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만들었다는 한글은 내가 알기로는 세종임금이 처음 만든 것이 절대로 아니다. 불쌍한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도 있고, 한글을 만들어서 지었다는 책이 찬송가인 '용비어천가'였으니, 목적은 다른 것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기록한 바에 따르면 한글을 만들기 위해 세종임금은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숙주를 시켜 몇 번이나 중국에 가서 음운학 자료를 가져오도록 하는가하면 체계적인 문자구조에 신경을 많이 썼고 직접 연구에 참가하기도 한다.
한글은 처음에는 한문발음을 정확히 하도록 하는데 그 기능을 두었다. 한문발음이 지역마다, 책마다 다르게 발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을 표시할 때 한글을 사용한 것이다. 이 때는 한글이 아니고 언문이었던 이 글자로 백성들을 가르쳤다는 기록도 없고 붙이는 방이나 공문서를 언문으로 만든 적도 없었으므로 어린 백성을 생각했다는 담화문을 나는 믿지 않는다.
실제로 일반백성들을 예나 그 후나 까막눈이었다. 오히려 언문을 쓴 사람들은 양반집 아녀자나 아전(이방 등)들이었으니 후기까지도 “잡스러운 소설”이나 규방의 심심풀이로 썼던 이 한글은 문자로서의 생명이 위태로왔다!
아이러니이기는 하지만, 나쁘게 생각해서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개발했다가 아무도 안쓰고“언문”취급하다가 이렇게 잘 사용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다. 일제가 권장한 것이 아니고 민족의식과 민중의식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문자의 필요성이 급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글을 이용한 최초의 대규모 번역사업은 우리 고전번역이 아니고 예수교“성경”이었음을 알고 계시는지.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한글을 최초로 전용한 독닙신문 이후 최근에 와서 신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책과 자료가 한글을 전용하고 있다. 전용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의 시대, 정보화의 시대, 컴퓨터의 시대에 이렇게 좋은 도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한글을 만드는데 어떤 자료를 참조했는지는 세종실록에 자세히 있으므로 그걸 찾아보면 연원도 밝혀볼 수 있다. 세종임금이 그토록 아끼고 신뢰했던 정승 최만리가 죽자고 반대를 하는데 이유가 이렇다.
“이 글이 옛 글과 비슷하여 중국에 오해를 살 수가 있고...”
이게 무슨 말인가? “옛글”이라니! 그리고 “중국의 오해”라니!
아닌게 아니라 한글을 만드는데 녹도문인 옛날(古) 전(篆)자를 참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한글과 전자는 전혀 비슷하지 않으므로 전자 이전에 있었던 어떤 고대글자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그럼 그게 무슨 글자였는가?
위서라는 한단고기에 보면 38글자인 “가림토”글자가 나와있다. 3세 단군 가륵이 소리를 적기 위해 글자를 만드는데 한글의 전신이라고 보면 틀림없는 모양이다. ㅍ 위에 점이 붙은 것도 있고 △ 위에 가로로 선을 그은 것, 工, X, M을 닮은 글자가 있기는 하지만 한글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자모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너무 태연스레 말하니까 “내가 학교다닐 때 자느라고 못배웠나?”하실 분이 계실텐데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위서라는 한단고기에만 실려있는 내용이니 의심받아 마땅하다. 이거야말로 위서의 증거가 아닌가. 세종임금 이전에 쓴 문헌중에 이런 글자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바위 덩어리에 새긴 것조차 없다. 그러니 현세에 있는 것을 조금씩 고쳐서 한단고기라는데다 떡하니 실어놓은 것 아니냐...
그런데 말이다. 물론 한반도에는 없지만 증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두실 필요가 있다. 연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82년 경에 KBS에서 기획특집으로 “신 왕오천축국전”을 방영한 적이 있다. 여기보면 왕오스님이 갔다는 천축국, 즉 서역의 어느 한 지방을 가는데, 거기 간판이 “한글과 너무 흡사해서” 발음을 그렇게 해보니 그 지방 사람들 발음과 정말 “비슷한” 것이다. 신기해하는 PD가 뜻을 물으니 그건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 지방에는 그런 글자가 많아서 계속 고개를 설레거리며 발음을 했다.
한글의 본질적인 구조가 산스크리트어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설은 심심찮게 있어왔다. 古篆이라는 것이 바로 산스크리트 문자가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나도 이 학설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증명하기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인도의 아쇼카왕 비문에 한글과 비슷한 글자가 있다고 “치앙마이”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김병호(전직 UN고문관, 소설“고구려를 위하여”저자)씨가 전해주고 있다. 이런 식의 흔적은 한 둘이 아니다. 일본의 고대유물에 새겨진 신지문자나 만주와 경상북도 경산에서 탁본한 고대문자(문화일보.96)는 이런 종류의 문자가 고대에 실재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만주탁본의 경우에는 한단고기에 적힌대로 읽을 경우 일부를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다.
