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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뒤흔들리던 혼란스러운 전쟁의 시대,
그 시대에 나, 서시가 살았노라,
영웅들은 천하를 호령하였으나
그 영웅들을 지배한 것은 나, 서시였노라
[경국지색(傾國之色) ~ 서시(西施). 열여섯번째 이야기]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화 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두운 방, 촛불 하나에 앞에 앉은 서용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
서용은 묵묵히 침묵을 지킨다.
"이제 어찌합니까,
륜이는 샤오룬 도련님의 정혼자라 소문이 퍼졌으니 이제 이곳에서는 살지 못합니다.
없던일로 하면 아이는 저대로..."
비구니가 되거나 백정의 아내밖에 더 되겠나요,
이화 부인은 뒷말을 억눌렀다.
서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과분할 정도로 잘 해주셨습니다.
허나 이번일은 우리의 분수에 넘는 과분한 은혜입니다. 이 일로 도련님께서도
곤란해 지실터이니 우리가 먼저 떠납시다."
"후우..."
서용은 말없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어두운 방 한쪽에서는 륜이 자리에 누워 숨죽이며 부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진 대인 저택에서 머물고 있었다.
륜이 샤오룬의 정혼자라고 하여 범려가 더 이상 륜이와 그 가족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나 진 대인이 혹시 모르니 범려가 이 도시를 떠날때까지는 자신의 집에
머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서용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
서용은 진 대인과의 대화를 회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보..."
"......그렇게 하는게 정말 옳은 일이겠느냐"
"그럼 어찌하오리까,"
이화 부인의 표정은 울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라도 할것없는
질책을 담고 있었다.
"딸을 이대로 비구니나 백정의 자식으로 만드실 작정이십니까?"
"여보, 분명 어르신께서.."
"그건 안됩니다"
이화 부인은 딱잘라 말했다.
서용은 부인의 단호한 태도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맛만 다신다.
"첩실 자리라서 제가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네, 물론 곱게 기른 내 딸을 정식 내자(內者:안사람)도 아닌 첩으로 준다는것, 그거
저로서는 아깝고 속타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르신 도움으로 여지껏 밥술 뜨고 산 우리에게 그런 투정이
타당하기나 할것입니까? 아닌거 저도 압니다.
그리고 샤오룬 도련님을 어렸을 적부터 옆에서 돌봐드린 저로서는 도련님께, 우리 륜이를 첩으로 준다 해도
안 아깝습니다, 안 아까워요. 그런데, 그런데 그 샤오룬 도련님이라서 제가 륜이를 못 드리겠습니다!
샤오룬 도련님이... 이 집이 얼마나 대단한 집인지 진작에 알았다면 전 륜이가 샤오룬 도련님 근처에 가는 것도
막았을 것입니다! 첩실이라도 그게 어디 보통 귀족의 첩실입니까? 오양 진씨 집안입니다!
이 시골 촌부의 아낙인 저도 아는, 그 진양 오씨 가문이란 말입니다!"
"여보.."
"더구나 샤오룬 도련님은 당주가 되실 분입니다.
그렇기에 전 륜이를 더더욱 못 내드리겠습니다. 내 딸만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게 다 샤오룬 도련님도 위하는 일입니다!
도련님도......제 자식이나 진배 마찬가지니까요!
진양 오씨 같은 가문은 첩실도 상급 귀족들의 여식만 들인다 하였습니다.
그런 자리에 어찌 내 자식같은 평민이 들어앉겠습니까, 안됩니다.
내 배 아파 난 자식을 위해서라도, 내 마음으로 키운 도련님을 위해서라도, 전 그리 못합니다."
이화 부인은 눈물을 참으려 눈을 부릅뜨고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허나 약조를...."
"대인 어르신의 성정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대인께서는 우리 륜이 앞날을 망칠까 염려하시어 일부러 그런 배려를 해주신 거지요,
말이 나와서 오양 진씨 같은 집안이 뭐가 아쉬워 우리같은 촌부들과의 약속을 지키겠습니까, 더군다나
사내 쪽에서는 혼인을 먼저 파기해도 지장이 없잖습니까? 순전히 우리 륜이를 염려한 말씀이란 말입니다!
저희가 눈치를 채고 대인 어르신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보, 우리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갑시다.
우리야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저 어린 새끼가 무슨 죄요?
