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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장 행복한 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청산에하늘이
천수경(千手經) - 불지종가 영축총림 통도사스님 합송
천수경(千手經) 淨口業眞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開經偈 개경게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修持 願解如來眞實義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開法藏眞言 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千手千眼觀自在菩薩 廣大圓滿無碍大悲心大陀羅尼 啓請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 계청 稽首觀音大悲呪 願力弘深相好身 千臂莊嚴普護持 千眼光明便觀照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 眞實語中宣密語 無爲心內起悲心 速令滿足諸希求 永使滅除諸罪業 진실어중선밀어 무위심내기비심 속령만족제희구 영사멸제제죄업 天龍衆聖同慈護 百千三昧頓薰修 受持身是光明幢 受持心是神通藏 천룡중성동자호 백천삼매돈훈수 수지신시광명당 수지심시신통장 洗滌塵勞願濟海 超證菩提方便門 我今稱誦誓歸依 所願從心悉圓滿 세척진로원제해 초증보리방편문 아금칭송서귀의 소원종심실원만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得戒足道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登圓寂山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족도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會無爲舍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同法性身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我若向刀山 刀山自摧折 我若向火湯 火湯自消滅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我若向地獄 地獄自枯渴 我若向我歸 我歸自飽滿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我若向修羅 惡心自調伏 我若向蓄生 自得大智慧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南無觀世音菩薩摩訶薩 南無大勢至菩薩摩訶薩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南無千手菩薩摩訶薩 南無如意輪菩薩摩訶薩 나무천수보살마하살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南無大輪菩薩摩訶薩 南無觀自在菩薩摩訶薩 나무대륜보살마하살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南無正趣菩薩摩訶薩 南無滿月菩薩摩訶薩 나무정취보살마하살 나무만월보살마하살 南無水月菩薩摩訶薩 南無軍茶利菩薩摩訶薩 나무수월보살마하살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 南無十一面菩薩摩訶薩 南無諸大菩薩摩訶薩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 나무제대보살마하살 南無本師阿彌陀佛 나무본사아미타불 南無本師阿彌陀佛 나무본사아미타불 南無本師阿彌陀佛 나무본사아미타불 神妙章句大陀羅尼 신묘장구대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야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미마라 아마라 몰제예혜혜 로계새바라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 나바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라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이바 사나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 懺悔偈 참회게 我昔所造諸惡業 皆有無始貪瞋癡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懺除業障十二尊佛 참제업장십이존불 南無懺除業障寶勝藏佛 寶光王火簾照佛 一切香華自在力王佛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 보광왕화렴조불 일체향화자재력왕불 百億恒河沙決定佛 振威德佛 金綱堅强消伏壞散佛 백억항하사결정불 진위덕불 금강견강소복괴산불 寶光月殿妙音尊王佛 歡喜藏摩尼寶積佛 無盡香勝王佛 보광월전묘음존왕불 환희장마니보적불 무진향승왕불 獅子月佛 歡喜莊嚴珠王佛 帝寶幢摩尼勝光佛 사자월불 환희장엄주왕불 제보당마니승광불 准提眞言 十惡懺悔 십악참회 殺生重罪今日懺悔偸盜重罪今日懺悔邪行衆罪今日懺悔 살생중죄금일참회투도중죄금일참회사행중죄금일참회 妄語衆罪今日懺悔綺語衆罪今日懺悔兩舌衆罪今日懺悔 망어중죄금일참회기어중죄금일참회양설중죄금일참회 惡口衆罪今日懺悔貪愛衆罪今日懺悔瞋碍衆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탐애중죄금일참회진애중죄금일참회 癡暗衆罪今日懺悔 치암중죄금일참회 百劫積集罪 一念頓蕩除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忘 罪忘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懺悔眞言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准提功德聚 寂靜心常誦 一切諸大難 無能侵是人 준제공덕취 적정심상송 일체제대난 무능침시인 天上及人間 受福如佛等 遇此如意珠 定獲無等等 천상급인간 수복여불등 우차여의주 정획무등등 南無七俱肢佛母大准提菩薩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 淨法界眞言 정법계진언 옴 남 옴 남 옴 남 護身眞言 호신진언 옴치림 옴치림 옴치림 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반메 훔 옴 마니반메 훔 옴 마니반메 훔 준제진언 나무사다남 삼먁 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我今持誦大准提 卽發菩提廣大願 願我定慧速圓明 아금지송대준제 즉발보리광대원 원아정혜속원명 願我功德皆成就 願我勝福遍莊嚴 願共衆生成佛道 원아공덕개성취 원아승복변장엄 원공중생성불도 如來十大發願文 여래십대발원문 願我永離三惡道 願我速斷貪瞋癡 願我常聞佛法僧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願我勤修戒定慧 願我恒修諸佛學 願我不退菩提心 원아근수계정혜 원아항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願我決定生安養 願我速見阿彌陀 願我分身遍塵刹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 원아분신변진찰 願我廣度諸衆生 원아광도제중생 發四弘誓願 발사홍서원 衆生無遍誓願度 煩惱無盡誓願斷 法門無量誓願學 佛度無上誓願成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自性衆生誓願度 自性煩惱誓願斷 自性法門誓願學 自性佛道誓願成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 자성법문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 發願已 歸命禮三寶 발원이 귀명례삼보 南無常住十方佛 南無常住十方法 南無常住十方僧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
