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륜
여수 갈 일이 생겼습니다. 자가용으로 갈까 아니면 KTX를 탈까 고민하다가 지나치게 먼 거리를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기차를 선택했지요.
요즘 인터넷 예매 구조가 잘 되어 있어 조금만 연구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표를 끊을 수 있는데 왠지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가까운 역에 들렀습니다. 친절한 역무원이 단말기 앞에서 표를 예매해 주는데 일반인들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자동발매기에서 불평 없이 일을 대신 처리해 주더군요.
익숙하지 않은 기계라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충분히 내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창구 직원의 힘을 빌린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친절하게 끝까지 확인까지 하면서 표를 건네주었지만 내 스스로가 꼰대 또는 틀딱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60이 넘도록 별로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늙어서 미안하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점점 시력이 저하되고 기억력이 쇠퇴해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어려워질 때 나이 듦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장수 시대를 맞이하여 오래 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노인 문제가 사회 이슈로 등장하고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아우성이고 질병 치료과 간병, 그리고 치매 치료에 들어가는 예산이 천정부지라고 난리입니다. 그런 걸 알면서도 견뎌야 하는 고령자의 마음은 그만큼 어색하고 겸연쩍게 마련이지요. 잘못 없이 먹은 나이로 젊은이에게 눈치 보고 신세 한탄을 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꽃이 피고 지듯이 젊은 청춘도 그렇게 흘러가게 마련이고 아직은 젊을지라도 늙음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세월을 살고 있는 것인데 젊음의 아름다움에 빠져 어르신을 존경하지 않는 청춘들에게 꼭 들려줄 격언이 있습니다.
그리스에 “집에 노인이 없거든 빌려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경륜이 참으로 소중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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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키오스크'. '핸드폰으로 결재하기'. '기차표 예매'.......... 비교적 나이 또래에 비해 컴퓨터를 잘 다룬다곤 하지만, 낯설은 단어들이 점점 많이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과연 내게 남에게 내 보일 "삶의 경륜"이란 것이 있을까? 대답은 "별로"입니다.
헛살았나? |
첫댓글 매일 매일 한가지씩 더 배워가며 일일신 우일신하며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갑니다.
그존 중에도 젊은이들에게 제가 경험한 세상에 대한 익숙하면서도 알량한 지식과 함께 삶의 작은 지혜도 가르치며 행복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