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는가? 그는 인도에서 태어나 중국에 불교를 전할 뜻을 세우고 히말라야를 넘어 동쪽으로 갔다. 이처럼 뜻을 세운 사람 하나의 흔적도 분명히 남아있는데 거대한 종족의 무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이것도 역사를 찾는 후세의 노력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하는 문제겠지만 상상력의 부족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사례 하나를 들어 우리의 상상력을 비약시켜보자.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 이것이 곰 토템족과 호랑이 토템족의 투쟁으로 곰족이 승리한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은 역사가들도 지지하는 설이다. 곰족이 우리가 말하는 단군조선의 정통구성원이었다면, 호랑이족은 누구였으며 정통성 다툼에 패배한 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단군신화에서 나타나는 상징성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므로, 실제로 역사와 연결시켜보자. 단군왕검의 출현은 환웅 신시배달국의 분열과 멸망을 의미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환웅이 아들을 보고 아들이 왕이 되는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왕조와 왕조의 교체를 너무나 함축적으로 설명한 신화다. 창세기 1장1절과 2절 사이의 간격만큼 먼, 그런 거리를 단 한 사건으로 연결한다. 신화의 용도는 그런 것이다. 천년의 비약이 환웅과 웅녀의 가족사에 숨어있는 셈이다.
이 연결고리에 곰과 호랑이의 설화가 끼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 그대로 원래 함께 살았던 곰과 호랑이가 단군을 기점으로 헤어진다는 의미다. 그것도 마늘과 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곰은 환웅의 적통을 이어받을 옥동자 단군을 낳지만 호랑이는 참지못하고 도망간다. 그리고 그 후로 그들의 흔적은 사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호랑이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호랑이족이 정통성에 패배해 권력을 잃고 피지배층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도 있고 멀리멀리 다른 땅을 찾아 떠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흔적을 찾아떠나보면 호랑이 토템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동북부에는 단군신화와 유사한 내용의 설화가 전하고 있고 산동성에서 청나라 때 발견되어 다시 세워진 고대 사당에는 단군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판박이한 듯한 그림이 있는데, 여기서는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적통을 잇는다. 호랑이라는 점만 빼면 단군신화와 이야기 줄거리가 같은 벽화가 걸린 이 사당의 이름을 “무씨 사당”이라고 한다.
나는 호랑이족의 출현을 중국왕조의 출현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물론 이때만 해도 중국적 특징보다는 북방 기마민족의 흔적이 더 많은 고대중국의 국가다.
실제로 초대 단군시대는 중국의 요임금과 맞물려있고, 한단고기가 주장하는대로라면 요임금은 한웅시대에 배달국에 도전했던 황제(黃帝)헌원 이후 최초로 반란을 일으켜 독자적인 나라을 세운 중국왕이다. 한단고기가 조작이라고 하더라도 요임금이 중국의 동북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중국 역사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임금의 어머니는 동쪽 바다로 놀러갔다가 용에게 겁탈당해 요임금을 낳는다. 특히 요임금이 천거하여 왕이 된 순임금의 아버지는 고수라는 사람으로 중국이 아닌 동쪽나라의 관리였다. 한단고기의 연대기를 믿기만 한다면 순임금이 고조선 관리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증거할 수 있다.
이 때만해도 중국과 조선이 민족국가로 분리된 때가 아니었으므로 이런 가능성은 충분하다. 즉, 요임금이나 순임금은 중국보다는 우리종족에게 더 가깝다는 의미다.(그러나 일단 국수주의적인 해석은 삼가자)
요순 뒤를 잇는 하나라와 은나라에 와서 드디어 우리는 호랑이의 정체를 본다. 환웅의 배달국에서 함께 살았던 곰과 범은 아마도 누가 진정한 계승권자냐라는 적통의 문제로 갈라선 것으로 보인다. 단군신화는 그 사실을 매우 상징적이지만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범은 못참고 갔고 곰은 사람이 되어 적통을 이었다는 거다. 적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곰족과 갈라선 범족은 이미 환웅시절부터 광범위하게 대륙에 흩어져있던 夷족(배달족)을 결합하여 곰족의 조선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 첫나라가 은나라다. 그들이 배달범족이다.
상상을 돕기 위해 이렇게 정리해보자. 한웅의 신시배달국 시절에 많은 종족들이 연합을 이루어 살았다. 물론 그중 적통은 고조선으로 나라를 이어간 곰족들이지만 다른 많은 종족들(말갈,선비 등등)과는 형제국이었을 것이다.
적통을 잇는 과정에서 범족이 분리되자 그들은 곰족과 대립하게 되었고 다른 형제국들과는 달리 중원으로 흘러들어가 중국족, 즉 화하족과 혼혈문화를 이룬다. 중국문화 자체가 혼혈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상당부분 기마종족의 특징을 지키며 나라를 이어간다.
