지공장에서 12년간 근무하면서 페놀, 포르말린 수지 등에 노출되었다.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가려움증이 나타나 I 대학병원에서 습진성 피부염으로 진단받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피부질환의 확진을 위해 S 대학병원에 특진을 의뢰하였고 특진에서 심상성(보통) 건선, 지루성 피부염으로 진단되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근로자는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결국 대법원에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았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K대학병원에서 진단한 알레르기 자반증이었다. K씨는 최초에 I 대학병원에서 진단받을 때와 특진으로 S 대학병원의 진단받을 때, 소송을 위해 K 대학에서 진단받을 때가 각각 6개월에서 1년간의 시간 차이가 있었으며 그 때마다 진단이 서로 달랐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직업병 심의 당시 피부질환의 양상이 요양신청서와 달라 특진을 의뢰하였고 그 결과를 신뢰하였다.
그러나 피부질환은 질병의 속성상 최초의 진단이 수련병원 이상의 종합병원의 피부과에서 진단된 것이라면 그 자료를 신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진단이 모호하다면 가능하면 시간을 두고 관찰하여야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례2]백반증
백반증은 생명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소홀히 취급하기 쉬우나 노출 부위의 탈색반은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고 환자에게는 대인기피증 등 정신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어렵게 할 수도 있으므로 조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화학물질에 의한 백반증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처음에 노출된 부위에 홍반과 가려움증이 있고 탈색반이 발생하여 비노출 부위로 번지는 것을 나타났다. 그러므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에서 홍반 등 피부질환이 나타나면 조기에 치료를 받도록 하고, 탈색반이 나타나면 작업을 중단시키고 피부과의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 K씨(남, 48세)는 조선소에서 분무 도장 보조작업자로 일하였는데 근무 시작 후 1년이 지나면서 양쪽 손목에서 시작하여 얼굴, 팔, 허벅지, 전신으로 퍼지는 발진과 각질 증상이 나타났다.
이후 해당 부위에 가려움증이 발생하더니 각질이 벗겨진 부위에 탈색반이 생기고 전신으로 퍼져 백반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K씨가 사용하던 에폭시계 도료에서 백반증 원인물질로 알려진 성분을 검출되었다.
직업적으로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백반증은 하이드로퀴논 함유물질이나 알킬페놀 또는 카테콜 유도체를 함유한 물질에 의해 호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물질은 기름의 유화방지제, 탈취제, 복사용지, 포름알데하이드 레진, 페놀계 소독제, 살충제, 고무풀, 자동차 연료 첨가제, 셀룰로즈 아세테이트의 가소제, 인쇄용 잉크, 합성유제, 라커, 도료, 수지 등에 함유되어 있다.
◆ 이씨(남, 39세)는 블라인드 가공업체에 입사하여 코팅도장 작업을 하였는데 작업내용은 코팅도료 제작, 코팅기계 관찰, 기계에 묻은 도료 제거 및 청소 작업이었다. 작업 9년 후부터 손에 홍반, 가려움이 있고 탈색반이 발생하더니 이마, 코, 눈썹 등으로 번져나가 백반증으로 진단받았다. 이씨가 사용하던 도료의 물질안전보건정보지(MSDS)에는 알키드계 도료에 페놀 및 하이드로퀴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례3]스티븐슨존슨증후군
피부질환은 대부분 경미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거의 없다. 그러나 트리클로로에틸렌에 의해 발생하는 스티븐슨존슨증후군에 이환된 근로자는 사망할 수 있다. 스티븐슨존슨증후군은 피부에 반점과 물집이 생기며 독성간염의 소견이 나타나 내과에서 치료받기도 한다. 이 질병은 대부분 입사 한 달 이내의 근로자에게 발생하고 아주 높은 농도에 노출된 경우에 발생한다. 치명적인 사례는 많이 발생하지 않지만,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겨 다형홍반으로 진단받는, 경미한 사례는 아직도 간혹 발생하고 있다.
◆ K씨(남 25세)는 니켈 도금 작업장에서 한 달간 일한 뒤 피부에 발진이 나타나고 입안이 헐어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이 발생하였다. 간효소치가 급격히 상승되어 있었다.
스티븐슨존슨 증후군 또는 독성표피융해괴사증 의심 하에 치료 중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부검기록에 의하면 사망원인은 전신 표피박탈의 피부병변과 그에 합병된 진균성 폐렴이었다.
K씨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용 차량을 운전하거나 도금 및 세척일을 하였다. 이 작업장에서 취급하는 물질은 도금을 할 때 사용하는 산(유산, 염산, 초산), 가성소다, 청화소다, 청화동, 유산동, 염화니켈, 크롬산, 그리고 트리클로로에틸렌이었다.
◆ L씨(남 53세)는 스테인레스강판을 작게 절단하여 세척한 후 납품하는 금속가공업체에 입사하여 한 달간 근무하였다. 이 회사는 근로자 4명이 일하는 영세 업체로 스테인레스강판을 일정한 작은 크기로 절단하여 표면가공처리 후 수저나 젓가락을 제작하는 업체에 납품을 하였다.
L씨는 절단된 강판을 트리클로로에틸렌 세척조에 넣어 세척을 하였다. 드럼통을 반으로 절단하여 만든 세척기 통에 강판을 넣은 후 호이스트로 꺼내거나 빠진 것은 허리를 굽혀 갈쿠리를 이용하여 꺼냈다.
입사 한 달 후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오한이 나면서 양쪽 어깨부터 손등 쪽으로 작은 좁쌀 같은 것이 많이 돋아났다. 피부 반점은 전신으로 퍼져갔으며 고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진료를 받았으나 계속 열이 나고 기침이 나며 온 몸과 배가 부어오르고 피부가 벗겨지는 증상이 있었다. 구강섭취 장애, 호흡곤란, 혈변과 구역질, 구토, 식욕감퇴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결막충혈, 구강부위 균열, 안면부 탈피 소견이 나타났고 전신에 붉은 반점이 나타났으며 입 안 및 항문 주위에도 나타났다.
간기능검사에서 심한 간손상의 소견이 나타났으나 바이러스성 간염 항원과 항체는 음성이었다. 패혈증이 발생하였고 약물치료로 일시 호전되었다가 혈액검사에서 항생제 저항세균이 검출되었고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