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 사는 지기와
가을이 이슥해진 시월 하순이다. 때 이른 추위가 닥쳐 며칠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시간 연사 들녘을 두르는 산책을 먼저 하고 교정으로 들어 하루를 시작함은 변함이 없다. 어제까지 정기고사를 보고 주중 수요일부터 평소대로 교과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빈 시간에 이웃 학교 근무하는 지기에게 문자를 넣어봤다. 그간 잘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했다.
지기와는 30대 후반 같은 학교에서 만나 20여 년째 교류가 있다. 예전엔 같은 아파트단지, 같은 동, 같은 엘리베이트를 쓴 적도 있다. 이후 지기는 근무지가 바뀌면서 김해 장유로 이사를 했다. 둘은 세월이 흘러 정년을 3년 앞두고 공교롭게도 거제로 밀려온 동병상련을 겪는다. 성장지와 출신학교는 달라도 가르치는 교과가 국어라 서로는 초등학교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둘 다 낯선 거제로 건너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지냈다. 나는 연사에 와실을 정하고 지기는 옥포에 원룸을 정해 주중을 보내고 금요일 오후 거가대교를 건너 각자 집으로 가 주말을 보내고 왔다. 나는 여전히 곡차를 반주 삼아 드는데 지기는 작년 봄부터 즐기는 술을 끊고 일적불음이다. 우리는 가끔 연초삼거리 돼지국밥집에서 자리를 가졌으나 지기가 술을 끊고부터 만남이 뜸했다.
이제 교직 마감도 몇 달 남지 않아 하나둘 정리해야 하는지라 내가 만나자는 제의에 지기도 흔쾌히 동의했다. 수요일 퇴근 이후 우리가 가끔 자리를 가졌던 삼거리 국밥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과를 끝내고 와실로 들어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연초삼거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거제대로 차도 곁의 보도를 따라가면 시간이 적게 걸리나 연사 들녘과 연초천을 둘러 가는 길을 택했다.
연사 들녘을 지나 연초천 산책로를 걸으니 달포 전 북녘에서 날아온 진객 개리가 먹이활동을 하느라 길섶까지 주춤주춤 기어 나왔다. 거위처럼 생긴 개리는 천연기념물 325호로 멸종 위기 동식물 적색 보호종에 등록되어 있었다. 연초천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북녘으로 돌아갈 셈인 듯했다. 효촌교를 지나 연사삼거리 돼지국밥집에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지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잠시 뒤 나타난 지기와 마주 앉아 수육을 앞에 놓고 맑은 술을 시켰다. 지기는 여전히 금주를 실천했지만 나는 지기가 채워주는 술잔을 들어 천천히 음미했다. 요새 먹은 약이 있어 술을 끊다시피 참아 내느라고 잔을 들어본 지가 오래되었다. 염증이 가라앉기까지 곡차가 좋지 않을 듯해 인내심을 갖고 절주를 하는 셈이다. 그래도 불가피한 자리에 맑은 술 서너 잔은 게눈감추듯이다.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를 화제로 삼아 내가 비운 술잔을 지기는 꼬박꼬박 채워주었다. 그간 혼자 자작에 익숙했는데 잔을 채워주는 이가 있어 고마웠다. 수육 접시가 비워질 때 국밥을 시켜 먹었다. 그즈음 나와 같은 학교 근무하는 동료 둘이 식당을 찾아 들었다. 그들도 연사 원룸에 사는 이들이었다. 낮에 조리 종사원 파업으로 샌드위치 점심이 부실해 저녁 끼니를 벌충하려 했다.
식당에서 나오니 짧아진 가을 해로 바깥은 캄캄했다. 지기는 원룸이 있는 옥포로 바로 가질 않고 내가 아침저녁 걷는 연초천 산책로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기의 길 안내를 맡아 효촌교 앞으로 나가 보안등이 켜진 천변을 따라 걸었다. 연효교에는 조명이 들어와 운치가 있었다. 연사마을에 살면서 새벽녘에 천변 산책로를 걸어봐도 초저녁이나 심야에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연초천 천변을 따라 효촌교까지 내려가 들녘 한복판 농로를 따라 걸었다. 맞은편 수월과 고현의 거리와 고층 아파트는 불빛이 환했다. 동녘 하늘에는 엷은 구름 사이로 음력 구월 보름의 만월이 솟아 있었다. 연사마을 근처까지 와서 지기는 아까 내려왔던 연초삼거리로 올라가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와실 골목으로 향했다. 와실로 들어 세탁기를 돌려 세탁물을 펼쳐 널고 잠에 들었다. 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