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인수위에 업무 보고
新舊 권력 충돌 격화 중 윤석열 당선인 손 들어줘
文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文의 알박기 인사’ 제동
감사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대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 새 감사위원 임명 제청 요구와 관련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2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의 모습.
감사원이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정권 이양기 감사위원 임명 제청권 행사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文은 퇴임을 앞두고 신임 감사원 감사위원을 임명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이 감사위원 인선은 새 정부에서 하는 게 적절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감사원이 윤 당선인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감사원은 이날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감사위원이 견지해야 할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할 때 원칙적으로 현 시점처럼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논란이나 의심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선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감사원은 그러면서 “현 정부와 새 정부가 협의되는 경우에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거 전례에 비춰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인수위는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감사원의 이런 입장에는 최재해 감사원장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작년 11월 文이 임명했다.
최재해 감사원장이 2021년 11월 15일 서울 감사원 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역대 정권 이양기 감사위원 임명 제청 사례 등을 종합 검토해 인수위에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 분과 간사인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 등 인수위원들도 이날 감사원에 “정권 이양기 감사위원 임명 제청이 감사위원회 운영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요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감사원이 文 임기 말 감사위원 임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힘에 따라 文이 신임 감사위원을 임명하는 데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위원은 헌법에서 감사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감사원 입장을 수용해 감사위원 인선 방침을 철회하면 文과 윤 당선인 회동 문제도 돌파구를 찾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인수위원들은 이날 감사원에 “반복 감사나 정치 감사를 자제해 감사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수위는 윤 당선인 공약대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할 경우 감사원의 공직 감찰 활동을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감사원에 공직자 비리 관련 정보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전담 팀을 구성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25일 “현 정부와 새 정부가 협의되지 않는 경우 감사위원 제청권 행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정권 이양기 공직 인사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측은 그동안 신임 감사원 감사위원 인선과 관련해 文이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감사위원 임기(4년) 대부분을 함께 보낼 새 정부에서 인선해야 한다면서 ‘알박기 인사’를 중단하라고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이 감사위원 제청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文 정권의 임기 말 감사위원 임명에 제동을 건 것이다. 정치권에선 “신구(新舊) 권력이 대립하는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등 다른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이날 감사원장의 감사위원 제청에 관한 감사원 보고에 대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당선인 의사가 존중되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임명한 친여(親與) 성향 감사위원이 3명인데 퇴임 전 1명을 추가 임명해 과반(4명)을 만드는 것은 감사원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사업, 4대강 보(洑) 철거 등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감사를 저지하거나 현 정권에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로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감사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감사위원회는 감사원장 포함, 7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감사위원 두 자리가 공석이다. 文은 이 가운데 1명을 퇴임 전 임명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은 감사위원은 감사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어 이날 감사원이 밝힌 인사 방침에 따라 文의 감사위원 임명은 어렵게 됐다. 정치권에선 “文이 임명한 최재해 감사원장이 결국 文의 알박기 인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말이 나왔다. 최 원장은 1989년부터 28년간 감사원에서 근무한 ‘내부 출신’으로 작년 11월 임명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현 여권에선 당혹스러워하는 기류도 엿보였다. 현 여권 관계자는 “감사원이 현 정부에서 감사위원 제청을 사실상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이상 문 대통령이 임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감사위원 임명 문제는 文과 윤 당선인 회동 지연의 핵심 뇌관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문제가 감사원의 입장 표명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文과 당선인 만남이 곧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회동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건 서로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걸림돌 중 하나가 제거된 만큼 양측 협의가 다시 진행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면 회동이 성사되려면 다른 쟁점도 정리돼야 해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윤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이나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방침 등, 다른 인사 문제를 두고 이견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감사원장의 제청이 필요한 감사위원과 달리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별도의 제청이 필요 없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이 동의하지 않는 인사를 상임위원에 임명할 수 있는 구조다. 문재인 정권이 임기 말 공공기관 임원을 임명한 것을 두고도 윤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은 “임기 말 측근 챙기기 용도의 ‘알박기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