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명퇴(명예퇴직) 바람'이 불면서 `임금피크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신용보증기금ㆍ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전 금융권으로 확산될 경우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은행권의 명퇴 실시와 이로 인해 야기되는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을 단숨에 잠재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5일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횡행하는 시대에 근로자들의 직업적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현재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불가론을 펼쳤다.
은행 관계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 피크' 연령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보는 물론이고, 현재 도입을 추진중인 산업은행, 그리고 지난해 `교수제'라는 방식으로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행은 모두 58세 정년을 보장하고, 55세 이후 3년간 임금을 줄여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면 시중은행들의 경우는 58세 정년을 채우는 직원이 극히 드문 것은 물론, 50세 이상 직원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정년 및 `임금 피크' 연령을 결정하는 게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국민은행 노동조합 간부는 "우리도 신보나 산은처럼 58세 정년이 보장되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수 있다면 왜 마다하겠는가"라고 반문하고, "현실적으로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임금 피크'에 도달한 직원에게 나눠줄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도 내부적으로 임금피크제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임금 피크에 도달한 직원에게 어떤 일감을 나눠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연구된 게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같은 사정은 모든 시중은행들이 거의 마찬가지"라고 전제하고 "단순히 은행원들의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는 은행권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여타 기업체들에 미칠 파장도 걱정거리다. 한 은행의 노조 간부는 "은행권에서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여타 사업장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 경우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에 여타 업종 노조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