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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주(不敎而誅)
가르치지 않고 벌한다는 뜻으로, 평소에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가 일단 일을 저지르면 주벌을 한다는 의미로, 처벌에 앞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敎 : 가르칠 교(攵/7)
而 : 말이을 이(而/0)
誅 : 벨 주(言/6)
(유의어)
불교이살(不敎而殺)
출전 : 순자(荀子) 부국편(富國篇)
태어나면서 저절로 아는 것이 공자(孔子)가 말한 생이지지(生而知之)다. 이런 사람은 천재 아니면 드물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나라가 많다.
영국 격언에선 ‘태어날 때부터 현명하고, 또 학문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한다.
몽고에선 절충하여 ‘사람은 현명하게 태어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에 의해서 사람들은 현자가 되는 것이다’고 했다.
어느 것이나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가르칠 교(敎)의 부수인 '둥글월 문'은 원래 '칠 복(攴, 攵)'인데 때려서 효(孝)를 가르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평소 가르치지 않고 있다가(不敎) 일단 일을 저지르면 사람을 죽인다(而誅)는 무시무시한 말도 교육을 강조하는 말이다. 목벨 주(誅)는 '벌하다', '책임을 묻다'라는 뜻이니 처벌에 앞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성어는 순자(荀子)의 부국(富國)편에 먼저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 사람이었던 순황(荀況)의 저작으로 그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여 예(禮)의 유학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분을 보자. "가르치지 않고 처벌하면 형벌이 번거로워져 사악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가르치고도 형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간사한 백성들은 고치지 않는다."
논어(論語)의 요왈(堯曰)편에는 불교이살(不敎而殺)로 나온다. 제자 자장(子張)이 오미사악(五美四惡)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답한다.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하다 하고, 미리 주의를 주지 않고서 완성을 요구하는 것을 포악하다 하고, 소홀하게 명령하고 기한만 재촉하는 것을 해친다고 하고, 고르게 재물을 주는 것에 인색한 사람을 아전 같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모르더라도 가르치지도 않고 벌한다면 따를 사람이 없다. 어려서부터 자식이 귀하다고 남에게 폐가 되는 짓을 해도 꾸짖지 않는다면 자라서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지지한다고 구체적인 것을 밝히지도 않고 밀어붙인다면 손해 보는 측의 불만만 쌓인다.
⏹ 불교이주(不敎而誅)
이 성어(不教而誅)는 순자(荀子) 부국편(富國篇)에 나오며, 불교이살(不敎而殺)은 논어(論語) 요왈(堯曰)편에 나온다.
그러므로 백성들을 교화하지 않고 처벌한다면 형벌만 번거로워질 뿐이며 사악함을 막지 못할 것이다.
교화시키면서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사악한 백성들은 뉘우치지 않을 것이다. 벌은 주면서 상을 주지 않으면 근면한 백성들도 힘써 일하지 않을 것이다.
처벌하고 상을 주는데 일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의심을 하면서 풍속이 어지러워져 백성은 하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옛 훌륭한 왕들은 예의로서 백성을 일치하게 하고, 충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였고, 현명한 사람을 존숭하며 능력에 맞게 사람을 써 우열을 정하고, 관직과 작위(官爵)로 서열을 밝혀주며, 그들의 일을 때에 따라 조절하여 부담을 줄이며 조절해 주었으며, 널리 백성들을 감싸주며 어린아이처럼 생활을 보호해 주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간사한 일이 없었고, 도둑이 발생하지 않고 백성들이 감화되어 근면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군주의 도(道)가 쉽고 백성의 마음이 견고해 지고, 나라의 법령이 한결같았으며 기준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옛말에 ‘위(군주)가 한결같으면 백성도 한결같고, 위가 흔들이면 아래도 흔들리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풀과 나무 가지들이 뿌리를 따라 자라는 것과 같다.’ 라고 한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故不教而誅, 則刑繁而邪不勝; 教而不誅, 則姦民不懲; 誅而不賞, 則勤厲之民不勸; 誅賞而不類, 則下疑俗險而百姓不一. 故先王明禮義以壹之, 致忠信以愛之, 尚賢使能以次之, 爵服慶賞以申重之, 時其事, 輕其任, 以調齊之, 潢然兼覆之, 養長之, 如保赤子. 若是, 故姦邪不作, 盜賊不起, 而化善者勸勉矣. 是何邪? 則其道易, 其塞固, 其政令一, 其防表明. 故曰 : 上一則下一矣, 上二則下二矣. 辟之若屮木枝葉必類本. 此之謂也.
불교이살(不敎而殺)은 논어(論語) 요왈(堯曰)편에도 보인다.
