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때는 1000명까지 뽑았지만 옛날에는 불과 수십명만 뽑았음. 1978년에야 합격자 100명 시대를 열었고 노무현이 합격한 1975년에는 두자릿수였음 부산에는 변호사가 3명밖에 없었던 시대고 변호사가 도지사 면담하고 싶으면 가서 그냥 면담할 수 있었다는 말도 있음
근데 그때라고 서울대, 고려대 법대가 없던 것도 아님... 오히려 서울대의 위상이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되게 높았던 시대.. 이과는 연세대 의대가 서울대 끝자락에 비빌까 말까 하던 시대였음... 나라가 가난하니 대학원이야 정부 돈받고 유학가도 학부 유학은 꿈도 못 꾸지 지금으로 따지면 하버드, 옥스퍼드 갈 머리 되는 애들도 전부 대학은 일단 서울대 가던 시절...
근데 그런 서울대 법대 출신들 수십명을 제끼고 노무현이 거기에 붙은 거임... 1000명 뽑고, 사람들 먹고 살만하던 시대에도, 시험에 붙기만 하면 서울대에도 합격자 현수막이 내걸리는 게 사법시험인데 부산상고 출신 고졸이, 수십명 뽑던 시대, 모두가 굶주리고 가난하던 시대에 붙은 거임... 고시반도, 학원도, 대학강의도 없이 독학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책 살 돈도 없는 개씹흙수저가 교과서만 보고 공부해서 수능 만점받은 거라고 보면 됨...
비록 노무현이 서울대 출신이 가득한 법조계에서 차별도 받고 무시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희망을 준 거임...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