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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9일(수)
* 시작 기도
(요 9:3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주님...
주께서는 이 땅에 심판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고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자들은 영의 눈으로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던 바리새인은 영적 소경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종 역시 영적 소경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명도 모르던 자였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많이 쓰여 있는 영생의 의미도 몰랐습니다.
이런 나는 육신의 눈은 떴으나 영적 소경임이 분명합니다.
나의 소경됨을 주님 앞에서 진실되게 고백할 때 주님은 나의 닫힌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복음을 알게 하셨고 그 복음을 통하여 생명 곧 영원한 생명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순간순간 넘어지게 하는 나의 의,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것이 나의 모습임을 솔직하게 고백하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2:1-34
제목 : 이스라엘 자손은 진을 치되 성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3 동방 해 돋는 쪽에 진 칠 자는 그 진영별로 유다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4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74,600명이며
5 그 곁에 진 칠 자는 잇사갈 지파라. 잇사갈 자손의 지휘관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
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54,400명이라.
7 그리고 스불론 지파라.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
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57,400명이니
9 유다 진영에 속한 군대로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186,400명이라. 그들은 제1대로 행진할지니라.
10 남쪽에는 르우벤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르우벤 자손의 지휘관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1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46,500명이며
12 그 곁에 진 칠 자는 시므온 지파라. 시므온 자손의 지휘관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
1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59,300명이며
14 또 갓 지파라. 갓 자손의 지휘관은 르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
15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45,650명이니
16 르우벤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151,450명이라. 그들은 제2대로 행진할지니라.
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
18 서쪽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19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40,500명이며
20 그 곁에는 므낫세 지파가 있을 것이라. 므낫세 자손의 지휘관은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
2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32,200명이며
22 또 베냐민 지파라. 베냐민 자손의 지휘관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
2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35,400명이니
24 에브라임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108,100명이라. 그들은 제3대로 행진할지니라.
25 북쪽에는 단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2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62,700명이며
27 그 곁에 진 칠 자는 아셀 지파라. 아셀 자손의 지휘관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2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41,500명이며
29 또 납달리 지파라.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요
30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53,400명이니
31 단의 진영에 속하여 계수함을 받은 군인의 총계는 157,600명이라. 그들은 기를 따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 하시니라.
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603,550명이며
33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3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횃불언약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들어가 종살이를 한다.
입애굽은 야곱의 가족 70명 정도였지만, 400년이 지나면서 그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20세 이상의 남자만 603,550명이니까 노인들 여자들 19세 이하의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다 합하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와 공동체의 힘은 숫자에서 나오나보다.
지금 세계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나라들을 보면 국민 숫자가 많은 나라들이다.
중국이나 인도 등은 국격이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인구가 많으니까 감히 무시를 못할 뿐 아니라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교회들이 숫자 불리기에 애를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숫자가 중요하지만, 그건 세상에서의 일이다.
세상은 숫자로 그 힘을 자랑하지만,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결코 숫자로 일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입애굽의 시작인 야곱의 가족 70명에 비하면 출애굽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 숫자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실 때 그들을 택하신 이유가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숫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야곱의 가족 70명 역시 아브라함에 비하면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다.
아브라함은 부부 두 사람과 그의 아들인 이삭 밖에 없었는데 이삭을 거쳐 야곱의 시대에는 그 수가 7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출애굽 할 때 수백만 명으로 늘어난 것은 단순히 인구 숫자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오늘 본문은 이 60만 대군의 조직을 새롭게 하여 행진할 때 순서를 보여주고, 그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살고, 또한 행진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 12지파에 레위지파까지 포함하는 이스라엘은 각 진영별로 3개 지파씩 구분하였다.
제1대는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로 구성되었고 이를 유다 진영이라고 한다.
제2대는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로 구성되었고 이를 르우벤 진영이라고 한다.
제3대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었고 이를 에브라임 진영이라고 한다.
제4대는 단 아셀 납달리 지파로 구성되었고 이를 단 진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순서대로 행진을 하도록 하셨다.
중요한 것은 2대와 3대 사이에 레위지파가 행진을 하고 레위지파의 중앙에 하나님의 성막을 가지고 행진하도록 하였다.
