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오래 전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선배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김 목사, 은퇴식 하고 다음 날 일어났더니 갈 데가 없어’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고 할아버지(죄송) 그걸 그 날 아시면 어떡하누?....’
은퇴식하고 다음 날 일어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는데 미리미리 준비했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2. 은퇴 후 시무하던 교회에 그 어떤 자리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섭섭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미리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해 놓았었기 때문이었다.
3. 큰 손녀 민희는 두 돌 채 되기 전에 애비 따라 미국엘 갔었다. 미국 가기 전 일 년 반 정도를 우리 아파트에서 함께 살다가 떠났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속으로 ‘민희야 할아버지 간다아’를 외치며 다녔다. 미국으로 떠날 날자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심란하였다. 도저히 민희가 떠나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마음 준비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기도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정말 민희가 공항 출입국장으로 들어갈 때 난 울지 않았다.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미리미리 마음 다잡고 준비하고 기도했더니 그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4. 막내 손자 선욱이랑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내가 먼저 가든 아내가 먼저 가든 혼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껀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5. 아내보다 내가 먼저 갈 확률이 높지만 그게 최고지만 인생은 늘 내 맘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잘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재수 없어서 아내가 먼저 하나님 나라 갈 경우를 대비해 마음 준비도 하고 혼자사는 연습과 훈련도 하곤 한다.
태국 치앙마이에 혼자가서 한 달도 살아보고 두 달도 살아보곤 한다. 밥해 먹고 사는 건 그닥 어렵지 않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을 연습한다. 쉽지 않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6. 그래도 이제까지 잘 살아왔는데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겨우 겨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생각한다.
겨울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7. 겨울 숲길을 가면서도 외롭지 않을 가슴에 묻은 그 별 하나, 고운 별 하나 내게도 있어서 인생의 겨울 길에 들어선 내 삶도 끝까지 외롭지 않기를 불행하지 않기를 아름답기를 소원한다.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