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람에게 상처 입혀 무릎 꿇게도 하지만
봇디창옷은 아픈 곳을 감추는 소매가 긴 저녁이 되기도 합니다
점점 사라지는 제주어를 적어보는 봄밤
제주의 아이들은 정작 제주어를 모릅니다
나이 든 어머니와 옷장을 정리하다 낡은 봇디창옷에 손이 갑니다
봇디창옷에 뭉클거리는 오 형제가 검은 배꼽을 오똑 내놓고 누워 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할 말이 많아집니다
어머니의 제주어에는 뼈를 버린 사람이 삽니다
눈과 입에서 웃음이 먼저 번지는 어머니
세상의 모든 국경이 삶은 국수처럼 무너집니다
바람 든 콥데사니** 껍질 같은 어머니의 귀에서
아이들이 옷을 벗고 물뱀 되어 흩어지고
맞춤법에 걸린 바당과 할망당 심방***들이 제물 차롱을 지고
징게징게 꽹과리를 치며 걸어 나옵니다
어미가 물애기****에게 소매가 긴 봇디창옷을 입힌 마음
80년 된 콥데사니 같은 알싸한 제주어가
내 눈에도 뾰족하니 돋습니다
* 봇디창옷: 귀한 아기에게 소매가 밤처럼 긴 옷을 삼베로 만들어 입힌 어미의 마음. 어미는 아기가 전생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깃과 섶을 달지 않고 기다리지.
** 콥데사니: 제주에선 콥데사니는 제사 음식에 쓰지 않지. 콥데사니라고 부르면 제주의 제삿날이 마늘처럼 매워지네.
*** 심방: 신을 모시는 심방들이 징게징게 굿하는 날 신도들이 즐비한 제물 든 차롱을 굿당에 나란히 올린다. 억울하게 죽은 저싱 사름을 위해.
**** 물애기: 물애기라고 부르면 나도 물렁거리는 진흙 덩어리가 되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3.12.20. -
시인은 “나이 든 어머니와 옷장을 정리하다”가 낡은 “봇디창옷”을 발견합니다. 제주의 어머니들은 갓난아기가 “전생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깃과 섶을 달지” 않은 옷을 입혔다고 합니다. “물애기”는 “소매가 밤처럼 긴 옷을” 입고 “바당”에 내린 별빛처럼 반짝이는 꿈을 꾸지 않았을까요?
낡은 아기 옷을 발견하고 “눈과 입에서 웃음이 먼저 번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국경이 삶은 국수처럼” 무너져버리는 것 같았다는 시인…… 낡은 “봇디창옷”처럼 점점 잊혀가고 있는 “제주어”로 어머니와 옛이야기를 나누며, 시인은 “알싸한” “콥데사니”라도 만진 사람처럼 눈가가 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