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는 이 나라를 지켰고 친공파는 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했다.
좌익들이 친일파로 규정한 많은 사람이 있다. 을사5적을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 내내 일본에 부역한 사람은 당연히 친일파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일본의 전쟁에 학도병 등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한 사람도 친일파로 규정하고 있다.
작가 이광수, 독립운동가 장덕수, 김성수 등을 친일파로 규정된 대표적 이유가 일본의 전쟁에 학도병 등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는 것을 들고 있다. 좌익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친일파로 규정하고 있는데 일본 만주군대에서 장교로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좌익들의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당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의 정책에 따라 살아왔던 한국인의 대다수가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소위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는 사람의 면면을 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은 친공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거나 물든 사람들이라 것을 알 수 있다(소수의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도 있었다).
해방 후 한국에는 많게는 500만 명의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동조자가 있었다고 한다(그 수가 100만 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음). 이를 보면 남한에 거주하던 성인의 99%가 친일파였고, 해방 후에는 성인의 50%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동조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익들이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려면 남한의 성인 1,000만 명을 친일파로 규정해야 할 것이고, 우익은 500만 명의 공산주의자의 명단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하다면 남한 국민의 친일파거나 공산주의자라는 것이 된다.
백이와 숙제 이야기가 있다. 한 나라를 다스리던 고죽군(孤竹君)이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고죽군이 나라를 숙제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숙제가 그것이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사양하자 백이 역시도 받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나라를 떠나 문왕의 명성을 듣고 주(周)나라로 갔으나, 이미 문왕은 죽고 그의 아들인 무왕이 왕위에 올라 은(殷)나라를 정벌하려 했다. 이에 백이와 숙제가 그 정벌의 적절치 못함을 간했으나 무왕이 듣지 않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주나라의 녹을 받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뜯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다음 백과 인용).
좌익들은 일본 식민지 시대를 살아왔던 국민에게 백이숙제를 요구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중 많은 수가 공산주의자가 된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그들이 용공주의자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6.25남침 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의 침략에 동조했고 남한의 적화에 뛰어들었다. 이와 반대로 좌익들이 친일파라고 하는 국민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한 좌익, 이 나라를 지킨 사람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좌익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우리 국민 모두를 친일파로 기술을 해도 좋다. 대신 그런 친일파가 공산주의자들과 싸워 이 나라를 지켰고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북한 공산주의자와 함께 인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을 반드시 기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