륜이는 이대로 천한 출신의 첩으로 평생을 살거나 비구니, 혹은 백정의 아내가 되어야 할지도
몰라요. 난 내 자식이 그렇게 사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봅니다.
여보... 제발, 우리 아무도 없는데로 가요...!"
이화 부인의 목소리에는 결국 울음이 묻어난다.
륜은 어둠속에서 모든것을 듣고 있었다.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 아버지의 한숨소리.
륜은 어둠속에서 눈을 껌뻑거렸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엄마 울지마, 난 괜찮으니까,
어머니를 위로해 주고 싶지만 어쩐지 그럴수가 없다.
아버지가 진 대인 어르신을 뵙고 나온 후에 자신이 정말로 샤오룬 오라버니와 맺어지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륜은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얼떨떨하다가 곧 흥분감으로 몸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혼인?
자신도 정말로 혼례를 치르게 됬다는 것인가??
륜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동네 혼인식에서 보았던 신부의 붉은 비단옷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새 상상속 신부의 얼굴은 륜 제 자신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늘 해오던 상상이었는데 다른 점이라면 자신을 맞이하러 온 신랑의 얼굴이
늠름한 샤오룬 오라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얼굴을 모르는 사내와의 혼인을 상상했을 적보다 훨씬 기분이 편하다.
나쁘지 않을것 같아, 아니 오히려 좋은걸?
만약 샤오룬 오라버니랑 혼례를 올린다면 굳이 보고싶을때 먼길을 안와도 좋고, 뭐 원래 오라버니랑은
마음도 잘 맞기도 했고 또 자신의 흠도 잘 알고 있으니 시집간 후에도 소박맞을 일도 없지 않겠는가?
그것참 괜찮을것 같았다.
그래서 륜은 아버지가 정부인이 아니라 첩실로 가는 것이라고 흐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별생각없이 받아들였다.
첩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륜이 알고있는 첩실이라면 몇 년전 동네의 화란댁이
팔을 걷어부치고 씩씩거리며 뛰어나가 한참이 지나서 머리는 산발에 옷은 온통 찢기고
온몸에 지렁이같은 손톱 자국과 멍자국, 핏방울이 맺혀 화란댁의 손에 강제로 질질 끌려오던 이웃마을
처녀, 화란댁의 남편의 첩이라던 그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첩실이라는 거 참 고달픈 거겠구나 싶었지만 뭐, 괜찮을 것 같다.
자신은 그렇게 정부인이라는 여자한테 가만히 두들겨 맞을 생각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샤오룬 오라버니는 왠지 그 자신처럼 성격이 얌전한 여자를 정부인으로 맞이할 것 같다.
그러니 문제는 없을것 같다고 륜은 방긋 웃었는데
그러나 그걸 본 어머니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철딱서니 없는것, 그게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하고...!"
성을 내며 등짝이라도 한 대 칠듯 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다만 뜨기전 륜은 어머니 눈가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을 본것 같기도 했다.
서용은 잠이든 것으로 생각한 륜을 깨우지 않으려 울음을 터뜨린 이화 부인을 다른곳으로
데리고 나갔는지 방안이 고요해졌다.
륜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첩이라는거... 그렇게 나쁜건가?"
법에 위반되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러는 거지?
"만약 나쁜거면 법으로 금지시켜놓으면 되지 왜 다들 이러는거야?"
륜은 홀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잠도 안오고 하니 슬며시 방을 빠져나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어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갔나 보다.
하긴, 어머니는 우는 일이 드물었는데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좀처럼 그치는 법이 없었다.
하여 아버지는 아예 어머니가 실컷 울도록 배려해주곤 했었다.
오늘도 그런가 보다.
잠도 안오고 바람도 시원하고 하여 륜은 정원을 쏘다니기로 했다.
밤의 정원은 시원하고 알싸한 향이 나 기분이 좋았다.
달이 휘영청 밝다.
정원 한 가운데 서 달맞이를 하던 륜은 문득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샤오룬이 서있었다.
"엇! 오라버니!"
아침 이후에 보지 못했던 터라, 또 이 소식을 샤오룬도 알고 있을까 싶어 륜은
폴짝폴짝 뛰어갔다.
"오라버니 그거 들었어?"
