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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관지(以道觀之)
도(道)의 입장에서 본다는 뜻으로,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일체 사물이나 사건들의 본체인 도(道; 천지만물의 근본원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以 : 써 이(人/3)
道 : 길 도(辶/10)
觀 : 볼 관(見/18)
之 : 갈지(丿/3)
출전 : 장자(莊子) 추수(秋水)
이 성어는 황하의 신(河伯)이 북해의 신(北海若)을 만나 문답하는 과정에 나온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전략)
그러면 물(物)의 외형(그 物과 다른 物과의 관계) 또는 물건의 내면(物; 그 자신의 성질)의 어느 곳에 기준을 두어 귀하고 천한 한계를 두며,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작고 큰 것의 한계를 두는 것입니까?
河伯曰 : 若物之外, 若物之內, 惡至而倪貴賤, 惡至而倪小大?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物)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物)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귀하다 하여 서로 천히 여긴다. 세속(俗)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관점(差數)에서 볼 때, 어느 것에 비하여 크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 중에 크지 않은 것이 없게 될 것이며, 어느 것에 비하여 작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 중에 작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늘과 땅도 큰 것과 비교를 하게 되면 싸리기와 같이 작고, 털끝도 작은 것과 비교하게 되면 큰 산 같이 크다는 것을 안다면, 모든 것이 상대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공용(功用; 용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공용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쓸데없는 것이란 없는 것이며, 그 공용을 없다고 부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 중에 쓸데 있는 것이란 없게 된다. 동쪽과 서쪽은 서로 반대 되지만 서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안다면, 곧 공용의 규정도 상대적인 것임을 알 것이다. 취향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이 옳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에는 옳지 않은 것이란 없게 된다. 그것이 그르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에는 그릇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
北海若曰 : 以道觀之, 物无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以差觀之, 因其所大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為稊米也, 知(毫)[豪]末之為丘山也, 則差數覩矣. 以功觀之, 因其所有而有之, 則萬物莫不有; 因其所无而无之, 則萬物莫不无; 知東西之相反而不可以相无, 則功分定矣. 以趣觀之, 因其所然而然之, 則萬物莫不然; 因其所非而非之, 則萬物莫不非; (...).
(莊子/秋水)
⏹ 이도관지(以道觀之)
장자(莊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도(道)는 하나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道)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道)는 스스로 자기 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이는 자연(自然)이다.
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으로 자연과 신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체의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은 곧 일체의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종교관 철학관이다.
도(道)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道)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德)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도(道)와 일체가 되면 도(道)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물(物)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道)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道)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수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莊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장자(莊子) 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란 호를 추증하였다. 장자(莊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읽혔다.
송(宋), 명(明)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 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 이도관지(以道觀之)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道)는 일(一)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道)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道)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道)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도(道)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道)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返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道)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道)와 일체가 되면 도(道)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물(物)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道)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道)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自我)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지인(至人)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 각의(刻意)에서 말한다.
不刻意而高, 無仁義而修,
마음을 날카롭게 가짐이 없이 행동이 고상해지고, 인의가 없이 수양이 되며,
無功名而治, 無江海而閑,
공명이 없이 다스려지고, 강해에 위치하여 거처함이 없이 한가해지며,
不道引而壽, 無不忘也, 無不有也.
도인의 수를 누린다면 모든 것을 알지 못함이 없고,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함이 없다.
澹然無極而衆美從之. 此天地之道, 聖人之德也.
마음은 담담하여 극이 없고 모든 아름다움은 따르게 된다. 이것이 천지의 도이고, 성인의 덕이다.
故曰: 夫恬淡寂漠, 虛無無爲, 此天地之平, 而道德之質也.
그러므로 염담적막(恬淡寂漠)과 허무무위(虛無無爲)는 천지의 정리(定理)이고, 도덕의 본질(本質)이다.
⏹ 큰 것은 작고, 작은 것은 크다
물이 모여 개울을 이루고,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었다. 강물은 점점 몸을 불리며 도도하게 흘러갔다. 강물의 신 하백은 절정에 선 짜릿함을 느끼며 “나보다 더 위대한 물은 없다”고 외쳤다.
