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삼례 청년, 사고 후의 행동이 상당히 이상하였다. 우지끈하면서 내 차의 앞 범퍼 왼쪽 귀퉁이와 그 차의 조수석 문짝이 충돌했다. 그 청년은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나에게 달려오더니 고개 숙여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못 봤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어르신,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하고 덧붙였다. 나는, 그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차를 정지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자기 차 옆구리로 정차된 내 차 모서리를 문지르듯이 박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는 해도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사고가 났다 하면, 손으로 목덜미를 붙잡고 나오면서, 책임을 전가하려고, 혹은 자기 과실 비율은 낮게, 상대 과실 비율을 높게 승인받으려고 핏대를 내게 되어있지 않은가? 그 청년의 자리에서 볼 때에는 내 차도 앞으로 전진하였던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설사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에게 30%, 하다못해 20% 정도의 과실은 뒤집어씌우고 싶어 할 만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나는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하였다.
전화번호만 덜렁 받아 집에 온 후 갑자기 걱정이 든 나는 내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다. 보험회사 직원은 대뜸 증인이나 증거를 확보해 놓았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더니, 그는 가해자가 변심할 우려가 있으니 녹취라도 해 놓아야 한다면서 그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녹취를 해 주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 알게 된 것이지만, ‘증인’이니 ‘증거’니 ‘녹취’니 하는 것은 보험회사 직원의 어휘일 뿐, 이 삼례 청년의 어휘는 아니었다. 이 청년의 어휘는 ‘어르신’, ‘잘못’, ‘죄송’ 등등이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다음 날 아침, 콜마트 앞에서 만난 그 청년과 나는 대전으로 향했다. 내 차는 정비공장에 맡겨야 하니까 돌아올 때는 자기 차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정비 기사는 범퍼의 교체를 제안했고 이 청년은 동의했다. 비용이 50 만원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약간 움찔하였지만, 이 착한 청년, 내내 덤덤한 표정을 지었으며 자주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보고, 정비 기사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묻기도 하였다. 나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가해자, 피해자지요.” 며칠 뒤 이 청년은 다시 나를 대전까지 태워다 주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삼례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다시 대전으로 가는 길에 나란히 앉아 유익한 대화를, 심지어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예컨대 요즘 나오는 르노삼성차는 저속에서 잘 나가지 않으며 언덕에서 출발할 때 뒤로 밀리는데, 이것은 구동 씨스템이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등등. 다만 엔진 오일의 교환 시기에 관해서는 피차 양보할 수 없는 의견 차이가 발생하였다. 나는, 요즘 나오는 차들은 부품이 좋아 1만키로까지는 오일을 교체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했으며, 그 청년은, 그렇기는 하지만 자동차를 오래 타려면 그보다 자주 교체해 주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이 청년은 40대 초반이며,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고, 아직 미혼이다. 나는 외국인 처녀를 권했다가, 실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 말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 사람은 2세가 겪을 어려움을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혼자 살아요. 삼례에서는 말이예요. 가족들은 안양에 있어요.” 혼자 사는 두 남자는 의기투합하여 “혼자 사는 게 더 편해.” 어쩌구, “맞아. 화장실에서 똥 눌 때 화상실 문도 안 닫아도 되고.” 저쩌구 하면서 유쾌하게 드라이브를 하였다.