어둠과 흰 달빛에 반은 그늘이 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샤오룬의 표정은 묘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오늘 우리 아버지가 어르신이랑 얘기를 나누어서... 우리 정말로 혼인한데!"
샤오룬은 답이 없었다.
"우리 엄마는 오라버니한테 너무 부담을 주는 거라고, 안된다고 그랬는데..
어르신께서... 그냥 이렇게 하는게 좋겠다고 그러셨대.
참.. 그러고 보니까 우린 오라버니랑 어르신한테 도움 진짜 많이 받았네.
난 오라버니 덕분에 공녀로 안 끌려갔고,
또 이번엔 어르신께서 허락해 주신 덕분에.... 안 그러면 난 비구니가 되거나 백정한테밖에
시집 못가게 될뻔했는데...
에이.. 암튼, 오라버니랑 어르신께 진짜 신세 많이졌다. "
샤오룬은 이렇다 할 대답없이 목석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싸한 분위기에 왠지 이상함을 느낀 륜은 나불나불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오라버니는 정말 착한것 같아.
나같이 맨날 사고만 치고 까부는 애를... 오라버니 정혼자라고... 아니, 정혼자가 되었으면..하고
생각했다니.. 그리고....
그렇게 됐고... 맨날 도와주고, 받아주고... 오라버니는 진짜 착한것 같아.
우와, 근데 나 이런말 하고 나니까 오라버니한테 시집가는거 엄청 나쁜짓 하는것 같아.
예전엔 떨어져 사니까 그냥저냥 내가 사고치는거 조금만 처리해줬는데 이제 같이 살면...
완전 맨날 내 뒤치닥거리만 해야할거 아니야.
말해놓고 보니까 진짜 나쁜짓 한다, 나..."
"..른..다....."
"어...? 방금 뭐라고 했어?"
"너는 모르고 있어"
샤오룬의 목소리는 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륜이 샤오룬의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소리를 더 잘듣기 위해 귀를 쫑긋하고 샤오룬을 올려다본 순간
륜은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달빛에 반만 비추어 보이는 샤오룬의 얼굴은 마치 조각상 같았다.
빛에 따라 표정이 있는듯, 또는 굳어버린듯 딱딱하고 차가워 보이는 얼굴,
그런데도 어쩐지 슬퍼보이는....
"너는 모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짓을 하려하고 있다는 것을"
샤오룬이 륜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섰다.
륜의 머리위로 그림자가 졌다.
륜보다 키가 한참 큰 샤오룬을 륜은 놀란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샤오룬의 눈...
그 눈은 지금껏 륜이 알던 그 눈이 아니었다.
어두워서였을까?
동공이 확대되어 온통 새까매 보이는 그 눈은 륜을 알수없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륜은 그 눈빛에 몸이 굳은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
륜이 간신히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샤오룬은 뒤돌아섰다.
"들어가 자라."
무미건조한 음성이었다.
그리고 샤오룬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샤오룬이 사라진 후에도 륜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다들... 왜 이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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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범려는 진 대인을 찾아갔다. 겉으로는
샤오룬의 정혼 소식을 듣고 놀라 찾아가는 것으로 위장한채,
"저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처음에는 믿기 어렵더군요, 아무렴 오양 진씨 가문에서
일반 평민을..."
"자네가 들은 것이 사실이네, 샤오룬과 그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정혼하기로 약속된 사이였네"
아, 그렇습니까.
범려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샤오룬 도령은 제가 알기로 아직 정부인을 들이지 않은것으로 아는데 설마
그 아이가 샤오룬 도령의 정실은 아니겠지요"
진 대인은 심기가 몹시도 불편했다.
"그건 아니네,"
"정실이 아니라면... 첩이란 말입니까?
그것참, 그것 또한 이상하군요. 아직 정부인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첩을 먼저
들이는 것입니까?"
범려는 짐짓 혀를 끌끌 차는척 한다.
당시의 도덕적 잣대로 따진다면 정부인을 맞기 전 첩실을 들이는 것은 지위를 막론하고
고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첩질'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샤오룬은 어렸을 적부터 집안끼리 약속한 정혼자가 있네,"
"아, 그렇습니까?
헌데 전 회계에서도 그 대단한 오양 진씨 가문과 사돈을 맺을 것을 약속했다는
귀족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서 설마 진 씨 가문의 도련님이 정식 혼례 전 첩질부터
하시려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범려의 말은 위험한 도발이었다.