■ 통도사 새벽예불 산사의 하루 음반 중에서
1. 예불문
2. 반야심경
3. 천수경
4. 행선축원
6. 운판
7. 법고
8. 범종
9. 목어
국보 290호 통도사 금강계단 앞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운해 온 자장율사는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사진=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삼국유사’ 등 기록으로 천년고찰 통도사를 읽다 영축총림 통도사(通度寺)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 앞에 건립된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금강계단을 향해 예경한다. <통도사약지(通度寺略誌)>에 따르면, 사찰에 건립된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한 인도 영축산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영축산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보면 원래 통도사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메운 후 그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왜 ‘통도’라는 이름을 갖게 됐을까. 구전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설법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 靈鷲山形)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 스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는 의미라고 하고, 모든 진리를 통달해 중생을 제도하라(通諸萬法度濟衆生)’ 뜻이라고도 한다. 정리하자면 스님이 되려면 부처님이 설법하셨던 인도 영축산과 닮은 통도사 계단을 통과한 후 진리를 통달하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통도사 창건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선덕여왕(재위 632~647) 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 권3 ‘탑상’ ‘황룡사구층탑’ 조에 보면 “황룡사 찰주기에 따르면, 자장이 오대산에서 얻은 사리 백 낱을 황룡사구층탑 기둥 속과 통도사 계단과 태화사 탑에 나누어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통도사 창건을 주도한 자장율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권4 ‘의해’ ‘자장정율조’에 상세히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귀국 후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황룡사에서 <보살계본>을 7일 동안 설했더니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 사부대중이 탄복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칙명으로 자장율사를 대국통으로 삼았고, 스님은 반달마다 계를 설하고 겨울과 봄에 시험하게 해 지계와 범계를 알게 했다. “나라의 사람들이 계를 받고 부처를 받드는 것이 열 집에 여덟아홉이었고, 머리를 깎고 출가하기를 청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었다. 이에 통도사를 창건해 계단을 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출가하게 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이운해온 진신사리를 봉안했고, 황룡사 구층목탑이 646년(선덕여왕 15)에 건립된 것을 토대로 통도사도 같은 해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통일신라시대 계율 근본도량이었던 통도사의 명성은 고려시대 때도 이어졌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많은 이들이 진신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통도사로 향했다. 남무희 국민대 교수는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을 기념해 발간한 <통도사를 담아내다> 중 ‘통도사 역사’를 다룬 논고에서 고려중기 불교계를 주도하는 사원으로 통도사를 지목했다. “1085년(선조 2)에 이르면 통도사 극락전 앞에 배례석이 설치되고 호부(戶部)에서는 공문을 내려 사역 주변에 12대 국장생표를 설치하는 등 통도사에 대한 국가적인 시책이 전개”된다며 “계율종과 불사리 신앙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장생표란 나라에서 세운 장생표로 사찰 소유 토지 범위를 보여준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에서는 상장군 김이생과 시랑 유석이 고종(1213~1259) 때 왕의 명을 받아 낙동강 동쪽을 지휘했을 때 절에 들러 사리를 친견했다고 한다. 스님이 난처해하는 중에도 굳이 군사를 시켜 돌을 들더니 안에 작은 석함 속 유리통에 들어 있는 사리를 서로 돌려보며 예경했는데, 유리통이 금간 것을 보고 유공이 갖고 있던 수정함을 시주했는데, 당시 사리 4매가 납입돼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 원나라 사신들도 통도사 금강계단 불사리를 예배하고 인도 출신 지공(?