한글은 그 모음의 형태가 미노아의 쐐기 문자와 형태가 같다. 가림토나 고린토(성경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고린토(도))가 발음이 유사하다는 착각을 하면서 보면 정말 비슷한 구조로 만들었다.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점으로 기본구조를 이루는데 구조가 단순하지만 뜻이 깊다. 이것이 천지인(하늘/땅/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알고 계실테다. 자음의 형태는 발음하는 사람 입과 혀와 이와 목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미 인도와 서역에 남아있는 유적의 그림과 그 형태과 매우 흡사하다. 이런 글자를 어느 한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보다는 많은 종족과 시간 속에서 이 글자를 사용하던 종족집단이 각기 자기 필요에서 기준을 잡고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글에 관해서는 특히, 우리 말의 원초적인 단어가 인도아리안 계통(영어나 그리스어와 계통이 같은)과 흡사한 것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산스크리트와 소아시아의 아이디어를 빌려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 가능성은 고대의 옛조선에서 이런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사람의 한웅과 한사람의 단군을 교육받은 우리에게야 물론 “청천벽력”이겠지만 사실이 어느쪽일지는 알 수 없다.(아직은)
만약 이 글자를 그렇게 오래 전에 만들었다면 왜 널리 사용하지 못하고 흔적이 없어져버렸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표의(상형)문자가 고대의 각양각색의 종족을 표준화하기에 유리한 반면 표음문자는 쉽게 배울 수는 있지만 여러 종족이 공통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글자다.
표음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종족이 문화단위의 민족으로 결집되고 어느 정도 사회가 공통적이고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사투리가 섞이긴 해도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는 종족집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가림토는 널리 보급하는 보급형이 될 수 없었다. 중원과 서역, 만주라는 다양한 지역을 아우르던 종족들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표음문자는 위력을 잃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시 동아시아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경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한자의 연원이야말로“중화적” 이라는 말 그대로 많은 부분을 우리 종족이 관여했다. 한자의 시초로 여겨지는 갑골문자만해도 배달범족 은나라의 작품이 아니던가.
우리 역시 근 수 천년을 한자를 써왔다. 이건 분명히 우리 글자다. 영어에 라틴어원이 있다고 다 버렸다면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나오는가? 한글전용을 나는 과학기술적인 용도에서 그렇게 하자는 것이지 한자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자가 우리 것이라는 증거는 또 있다. 중국의 대표사전이라고 일컫는 강희자전을 보면 발음기호를 한자로 적어놓았는데, 이걸 중국사람들은 발음할 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사용하지 않는다. 그 발음이 안되니 발음기호를 표시해놓은 것이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우리나라 사람이 이 발음기호에 따라 그 글자를 발음하는 것은 매우 쉽다.(이 이야기는 내가 입사할 당시 회사연수원에서 한단고기의 저자 임승국교수가 강연한 내용이다)
왜 한글의 연원이 문제냐고? 그건 이렇다. 세종임금이 창제했다고 사실로 인정해버리고 나면 시험치는데는 편하지만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문화민족이 할 일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연구의 손길을 놓고만다면 일본 고대의 신지문자에서 한글이 왔다고 일본사람들이 주장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중국사람들이 만주의 유적을 뒤져 자기네들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해도 대항할 수 없다. 역사란 정말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다.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런 작업을 누가 할 것인가? 죄다 손놓고 있다. 덕분에 이 신비한 옛글자의 연원은 가끔씩 파편처럼 날아오는 여행가들의 수기에 실려있을 뿐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주류 역사학계에 이 문제를 들이밀 수는 없다. 그 학계야 일제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나라 오그라들이기 집단들이니 한대도 맡기고싶지 않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역사학자들은 패거리다.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학회에서 주류의 주장에 벗어나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배척당하고 그 결과, 밥벌이도 잃는다. 교수니 편찬위원이니 하는 직함의 후보에서 아예 검은 줄이 쫙 그인다는 의미다. 누가 미친놈이라는 소리 들어가면서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이런 비주류 이야기는 주로 재야사학계의 일부와 개인연구자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세력이 약하고 돈이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여러분이 그들을 도우고 싶다면 도라이 취급을 안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진지하다.
한글이 어디서 왔건 우리가 이렇게 잘 쓰고있으니 분명 문화적인 소유권자는 우리이다.
그러나 필자가 한글의 연원을 따져보자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옛 흔적이나 여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이다.
시종일관, 필자는 우리 종족의 연원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하는데, 이제 슬슬 그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된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