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언제나 내 발보다 큰 신발을 사 주셨다. 처음에는 키가 쑥쑥 자라니까 일부러 큰 신발을 사 주시는 줄 알았다.
또 가난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신으라고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신발이든 그리 오래 신지 못했다. 내 발이 채 크기도 전에 신발이 먼저 닳아 버렸다.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껴 신어도 금세 닳아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기회란 거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다. 신발이 벗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학교 운동회 때 큰 신발을 신고 달리기하다 꼴찌를 한 적도 있다.
나는 자연히 걸음걸이가 느려졌으며, 아무리 급해도 뛰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 뒤 어른이 되어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신발을 사 드렸다.
아버지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느 구두 가게에 들른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한 치수 큰 구두를 사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빙긋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 준 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뜻이었지.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며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정호승,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중에서-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4-59)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남이하면 불륜!)‘
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저의 세대와 다른 이 시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저,
그래서 아직도 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이 시대를 사랑하지 못하는 저의 단적인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는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의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은 위선자라고 하시며 나무라시는데,
그런데 제가 바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대에 맞는 올바른 일을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나무람을 들을 그 위선자입니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을 위해 판단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랑의 하루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