그때 어마어마한 물을 만났다. 바다였다. 바다의 신 북해약은 이렇게 말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주기 어려운 것은 그가 공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고, 여름벌레에게 얼음 이야기를 해주기 어려운 것은 그가 시간에 매여 있기 때문이며, 한쪽으로 치우친 선비에게 진리에 대해 말해주기 어려운 것은 그가 기존의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라네.”
井䵷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장자/추수편)
하백은 우쭐댔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런데 북해약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하에서 바다보다 더 큰 물은 없지만, 나는 스스로 내 물이 많다고 여긴 적이 없다네. 우주를 거대한 호수에 빗댄다면, 바다란 작은 돌멩이에 파인 구멍에 고인 물과 같다네.”
하백은 강물 정도로 우쭐댔는데, 북해약은 바다이면서 어떻게 자신이 작은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북해약은 이어 말한다. “도(道)의 눈으로 보면 사물에 귀하고 천한 것은 없지만, 사물의 눈으로 보면 자기는 귀하고 남은 천하다네.”
以道觀之, 物无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장자에 나오는 아름다운 우화이다. 장자는 작게 보기와 크게 보기의 달인이다.
장자는 북해약의 입을 빌려 말한다. “크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이 크지 않은 게 없고, 작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이 작지 않은 게 없다. 하늘땅이 좁쌀만하다는 걸 알고, 털끝이 산더미만하다는 걸 안다면 크고 작음의 무한한 층차를 알 것이다.”
因其所大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爲稊米也, 知毫末之爲丘山也, 則差數覩矣.
장자는 인생이란 날개 길이가 삼천리인 붕새가 구만리를 날아가는 일과 같다고 여겼다. 우주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지만, 우주를 이해하려는 티끌들의 끝없는 도전은 붕새의 비행 이상으로 장엄하다.
장자는 또 오늘날로 치면 미국과 중국 같은 두 강대국의 충돌을 달팽이의 두 뿔 사이에서 벌어지는 병정놀이쯤으로 여겼다.
장자에 따르면 “내 핵단추가 더 크다”는 지구 최강대국 통치자의 볼품없는 발언 따위는 달팽이의 한쪽 뿔에서 앵앵거리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장자는 귀중한 물건을 부장품으로 함께 묻으려는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이 자신의 널과 덧널이며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의 부장품이라고 일러주었다.
장자는 이런 괴이한 자기 말을 이해해주는 이를 만년 뒤에라도 만난다면, 그건 아침저녁 사이에 만난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호방한 사유를 전개한 인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을 좁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작은 풀 한 포기를 크게 볼 줄 아는 것이 위대함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자신이 크다고 우쭐대거나 타인을 함부로 작게 보는 것은 개구리가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우주의 시민인 우리들은 작은 것을 크게 보는 공부와 큰 것을 작게 보는 공부를 포기할 수 없다.
▶️ 以(써 이)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연장을 사용하여 밭을 갈 수 있다는 데서 ~로써, 까닭을 뜻한다. 상형문자일 경우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以자는 '~로써'나 '~에 따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以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以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수저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밭을 가는 도구이거나 또는 탯줄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무엇을 그렸던 것인지의 유래와는 관계없이 '~로써'나 '~에 따라', '~부터'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以(이)는 ①~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②~에 따라, ~에 의해서, ~대로 ③~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④~부터 ⑤~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⑥~을 ~로 하다 ⑦~에게 ~을 주다 ⑧~라 여기다 ⑨말다 ⑩거느리다 ⑪닮다 ⑫이유(理由), 까닭 ⑬시간, 장소, 방향, 수량의 한계(限界)를 나타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어떤 범위 밖을 이외(以外), 일정한 범위의 안을 이내(以內),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어떤 한계로부터 동쪽을 이동(以東), ~이어야 또는 ~이야를 이사(以沙), 그 동안이나 이전을 이왕(以往), 까닭으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소이(所以), ~으로 또는 ~으로써를 을이(乙以), 어떠한 목적으로나 어찌할 소용으로를 조이(條以), ~할 양으로나 ~모양으로를 양이(樣以), 석가와 가섭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을 이르는 말을 이심전심(以心傳心),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뜻으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은 짓을 일컫는 말을 이란투석(以卵投石), 대롱을 통해 하늘을 봄이란 뜻으로 우물안 개구리를 일컫는 말을 이관규천(以管窺天), 귀중한 구슬로 새를 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주탄작(以珠彈雀),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 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상대함을 이르는 말을 이열치열(以熱治熱), 옛것을 오늘의 거울로 삼는다는 뜻으로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이고위감(以古爲鑑), 새우로 잉어를 낚는다는 뜻으로 적은 밑천을 들여 큰 이익을 얻음을 일컫는 말을 