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2 / 한성기
밥만 먹으면
사람들은 논에나 밭에 가 있었다.
밥만 먹으면
사람들은 거기서 하늘이 길러 주는
곡식의 아랫도리를 조금씩 거들어 주고
있었다.
산에서 살면서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시중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기저기에 허리를 굽히고
학처럼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산에서 살면서 내가 본 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엄청나게 커다란 눈부신 공간인지도
모른다.
밥만 먹으면
사람들은 논에나 밭에 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하늘이 길러 주는
곡식의 아랫도리를 조금씩 거들어 주고
있었다.
-『산에서』 배영사, 1963 / 『한성기 시전집』 푸른사상사, 2003,
감상 –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한성기 시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역」(1952)의 마지막 연이다. 「역」은 모윤숙의 추천을 받은 데뷔작이기도 하다. 한성기의 고향은 함경남도 (1923〜1984) 정평이고, 모윤숙은 그 아래 원산이 고향이다. 「역」의 배경이 황간역이란 말이 있지만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한성기가 대전사범학교 재직 시절이니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평의 정평역과 함흥사범학교를 재학 시절 이용했을 함흥역, 그리고 대전을 지나가는 호남선이나 경부선상의 어느 역의 기억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충남 당진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떠난 시인은 6.25 이후 실향민이 되고 만다. 대전사범학교 재직 중엔 아내와 딸아이를 연거푸 잃는 고통을 겪었고 이후 재혼을 하고 아들을 얻었으나 이번에 건강이 악화되는 인생의 부침을 겪는다. 1958년 휴직 후 끝내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이 시기의 제자들과 사제의 정을 평생 나누며 교류하게 된다. 가난한 시인의 시집도 대부분 제자들이 책을 내주었다고 한다. 아들 한용구의 회상 내용을 보면, “용문산 기도원의 바람소리, 추풍령의 구멍가게, 영동의 고추장사, 예산에서의 신문지국, 유성의 로터리 빵집, 다음엔 내가 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안흥 항구로, 다시 계룡산 밑 신도안으로, 다시 진잠으로.” (《호서문학》15집, 1989) 줄기차게 이사를 다녀야 했다고 한다. 집이 없었고 시인이 가난했기 때문이란다. 그 가난한 시인은 제자들의 좋은 스승이었고, 박용래, 임강빈 등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1952년 《호서문학》 창간호에 「애정 1」로 참여했고, 1971년 박용래, 임강빈과 어울려 6인이 참여한 『청와집(靑蛙集)』을 내기도 했다.
한성기의 첫 시집 『산에서』엔 「애정 1」을 볼 수 없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뒹구는 원시의 애정을 표현한 것인데 시집 대신 가슴에 묻기로 했을 것이다. 첫 시집은 「산에서」 연작 8편으로 시작된다. 「산에서 1」에선 짐승의 눈에 비친 하늘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저들이 좋아서 어쩌지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짐승이 좋다는 뜻도 되고, 짐승의 눈에 비친 하늘이 좋다는 뜻도 되고, 이 모든 것의 무대가 되는 산과 자연이 그렇게 좋다는 뜻도 된다.
위에 인용한 「산에서 2」는 산에서 조망한 사람들 모습에서 시인이 얻은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논밭에서 허리 굽히고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야 별다를 게 없지만 시인의 눈은 평범할 수도 있는 모습을 아주 특별한 장면으로 인식되게끔 해준다. “하늘이 길러 주는/ 곡식의 아랫도리를 조금씩 거들어 주고/ 있었다”는 시구로 인해 농부의 행위는 단순한 노동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랫도리를 거들어준다는 것은 곡식이 제자리를 잡고 제 몸을 건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요, 이를 사람 생활의 문제로 확대하면 곧 남의 성장을 조력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조력과 조장(助長)은 다르다. 조장은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더 좋도록 돕는다’는 뜻에 가깝지만 국어사전엔 거꾸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뜻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 말의 뿌리는 ≪맹자≫에 나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에 있다. 곡식의 싹을 조금씩 뽑아 올려 성장을 도우려다가 곡식을 죽게 만든 이야기다. 잘한다는 것이 오히려 일을 망칠 때 쓰는 말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 아랫도리를 거들어 주는 행위는 함부로 조장하지 않고 애써 조력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만 하늘이 더 좋아하는 일은 아마도, 남을 돕는 일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남의 성장을 도우면서 자기성장도 견인한다면 그런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눈부신 공간”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돕고 남 돕는 중에 선한 영향력까지 주고받는다면 그런 인연에 대해서도 ‘눈부신 관계’라고 첨언해도 좋겠다.
한성기는 “밥만 먹으면” 산책하는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건강을 위해 행했던 것이 그 자체로 삶의 모습이 된 것이다. 이사 가는 곳마다 동네 길을 걷고, 산길을 걷고, 둑길을 걷는다. 혼자서도 걷고 벗이나 제자가 찾아오면 함께 걸었다. 걷는 중에 시를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시를 다듬었다. 유성구 진잠동에 와서 시인은 더는 이사할 일은 없겠다고, 시만 10년 써도 좋겠다고 소회를 말했지만 그는 곧 종착역에 닿았다. 가슴에 묻은 ‘애정’하는 식구도 비로소 만났을 것이다. 첫 시집 『산에서』의 표지화는 이종상 화가의 작품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