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한국 할아버지와 브라만 계급 인도 꼬마 샤니(3): 9월 24일 월요일
나는 다시 이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와이프는 여수 엑스포 인도관에서 샀다는 팔찌를 내놓으면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수선해오라고 한다. 인도 꼬마가 과자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작은 아이다. 작은 아이는 크게 놀라면서, 대형 할인점에 가면 ‘베이비 쿠키’ 코너가 있으니까 거기에 가서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를 사서 다시 한 번 해 보라고 충고를 한다. 음, 과자의 종류에 문제가 있었다는 소리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이지만, 와이프가 보인 반응보다는 낫다.
다시 월요일 밤, 영등포역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도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했다. “도였어. 모가 아니고 도였어.” 나는 꼬마의 행동을 상세하게 말한 후 내 생각을 덧붙였다. 내 생각은, 이 가족은 브라만 계급에 속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이 꼬마는 브라만 계급의 후예라는 것이다. “우리 집 작은 아이는 과자를 바꾸어보라고 충고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야. 자존심 문제야. 현장에서 이 아이의 행동을 본 사람이라면, 이 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센 녀석인지 알 수 있었을 꺼야. 보통 아이가 아니더라고.” 운전자 김교수가 말했다. “그거 보세요. 제가 그만 하라고 했잖아요.” 그러나 나는 그만 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지. 여기에서 그만 두면 안 되지. 그럴수록 더 해야지.” “아니, 왜 아이를 놀리세요?” 김교수가 웃으면서 따졌다. “놀리는 게 아니야. 아이의 마음을 사야지. 요번 학기가 끝날 때에는, 그러니까 12월달이 되어서는 이 아이가 내 목에 매달려 내 뺨에 뽀뽀를 하게 될 꺼야. 한 학기 프로젝트지.” 자동차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내가 덧붙였다. “상대방의 친절을 받아들이는 아량도 브라만 계급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정 그러시면 오늘은 이렇게 한번 해 보세요. 애 아버지한테 통역을 부탁하세요. 저 할아버지가 너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과자를 주는 것이다. 혹은 니가 귀여워서 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달라고 말이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과자를 십리 밖으로 던져버릴 테니까요.” 사실은 나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다. 내 전략은 과자를 주되 직접 주는 것이 아니고 아이 아버지를 통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머릿 속으로 전략을 리허설하면서 좌판에 접근하였다. 오늘 성경재에서 가지고 온 보급품은 낱개로 포장된 초코렛 너 덧 개였다. 아이는 제 어머니 팔에 안겨 젖병에 든 우유를 빨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린가? 아이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다. 우선, 와이프의 팔찌를 꺼내 보이면서 수선도 해주는지를 물었다. 수선도 해 준단다. 물건을 맡긴 후 나는 한참 시간을 끌었다. 이 정도면 됐다는 판단이 서자 나는 가방에서 초코렛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제 그것을 아이 아버지에게 건네면서 연습한 대사를 읊으면 되는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일종의 비명 같은 것이 들려왔다. 제 어머니 품속에서 젖병을 빨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왔다. 삼팔선(좌판)을 넘어 목걸이를 함부로 밟으며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더니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내 손에 있는 초코렛을 낚아채갔다. 아이는 만면에 득의양양한 웃음을 띤 채 허겁지겁 비닐 포장을 벗겼다. 허탈하면서 유쾌한 웃음을 아는가? 나는 그런 웃음을 터뜨렸고, 아이 부모들은 또 자기들 나름대로의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내게 말했다. 할아버지, 세상은 훨씬 더 유치한 거예요.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마세요. 어깨에 힘 좀 빼시구요. 아이 말이 맞는 것 같다. 205포병 대대의 전우들은 두 달에 한 번씩 영등포 역전에서 만나곤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하겠다. 내가 보아 둔 곳이 있다. 삼겹살집이다. (끝)
첫댓글 흠..ㅋ그랬구먼....작은 딸 분석이 적중했네그려~ 조학장님 성경재 모임도 힘 좀 빼고 세상 살라는 공부겠죠?? ㅎㅎ
그런 것 같은데, 나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힘이 들어가니, 나 원 참.
젖병 무는 애 한테 자존심을 따졌으니..ㅎㅎㅎ 눈높이가 안맞았구만..
심심한 할아버지^^ㅎㅎㅎㅎㅎ
앞의 글을 아직 읽지 않고 이 끝 글부터 읽어서.. 전체적인 윤곽은 없지만... 심심한 할아버지와 심심한 꼬마의 심심챦은 줄다리기?
상중하 편을 이제야 읽었다. 심심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집요한 할아버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