이는 그들이 행진할 때나 진을 치고 머물러 있을 때를 막론하고 항상 성막 중심의 삶을 살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는 성막이 없었기 때문에 신앙적 구심점이 없었다.
그러나 비록 애굽의 종살이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과 항상 함께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창 46:3-4)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야곱 한 사람만 아니라 야곱의 자손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요, 또한 애굽에서 번성하는 야곱의 모든 후손 곧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들은 비록 애굽의 바로 왕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어찌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합지졸과도 같다.
원래 종이라는 신분은 훈련되지 못하고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기 때문에 어딘가 많이 모자라는 경향이 있다.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들이 출애굽 구원을 받고 시내산까지 왔다.
시내산까지 오는 과정도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홍해를 건너는 등 온갖 죽음의 고난을 무릅쓰고 왔기에 이들은 아마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그냥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한다면 이들은 절반도 가지 못해서 다 죽고 말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조직을 제정하시고, 그 조직의 중심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을 두도록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포도주도 버리고 부대도 찢어지고 말 것이다.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이들은 이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노예들이 아니다.
비록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출애굽 구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유인이다.
종살이하는 자들처럼 오합지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배어 있는 옛 사람 곧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습관과 찌꺼기들을 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의 소유된 자들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기에 그런 종의 근성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복종과 사랑의 존재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게 될 것이며, 그런 자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포도주와 부대를 모두 버리지 않게 된다.
이것은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을 가리켜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오직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외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도 않는다.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오직 죄를 깨닫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이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다 자기 의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그런 이들을 보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굽에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의 근성을 가지고 무려 400년 동안 살아왔다.
그것은 그들의 몸에 배였고, 그들의 삶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이용하여 그들의 문제나 상황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삼았다.
그러나 이제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었기에 거기에 걸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그 안에 있는 생명 역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 있도록 성막을 한 가운데 두게 하셨다.
그리고 그 성막을 중심으로 레위인이 진을 치고, 그 바깥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진을 치게 하신 것이다.
나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일명 모태신앙인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그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죄에 종노릇하는 자였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찬양과 기도도 열심히 하였으나 세상이 주는 유혹에 쉽게 넘어지기를 밥 먹듯 하였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아담의 생명으로써 나의 본질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복음이 찾아왔고, 그 복음은 나의 모든 신앙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마치 코페르니쿠스적인 개념의 전환이었다.
그로 인하여 여전히 아담의 생명으로 살던 내게 아들의 생명이 찾아왔고, 그것은 곧 위로부터 받은 생명이요 거듭남이었던 것이다.
이 생명으로 나는 죄로부터 온전히 구원받았다.
이것은 내게 어떤 선함이나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보혈의 능력에 의한 것이며 십자가의 은혜이다.
이제 죄에서 구원받은 자유인으로써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옛날 죄인이 살던 모습, 죄에 종노릇 하던 그런 습관적인 모습은 버려야 한다.
아니 그것조차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오직 죄에 대하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날마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
나는 아들의 생명을 얻어 날마다 영생을 누리며 살지만, 연약한 육신, 아직 구속받지 못한 몸이 있기에 순간순간 죄의 유혹 앞에서 넘어지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죄에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날 구원하신 주님께 지배를 받는 자로 살아간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생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를 나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만이 오직 나의 모든 것이 되시며, 나의 왕이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복음을 알기 전에는 내가 예수님을 잘 믿는 줄로 착각하였나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그 문제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님께 목이 터져라 부르짖곤 했나이다.
그 기도를 통하여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생명으로 살던 나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복음을 몰랐기에 그저 죄의 세상인 애굽에서의 습관이 나의 믿음으로 고착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는 내가 만든 우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예수를 우상으로 섬겼고, 내가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자리에 나를 올려놓는 패역을 행하던 자였나이다.
그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주님의 심판은 내게 합당하나이다.
하여 그 심판을 기꺼이 받습니다.
이제는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자 되어 육신의 연약함에 굴복하는 자가 아니라, 넘어질지라도 주님을 힘입어 다시 담대하게 일어나는 주의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
그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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