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납품… 52만 육군에 베레모 못 주는 軍

[무림고수]

[국군의 날, 全육군에 준다더니… 물량 제때 못 맞춰]
모자업체도 月10만개가 한계, 넉 달간 68만개 필요한데 계급장 제조업체에 단독 위탁
봉제 불량 등 품질에도 문제… 뒤늦게 전문업체 추가했지만 여전히 40만개 이상 부족

국방부가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맞춰 전 육군에 베레모를 씌우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전망이다. 52만 육군 병력 전체의 베레모 제작을 계급장을 만드는 업체에 위탁 생산토록 하는 등 국방부의 주먹구구식 납품 계약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육군 본부는 지난해 말 육군의 신형 전투복 도입에 맞춰 "강인한 이미지를 주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야구모자 형태의 육군 전투모를 특전사가 써오던 베레모로 바꾸겠다고 밝혔었다.

▲ 국방부가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맞춰 육군 장병들에게 베레모를 보급하려던 계획이 부실 납품 계약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사진은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는 특수전사령부 장병들의 모습. 일반 육군 장병들의 베레모는 흑록색으로 결정됐다. /국방부 제공

국회 국방위 소속 민주당 신학용 의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방위사업청의 베레모 생산 입찰 공고에는 구립 직업재활센터 등 총 6개 업체가 참여했으나 이들 모두 인장 강도, 치수 변화율 등 국방기술품질원의 모직물 성능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은 이후 몇 차례의 생산능력 확인 과정을 추가로 거쳐 지난 6월 그중 한 곳인 군복 계급장을 만드는 전문 업체에 68만개(41억7000만원)의 베레모 생산을 단독으로 위탁했다.

방위사업청의 조달판단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방산 업체별 월 모자 생산량은 1만~10만개 정도에 불과해 1개 업체로는 납품이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납품 물량과 가격을 업체가 직접 적어 내는 '희망수량단가제' 입찰 방식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최저가를 적어낸 계급장업체를 단독 낙찰했다. 방위사업청 측은 "규정상 계급장업체의 입찰을 제한할 근거가 없었다"며 "한 개 업체에서 70만개 가까운 물량을 납품하겠다고 써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 업체가 정해진 물량을 제때 생산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육군은 지난 7월 추가 입찰을 통해 모자 전문업체에 11만개(7억6000만원)의 베레모 생산을 위탁했다. 하지만 현재 전체적으로 40만개 이상의 베레모 납기를 제때 맞추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나 국군의 날에 전체 육군이 베레모를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일에는 육군 본부 주관의 품질회의 결과 계급장 업체가 만든 베레모는 봉제 자국이 보이고 천의 밀도가 떨어지는 품질 불량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과 보좌진의 이름으로 '현재 계약업체는 제때 납품이 어렵고 중국과 베트남에서 베레모를 수입하고 있으니 군납 비리가 없도록 철저한 감사를 해달라'는 가짜 편지가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으로 보내진 것으로 드러나 영등포 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신학용 의원은 "10월 1일에 전군 동시 착용할 것을 2월에 결정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장병들에게 베레모 하나 제대로 씌워주지 못하는 군 당국의 허술한 일 처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올해 국군의 날을 기점으로 육군에게 베레모를 씌운다는 계획은 지난 2월 7일 육군본부 정책회의에서 결정됐다. 육군본부는 작년 9월부터 일부 부대에 시험 지급했던 신형 전투복을 이번 국군의 날부터 전(全) 육군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거기에 맞춰 흑록색 베레모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