이하조리(以蝦釣鯉),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뜻으로 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이지측해(以指測海),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이식위천(以食爲天),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댄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기만하고 권세를 휘두름을 이르는 말을 이록위마(以鹿爲馬), 하나로써 백을 경계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명을 벌하여 백 명을 경계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이일경백(以一警百), 털만으로 말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으로 겉만 알고 깊은 속은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이모상마(以毛相馬), 남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이인위감(以人爲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피로써 피를 씻으면 더욱 더러워진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다스리려다 더욱 악을 범함을 이르는 말을 이혈세혈(以血洗血),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불로써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폐해를 구해 준다는 것이 도리어 폐해를 조장함을 이르는 말을 이화구화(以火救火) 등에 쓰인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의 풍속이 돈후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또는 깊이 생각 않고 예사로 듣고 말함을 일컫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뜻으로 난세를 당해서야 비로소 그 인물의 진가를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뜻으로 천도에는 크게 융성함과 쇠망함의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을 도유승강(道有升降),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시장과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라는 뜻으로 이익이 있으면 서로 합하고 이익이 없으면 헤어지는 시정의 장사꾼과 같은 교제를 일컫는 말을 시도지교(市道之交),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일컫는 말을 청빈낙도(淸貧樂道),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언어도단(言語道斷) 등에 쓰인다.
▶️ 觀(볼 관)은 ❶형성문자로 覌(관), 観(관)은 통자(通字), 观(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볼 견(見;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雚(관)으로 이루어졌다. 자세히 본다는(見) 뜻이 합(合)하여 보다를 뜻한다. 늘어 놓아 보이다, 자랑스럽게 남에게 보이다, 잘 본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觀자는 '보다'나 '보이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觀자는 雚(황새 관)자와 見(볼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雚자는 隹(새 추)자 위에 큰 눈과 눈썹을 그린 것으로 '황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雚자는 큰 눈과 눈썹이 도드라지는 황새를 잘 표현한 글자이다. 이렇게 황새를 그린 雚자에 見자를 결합한 觀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새처럼 넓게 '보다'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觀자에는 '용모'나 '모양'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황새의 자태가 의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觀(관)은 (1)한자어로 된 어떤 명사 아래에 붙어 체계화된 견해를 뜻하는 말 (2)관괘(觀卦) (3)도교(道敎)의 사원(寺院) 등의 뜻으로 ①보다 ②보이게 하다 ③보게 하다 ④나타내다 ⑤점치다 ⑥모양 ⑦용모(容貌) ⑧생각 ⑨누각(樓閣;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⑩황새 ⑪괘(卦)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시(視), 볼 감(監), 바라볼 조(眺),보일 시(示), 볼 견(見), 볼 람/남(覽), 볼 열(閱),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이나 고적과 풍속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관광(觀光), 자연 현상의 추이를 관측(觀測), 사물을 잘 살펴 봄을 관찰(觀察),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보거나 생각하는 각도를 관점(觀點),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 앉히고 깊이 생각하는 일을 관념(觀念), 영화나 연극이나 무용 등의 무대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을 관객(觀客), 연극이나 영화 따위를 구경함을 관람(觀覽), 사물을 꿰뚫어 봄을 관철(觀徹),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거나 음미함을 관조(觀照), 마음의 본성을 살핌을 관심(觀心), 구경하는 무리를 관중(觀衆), 사람의 상을 보고 재수나 운명을 판단하는 일을 관상(觀相),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말을 관과지인(觀過知仁),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얼굴빛을 자세히 살펴봄을 일컫는 말을 관형찰색(觀形察色), 풍속을 자세히 살펴 봄을 이르는 말을 관풍찰속(觀風察俗),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견문이 매우 좁음을 말함 또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름을 이르는 말을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이르는 말을 정중관천(井中觀天),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함을 이르는 말을 명약관화(明若觀火)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