십 년간 세상 천하 무서울 것 없이 제 맘대로 휘두르더니 이제 눈에
뵈는게 없는가 보구나!
진 대인은 속으로 분을 삭히며 생각했다.
호랑이 없는 산에는 여우가 왕 행세를 한다더니,
조정에서, 군에서, 또 상업에서도 그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없던 오양 진씨 가문의
당주인 진 대인이 모든 것에서 손을 뗀체 이렇게 시골에 두문불출하여
그 주인을 잃은 권력을 이제는 범려가 휘두르다 보니, 범려는 무서울 게 없는가 보다.
"세상의 저속한 잣대로는 그것이 그저 첩질로만 보이지 않겠는가."
진 대인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렇습니까?"
범려의 낮은 웃음소리는 네가 그래봤자, 하는 식의 어디 한번 덤벼보라는
도발과 동시에 조롱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범려는 진 대인의 눈이 한순간 분노를 표출하며 희번득 거리는 것을 보자
그 웃음을 거두어 들인다.
아직까지는 범려 자신이 십년 간 쌓아올린 권세는 수백 년을 이어온 진씨 가문에 비하면
상대할 것이 못된다는 판단이였다.
"그 아이는 내 손자를 오랫동안 돌보아 주었던 유모의 여식이네,
어려서 부모를 모두 여윈 아이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지, 비록 평민의 신분이지만
사람의 성품은 그에 비길것이 못되게 참하네, 우리 오양 진씨 가문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떠나 사람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며 은혜를 입었으면 그것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네,
하여, 그 인연의 은혜를 갚으려 한 귀한 행동을 어찌 그런 천박스러운 것에 비하겠는가?"
범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묘하게 일그러졌으나, 내색치 않은채 본래의 웃음띈 얼굴을 회복한다,
속으로는 이리 생각하면서,
그것참, 할애비나 손자나 도라도 닦는 것마냥 말은 참 고고하군,
세속적인 잣대니 천박한 생각이니,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도 그런 세속적 잣대와 천박한 생각의
발원지인 귀족 신분이 아닌가?
"어찌 되었든, 자네가 어제 그 아이를 공녀로 데리고 가려 했다 들었는데,
이제 그 아이가 우리 집안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한
일은 입에 올리지 않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네"
흠, 쐐기를 박으시겠다, 이거로군?
"하하, 물론입니다.
그 소저가 진 대장군님의 손자와 정혼한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제가 어찌 그런 일을 벌였겠습니까?"
정혼한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구나, 이놈...
진 대인의 눈에 범려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듯 하다.
언제고 이광이 자신의 날개 아래만 벗어나기만 하면 낚아채 가겠다는 야욕으로 가득찬
범려의 머릿속이 진 대인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그래,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것이니, 내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묻어두기로 하겠네."
묻어둔다는 말은 언젠가 파헤칠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범려와 진 대인은 서로 마주보며 예의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위, 두 사람의 사이에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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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는 앞으로 며칠 간 여기서 더 머물것이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갔다.
"며칠 간이라.."
그 며칠 동안 범려가 이 소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군,
진 대인은 이럴때 종종 깊은 회한을 느낀다.
왕 못지 않은 권력을 지녔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오양 진씨 가문의 당주
진 대인은 내색하진 않지만 누구보다도 백성들을 아끼며 또 자신이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만물은 평등하다고 믿는, 당시 사회상으로는 이단자라고 할 정도로 진보한 사상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젊었을 적부터 이러한 생각을 품어온 그에게는 자신의 속마음과 달리 자신의 겉은 여전히
구시대적 유물을 품고 사는 귀족 집단의 , 그것도 가운데에 서있는 것이 무척이나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못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오양 진씨 가문의 힘도 차마 하지 못하는 단 한 가지 일,
그것이 사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일임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진 대인으로서
깊은 회한을 품게 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비인간적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그것도 이런것을 바로 잡아야 할 조정의
행위를 왕의 신하라는 이유로, 이러한 왕을 지지하는 귀족 집단의 우두머리 격이라는 이유에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과 이 모든 비극을 만든 귀족의 힘을 이용해 그 불쌍한 아이들 중
륜이 단 한 명만 개인적인 목적으로 빼내었다는 것.
