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휴가 때, 어떤 자연 휴양림에서 겪었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휴양림 안에 아주 근사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예약해서 시간 맞춰 입장했습니다. 그 식당의 자리는 산 중턱에 있었고 경치가 한 마디로 “끝내준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 주인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여유롭게 혼자 여행도 다니고 좋겠어요.”
솔직히 저는 이 식당을 보고는 이곳의 주인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경관 안에서 여유를 느끼면서 책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바라는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주인이 얼마나 좋아 보였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 식당 주인이 저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평화스러운 곳에 살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이 진정으로 평화로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이분께서도 저를 바라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혼자 여행하면서 평화로울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 식당 주인을 부러워하면서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함을 아쉬워합니다. 그 아쉬움 속에서 평화는 깨지고 맙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남이 가지고 있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삶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니 평화롭지 못해서 계속 두리번거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지요.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평화를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세상이 가리키는 평화와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평화를 칼로 잘라버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평화를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함이 진정한 부러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먼저 당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기꺼이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라. 다음으로 그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곧바로 그 일에 착수하라(H. L. 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