삼례에 거의 다 왔을 때 내가 슬쩍 떠보았다. “이 곳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어떤가요?” 삼례 청년은 즉각적으로 대답하였다. “엉망이죠, 뭐. 신호를 지독하게 안 지켜요.” 인정하기는 인정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 그가 덧붙였다. “그래도 난폭 운전은 없잖아요.” 난폭 운전은 없다고? 아, 난폭 운전은 없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삼례에서는 크락숀 소리를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신호 위반이 많이 일어나면 크락숀 소리도 그만큼 많이 나야 한다. 그 소리는 물론 위반을 한 차의 상대 차량이 내는 소리다. 꼬리 물기가 비열하고 과감하게 일어난다면, 크락숀 소리도 그 만큼 자주, 그리고 날카롭게 나야 한다. 그러나 삼례에서는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삼례역전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를 해 놓고 안양으로 올라오곤 하는데, 거기에서도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3, 4년 전일이다. 기차에서 내려 보니, 자동차의 앞 부분 전체, 즉 운전석 문짝, 조수적 문짝, 범퍼, 본넷트 등이 찌그러져있었다. 삼례역 직원 등에게 수소문해 보았지만 가해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한적한 주차장이었다. 그런 경우, 자기 발로 나타나 주기 전에는 가해자를 찾을 도리가 없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보험회사에 연락한 후 정비소를 찾았다. 그 때 가해자가 자기 발로 나타났다. 젊은 영농후계자라는데, 트럭을 후진시키다가 그렇게 사고를 내고 말았다더라. 이렇게 가해자가 제 발로 나타나 깨끗하게 수리를 해 준 적이 한 번 더 있다. 물론 삼례에서의 일이다.
내가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의 어느 날, 그러니까 17, 8년 전의 어느 날, 삼례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여 협약을 한 것 같다. 혹은 내가 안양에 올라가있던 주말, 언젠가, 한 자리에 모여 자기들끼리 협약을 한 것 같다. “사고를 냈으면 물어 줘야하는 거제. 누가 봤건, 안 봤건 말이여.” “물론이제.”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꼭 서야 하는 것인감?” “아니지. 길 건너는 사람이 없는데 뭐하러 선다냐?” “맞아, 맞아.” “꼬리 물기는 어뗘?” “신호가 바뀌었다고 갑자기 설 필요는 없제. 한, 두 대 더 간다고 어디가 덧나냐?” “서, 너 대 더 가도 돼야.” “그려. 말미를 넉넉하게 줘야제.” “아니, 그보다도 신호등이란 놈이 꼭 필요한 것인감?” “말 잘했어. 그런 게 왜 필요해? 알아서들 가고 서고 하면 되는 것이여.” “그렇게 하면 사고가 나기 쉽지 않는가? 사람이 상하기도 하고?” “죽을 놈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은 벱이여.” “맞아 맞아.”
삼례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르다. 서울이나 안양 등과 비교해 볼 때 미묘한 차이가 난다. 경관도 다르다. 들판이 아주 넓다. 산은 멀리에서 희미하게 보이고 고층 건물도 드물다. 기온도 다르다. 섭씨 2도 정도 차이가 난다. (끝)
첫댓글 두 분에게 시간과 돈 등의 손실이 있었지만 왠지 그 사이에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영태야 혹시 10월6일/토요일오후~10월7일/일요일에 삼례에있을수있겠니? 혹시있을계획이면 날만났으면좋겠다 다름이아니라 10월7일09시 전북도청앞에서 제7회 전북부부마라톤에 우리집사람하고참가하게되고 고산리화정저수지인근에서 사회복지원을하는 5사단36연대3대대군종병출신 후배목사를방문예정이있어 가는길에잠깐얼굴이나볼까해서 연락바란다 011-305-4592 권홍표
애중씨하고 같이 뛰는구나. ㅎ 멋지구만. 알겠다. 전화할께.
어라~ 1편하고는 완전 다르네..좀 투박해도 삼례가 참 좋은 곳이구나...명망가께서 안나셔도 될 듯........ㅎㅎ
영태야. 나도 아직 50대 총각(^^)이다.베트남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베트남 하니 귀가 번쩍~ 나 지금 하노이. 다음 주말에 한국갈건데 한사람 델구갈까? 베트남에선 아예 운전할 엄두를 못낸다. 사람들 윤전습관이 뭐럴까...염치가 없어. 기본적인 염치가....
인간미 넘치는 삼례 이야기네...
삼례 고발인줄 알았더니 삼례 사람 예찬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