"반 백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어리석고 나약하구나, 늙은이..."
진 대인의 입에서 처량맞은 말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적에는 자신이 아직 어리고 미숙하여 이 모순을 풀 힘이 없으나 나이가 들면
모든것을 바꿀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갖추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여전히 진 대인은
패기와 열정만 넘치던 저 옛날과 다름이 없음을 느낀다.
"내 뒤를 이어 샤오룬이 그리 할 수 있으련지..."
진 대인은 늘 손자 샤오룬이 걱정이다.
가문에서 따지자면 다음 당주는 진 대인의 동생인 현충공이 이어야 할 터였지만
소심하다 할 정도로 권력에 욕심없는 청렴한 성격은 이 집안 특유의 유전인가, 현충공은 천상
학자였던 부친을 닮아 이래저래 고충이 많은 당주 자리를 마다했고, 그 아래의 다른 동생들 역시 딱히 당주 자리를
물려받는것을 내켜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 정세를 타파하고 가문을 유지시킬만한 인물들이 없었다.
진대인의 형제들 모두 성격이 유약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 중 유일하게 겉으로 보기에도 성격이 장난 아니게 매서워 보이는 인상의
맏형 진 대인이 이 거대한 가문을 이끌 당주 자리를 잇게 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꼭 성격이 드센 자가 당주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렇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는 자신보다 더 의지가 굳고 드센 후손이 필요하다.
왕 구천은 진씨 가문이 자신의 보위를 위협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사건건 그가 하는 일에 트집잡는 진씨 일가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고 있었고,
무엇보다 범려.
범려 그 자는 몹시 위험하다.
범려가 재물이나 권력을 탐하여 나라에 해끼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로지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헌신적인 신하다.
다만, 그가 추구하는 방식은 진씨 가문이 추구하는 방식과는 뿌리가 달랐고,
개인적으로만 평가하자면 참으로 대단한 인물인 이 범려는 자신 앞의 방해물은
인정사정없이, 그것이 누구라 하더라도 기어이 뿌리를 말살시켜 싹을 자르는
치밀하고 지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대로 가다간 범려는 진씨 가문을 멸족시키려 할 것이었다.
아니, 이미 그에 대한 계획을 설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계획이 실행에 옮겨질 쯤에는 자신이 더 이상 가문을 수호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누가 저 범려에 맞서 가문을 지켜낼 것이란 말인가?
머리는 좋지만 성격이 드세지 못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샤오룬은 노련한 범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물론. 어제 보여준 모습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샤오룬이 자신의 사후에
가문을 지킬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결국은 모두 진 대인이 떠맡고 가야할 일이었다.
"내가 죽기전에 꼭 하고 가야할 일이 생겼구나..."
진 대인은 고요한 방안에서 홀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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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담편 기대할게요!!^0^
감사합니다~^^
♬ 업뎃쪽지 보내주세요^^ 다음편 기다리고 있을께요^^
네~ 업뎃 쪽지 최대한 빨리 보내도록 노력할게요^^
담편기대할게요!! 아진짜 매일 카폐들어와서 업뎃만기다렸어요!!ㅋㅋㅋ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만쓰시는줄 알고 완전 실망했다구요~~연달아 올라와있는거 즐겁게 보고갑니다`~
ㅎㅎ 아니에요, 그만 쓰는거~ 스무편도 안쓰고 그만 두면 안되죠.. 댓글 감사합니다^^
ㅠㅠ 재미있게 보구 가요!!!!1
감사합니다~ㅎㅎ 담편도 기대해 주세요
아.. 오랫만이네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오랜만이에요~^^ 담편도 곧 올릴게요~
오셨군요~~3편 연타 ㅋㅋㅋ 좋았어요ㅋㅋ 담편 기대됩니다!!
오랫동안 안 들어오다가 3편 연타로 올리니 저도 뿌듯하네요^^ 담편 기대해 주세요~
일단 첩실로 들어간 다음 정실로 치고 올라가는게 정석.... 이라고 혼자 생각중! 재밌게 보고가요!!
ㅎㅎ 그렇죠 첩실로 들어가서 정실을 치고 올라가는거... 댓글 감사 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자주 뵈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재밋어요!!!빨리 써주세용 ㅎㅎ화이팅~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봐주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