이 배달범족은 도대체 언제까지 그 고유성을 지켰을까? 지금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흑탕에 묻혀 고유함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는 상당한 사료를 근거로 이 흔적을 한나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우선 주나라에 패퇴한 기자가 동북으로 가서 조선의 제후국인 번조선의 왕이 되는 장면에서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연대기로 보면 진시왕 시절에 해모수가 부여를 세우고 조선을 폐했으므로, 한나라에 망했다는 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라 이 번조선이다.) 성삼문이 읊었다는 백이숙제의 수양산 이야기도 이 시절의 것이다. 하는 짓으로 보아 틀림없이 배달족이다...이야기를 이어보면, 은나라가 망한후 주나라가 섰지만 많은 수의 배달범족이 여전히 중국땅에 살았다. 그래서 광범위한 혼혈이 이루어지고 이 때문에 옛조선의 동이족은 더욱 이들을 동족취급하지 않는데 그러다보니 우리가 알고있는 “사기열전”의 많은 나라들이 우리 갈래인 배달범족의 나라다.
공자가 인자의 나라인 동쪽 나라로 가고싶다고 한 것은 바로 그들의 원래 출신인 배달나라로 가고싶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공자가 보기에 모략과 후안무치가 난무한 중원에 비해 동쪽나라의 태평성대는 거의 환상이었으리라.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사람들이 다 타락한 지금에 와서, 태평성대의 이야기는 인기가 없다. 오히려 모사와 정쟁으로 점철된 사기열전은 잘 팔릴지언정 교화와 훈시로 가득한 옛조선의 기록은 정말 재미가 없다.
사기열전에 나오는 춘추시대의 나라들중 거의 반이 배달범족의 나라였다. 이런 기록은 그들이 조선과 적절히 연합하기도 하고 적대하기도 하면서 나라를 운영했다는 사소한 기록을 죄다 훑어봐야 가능한 어려운 작업이다.
사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는 것이 중국대륙 내의 배달범족 국가다. 그들이야 혼혈문화로 뒤덮이기 시작했던 초대 단군시절부터 조금씩 배달족의 순수성, 즉 기마종족적인 요소와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은나라는 틀림없이 기마종족적 요소가 강한 북방민족의 후예였고, 주나라 동북을 차지한 연나라는 그 국민들 대다수가 漢족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는 주나라 무왕의 아우가 풍속을 바꾸는데 삼년이 걸렸다고 고백한 틀림없는 배달범족 국가이고 송(宋)나라와 위(衛)나라도 배달범족국가라는 증거가 많은 나라들이다.
배달범족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보아야하지만 한웅배달국 시절에 중국에 터를 잡은 배달국가, 즉 동이(東夷)가 아닌 다른 夷족 국가로는 제나라와 래나라, 오월동주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가 있다. 특히 패왕항우로 유명한 초나라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을 구성하는 종족들은 주로 蠻夷(만이), 淮夷(회이), 萊夷(래이) 등의 초기 배달족이다. 배달국에 있었던 아홉가지 夷족(九夷)의 후손들인 셈이다.
여기까지 오면 머리가 어지럽고, 박창규와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느끼실 것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알고있는 것일까? 만약 박창규가 맞다면 내가 알고있는 것은 무언가? 중국이 우리라고? 이 녀석이 제 정신인가?
우리가 알고있는 문헌으로의 역사란 중국족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만든 책에 의지하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쓰기 시작한 책에서 시작하는 역사라... 예를 들어 이런 얘기는 어떨까? 이건 정말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상상력에 의지해 술 마실 때나 꺼내는 추론이다.
사기열전은 이미 한나라라는 화하족의 나라가 선 다음에 나온 책인데, 여기 보면 진시황은 중국땅에서 배달족의 영향을 몰아내기 위해 장성을 세우고 옛기록을 태우고 유(儒)라고 부르는 지식인들을 매장한다.
儒, 지금은 공자학파로 부르지만 그때만해도 공자를 비롯해 제자백가를 모두 유라고 불렀다. 이를 제사장적인 전통을 가진 기마민족의 지식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많다.(주무왕이 기자에게서 배운 사례 등) 단군왕검이라는 제사장적 전통이 곰족의 것이라면 儒라는 지식인적 전통은 배달 범족의 것이었던 셈이다.
진시황은 이런 과정을 거쳐 배달족의 나라들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끝내 완성하지는 못하고 전국을 맞는다. 유방과 항우의 혈전으로 삼천만에 달했던 중원의 인구는 육백만으로 줄어들었다. 배달범족은 이 때 씨가 말라버린 셈이다. 이 때부터 “중국”이 섰다. 漢나라다.
그 한나라가 사기열전을 썼다! 제 종족 이외의 종족을 죄다 제거하고 그 땅에 있는 옛것을 죄다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역사전환의 출발점"이다...
호랑이들은 서쪽으로 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진시왕 때 망했다가 다시 일어나 한나라와 중원을 놓고 일전을 벌인 초(楚)나라는 만이(蠻夷)땅에 살던 웅역이라는 사람의 조상에서 비롯된다고 사기열전에 적혀있다. 근원을 잘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사마천의 의도를 잘아는 나는 패왕 항우가 배달범족의 마지막 왕이었음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정말? 정말! 장기둘 때 생각나겠네? 응! 언제나 초나라를 아래로 취급하는 것, 바꾸면 안되나?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