~1363)스님은 1326년 통도사 금강계단을 참배하고 석가모니부처님 가사와 사리 친견 후 ‘사리가사 계단법회’를 봉행했다고 부연했다. 말기에는 왜구가 진신사리를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불종찰약사(佛宗刹略史)>에 따르면 1340년(충혜왕 복위 1)부터 1369년(공민왕 18)까지 사찰 곳곳에서 불사가 이뤄졌다.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사리를 지켜낸 월송대사(月松大師)가 1379년 사리탑을 중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기록들이 주로 전해진다. 대광명전 현판에는 1756년 10월에 불이나 법당 4곳과 스님들 요사채 4곳 창고 10칸이 전소돼 3년 뒤 불사해 비로자나 불상과 후불도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불종찰약사>는 또 18~19세기에 4건 정도 계산을 보수했고, 1838년에는 경기도 함경도 충청도 황해도 전라도 등 전국에서 보시해 불사가 이뤄졌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에도 금강계단의 위상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현대에도 많은 스님들이 통도사의 법등을 이어갔다. 오늘날까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불지종가(佛之宗家)로 수식되고 있다. 성해스님은 통도사 승통을 지내며 사격을 일신했다. 구하스님은 통도사 주지와 불교중앙학림 학장을 맡아 포교와 승가교육에 일조했고, 상해임시정부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에도 일조했다. ‘영축산 도인’으로 불린 경봉스님 외에도 해방 이후 벽안스님과 월하스님 등은 조계종은 물론 총림으로서 통도사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동진(東晋)시대 법현스님이 한역한 <대반열반경>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다비를 마치면 사리를 수습해 황금 병에 모시고 곧 그곳에다 투파(兜婆, 탑)를 세우되 표찰(表刹)로 장엄하며 비단 번기와 일산을 걸고,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매일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가지가지로 공양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 열반과 다비에 의해 시작된 사리신앙은 인도를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로 전해진다. 사리는 곧 부처님이요, 사리를 봉안한 탑 또한 부처님이었다. 통도사 금강계단도 마찬가지다.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기 때문에 금강계단 앞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았다. 통도사 불이문서 바라본 경내. 사진=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부처님 진신사리 지키려 고군분투한 통도사 스님 창건 이래 지금까지 진신사리를 지켜내기 위한 스님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1377년(고려 우왕 3) 왜적이 침입해 불사리를 가져가려 하자 주지였던 월송대사가 깊이 감췄는데, 1379년 다시 왜적이 쳐들어오자 몸에 숨겨 수도 개경까지 피신했다고 한다. 당시 기록은 <목은집>에 남아 있다. 또 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는 왜적에게 불사리를 약탈당하기까지 했다. 당시 동래에 사는 백옥거사(白玉居士)가 왜적에게 잡혀 있다가 사리를 찾아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러자 사명대사(四溟大師)는 사리함 두 개를 금강산의 휴정대사(休靜大師)에게 보냈고, 한 개는 통도사 금강계단에, 하나는 태백산 정암사에 봉안했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1603년(선조 36)에야 비로소 정비도 비로소 사리를 봉안할 수 있었다. 1705년 발간된 <사바교주계단원류강요록(娑婆敎主戒壇源流綱要錄)>이나 1702년 조성된 ‘석가여래 영골사리 부도비((靈骨舍利浮圖碑)에 이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통도사사적약록> ‘사리영이(舍利靈異)’에서는 사리의 신령함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누구든 사리를 예경하면 다섯 가지 법신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인연 유무에 따라 사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밝게 빛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예배할 때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고, 비 내리던 하늘이 갑자기 개어 길흉을 알지 못한다. 네 번째는 계단석종 위에서 오색광명이 비쳐 산과 골짜기를 밝히고, 향과 초를 공양하고 정진하면 계단 반상에 사리가 모래알처럼 나타난다. 또 몸과 마음이 부정해 하심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일원(一院) 중에 악취가 나 부정한 사람을 광란에 빠트린다. 석종 부도 위 여의주석 구룡반석 아래 움푹 파인 곳에 항상 물이 가득한데 그곳에 붙어 있는 한쌍의 푸른 달팽이는 사람이 보면 사방으로 흩어져 보이지 않다가, 사람이 흩어지면 전과 같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날짐승이 금강계단 위로 날아가지 않고, 주변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황룡사 구층목탑과 통도사 금강계단의 신이한 관계에 대한 얘기도 있다. 황룡사 탑이 불에 타던 날 금강계단 위를 덮은 돌뚜껑 동쪽 면에 처음 큰 반점이 생겼는데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진각국사 혜심스님이 1222년 통도사 금강계단을 참배하고 지은 시를 새긴 ‘무의자제통도사 현판’을 보면 “듣건대 황룡사의 탑이 불타던 날에 연이어 한쪽을 태우면서 꿈쩍도 않았다”고 해 구전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