자장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떠해야 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 미덕을 높이고 네 가지 악행을 물리치면 정치를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미덕이란 ‘군자는 은혜를 베풀지만 소비하지 않고, 백성을 부리지만 원망을 사지 않고, 하고자 하지만 탐하지 않고, 장중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다.’이다.
네 가지 악이란, ‘가르치지 않고서 죽이는 것을 잔혹하다고 말하고(不教而殺謂之虐), 먼저 일을 고해주지 않고서 갑자기 성과를 보려고 하는 것을 포악함이라 말하고, 시작은 게을리 하다가 갑자기 기한을 정해 요구하는 것을 사람을 해친다고 말하고, 주겠다고 말하고서도 출납할 때가 되면 인색한 것을 관리라고 말한다(不敎而殺謂之虐, 不戒視成謂之暴, 慢令致期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謂之有司).’이다.
(論語 堯曰二十之二)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敎(가르칠 교)는 ❶회의문자로 教(교)의 본자(本字)로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合字)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敎자는 '가르치다'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敎자는 爻(효 효)자와 子(아들 자)자,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그래서 敎(교)는 (1)종교(宗敎) (2)삼문(三門) 즉 교(敎), 율(律), 선(禪) 중(中)의 하나. 이 교는 경론(經論)으로써 신앙(信仰)의 근본을 삼음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본받다 ③가르침 ④~로 하여금 ~하게 함 ⑤교령(敎令: 임금의 명령) ⑥종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연(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침을 교수(敎授), 가르치어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을 교육(敎育),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敎師),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쓰는 책을 교과서(敎科書), 학교 교사 가운데, 오로지 수업에만 쓰이는 방을 교실(敎室), 가르치고 깨우침, 타이름, 훈계함을 교훈(敎訓), 가르쳐 기름을 교양(敎養), 가르치고 배우는 데 쓰이는 재료를 교재(敎材), 가르치는 과목을 교과(敎科), 종교 단체의 모임을 교회(敎會),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함을 교화(敎化), 종교 상의 이치나 원리를 교리(敎理),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교도(敎徒), 가르쳐서 익히게 함을 교습(敎習), 교재로 쓰는 책을 교재(敎本), 종교를 믿는 사람을 교인(敎人),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이라는 뜻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말을 교외별전(敎外別傳),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시켜 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자신의 학업을 증진시킴 또는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서로 자신의 공부를 진보 시킨다는 말을 교학상장(敎學相長),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을 교자채신(敎子採薪), 신부의 교육은 시집 왔을 때에 바로 하라는 교부초래(敎婦初來),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 교육한다는 뜻으로 부자父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의 말을 역자교지(易子敎之), 말이 없는 가운데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불언지교(不言之敎)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誅(벨 주)는 형성문자로 诛(주)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朱(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誅(주)는 ①베다 ②책(責)하다 ③치다 ④덜다 ⑤형벌(刑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벨 할(割), 벨 작(斫), 벨 참(斬)이다. 용례로는 죄를 지은 일에 대하여 벌을 줌을 주사(誅事),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불의를 논하여 처벌하는 일을 주심(誅心), 죄인의 목을 베고 사지를 찢어 죽임을 주책(誅磔), 죄인을 베어 죽여 없앰을 주출(誅黜), 관청에서 백성의 재물 따위를 강제로 요구하여 빼앗음을 주구(誅求), 죄를 저지른 사람을 꾸짖어서 침을 주벌(誅伐), 죄에 해당시키어 죽임을 주살(誅殺), 엄하게 꾸짖고 나무람을 주책(誅責), 죄인을 죽여 없앰을 주멸(誅滅), 죄를 저지른 사람을 꾸짖어서 벌을 줌을 주벌(誅罰), 죄에 따르는 형벌로 마구 죽임을 주륙(誅戮), 토벌하여 평정하는 것 모조리 죽이는 것을 주이(誅荑), 형벌로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하는 일을 주찬(誅竄), 귀신이 내리는 벌을 귀주(鬼誅), 대역 죄인을 왕법에 의하여 주살함을 왕주(王誅), 죄인을 베어 죽임을 혈주(血誅), 하늘이 아무도 모르게 가하는 주벌을 음주(陰誅), 형벌을 받아 죽음을 당함을 복주(伏誅), 엄하게 주벌에 처함을 엄주(嚴誅), 한 사람의 죄로 일족을 죽임을 족주(族誅), 허물이나 죄를 글로 죽 써서 내리침을 필주(筆誅), 역적과 도적을 베어 물리친다는 말을 주참적도(誅斬賊盜),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을 이르는 말을 가렴주구(苛斂誅求), 입과 붓으로 잘못을 징벌함을 이르는 말을 구주필벌(口誅筆伐), 붓과 먹으로 징벌한다는 뜻으로 남의 죄과를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통해 글로써 공격함을 이르는 말을 필주묵벌(筆誅墨伐)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