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감상 - 허연, 문태준, 권순진, 남정현 외
즈런나모추천 0조회 11524.04.19 01:27댓글 0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ㅡ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
* 김선우(金宣佑) :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지, 2007)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녹턴』(문지, 2016)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 2021)과, 청소년 시집 『댄스, 푸른푸른』(창비교육, 2018) 『아무것도 안 하는 날』(단비, 2018),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창비, 2002) 『김선우의 사물들』(눌와, 2005 / 개정판, 단비, 2012 / 재개정판, 2021)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미루나무, 2007)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새움, 2007)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청림출판, 2011) 『부상당한 천사에게』(한겨레출판, 2016)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21세기북스, 2017), 그리고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 외에 다수의 시 해설서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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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접한 순간 아득했습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장면 이라는 편견 때문이었지요. 흔히 꽃은 여자라는 일반적 정황에 부딪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시인은 조곤조곤 ~데와 ~지로 운율을 타기 시작합니다.
남자의 성(性)을 꽃대에 빗대 개화(開花)라 한다면서요! 남성의 발화는 그대 몸속에 날아든 꽃벌 한 마리 때문이라면서요.
정작 꽃인 내 몸은 방관자 역할을 하면서, 내가 아득해지는 것은 그대가 꽃 피는 일이 처음부터 내 일이라는 고백에 이릅니다.
통속적 관념에 얽매어 시집을 덮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행간은 더운 호흡을 향해 내닫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엄계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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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마을.. 2024. 3. 4.
빨갛게 익은 대추는 오른쪽 끝, 즉 동쪽에, 단정하게 껍질을 깎아 흰 속살이 드러난 밤은 왼쪽 끝, 즉 서쪽에 놓는다. 제사상 진설의 기준이 되는 홍동백서(紅東白西)다.
소나무·참나무·감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가장 많은 토종수목인 대추나무와 밤나무는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느지막이 꽃이 핀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향이 그윽한 대추 꽃과 모양이 독특하고 물씬한 향기를 풍기는 밤꽃이 만발해 꽃벌이 날아들면, 여름의 이 자연현상이 결코 자기의 업적이 아닌데도, 말할 수 없는 내면적 감동과 소리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성은 물론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의 떨림을 이처럼 단아한 언어로 바꾸는 일은 선택된 시인의 몫이다.
김광규 시인 ·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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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꽃
그대가 꽃피는 순간에 찾아오는 나의 떨림이라…… 굉장히 에로틱하지요. 그대가 꽃피는 일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태초에 사랑이 시작되었겠지요.
조용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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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홍과 제비나비
타자를 소유하는 두 가지 방식
꽃이 핀다. 봄에도 꽃이 피고, 여름에도 꽃이 피고, 가을에도 꽃이 핀다. 이처럼 꽃들은 시기를 달리하여 경쟁하지 않고 차례대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 시적 주체는 꽃이 피는 것을 보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그대가 피는 것인데/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라고 의아해한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너’의 행위가 나를 떨게 하는 이유가 못내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꽃으로 꽃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는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꽃이 나이고, 내가 꽃 같은 상태에서 나는 아득하다.
부버가 ‘너’ 혹은 ‘그것’이 없이는 ‘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나’는 ‘너’라는 대상과의 합일을 추구함으로써 충만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김선우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의 끝에는 타자인 ‘꽃’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이 있는 것들의 진정한 삶은 대상과의 합일인 소유이고, 소유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만 온전하게 성취될 수 있다. 대상과의 합일을 시도할 때의 ‘나’는 자연의 한 조각으로 모자이크돼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타자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진정한 ‘나’를 드러내는 본능적 행위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언제나 주체와 객체가 바뀔 수 있는 관계이다. ‘너’를 소유할 때의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나’지만 그것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된 전혀 다른 내적으로 충만한 ‘나’이다. 타자를 소유한 나는 존재 속에 존재자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꽃 피는 것이 내 일임을 이제 알겠다.
고광식 시인 · 문학평론가(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당선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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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어나는 걸 지켜본 일이 있는가. 꽃봉오리가 만들어지고 어느새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그 꽃으로 벌이 날아드는 걸 지켜본 일이 있는가.
모든 생명은 경이롭다. 식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지만 꽃이 피는 모습을 빠른 화면으로 돌려보면 그 과정이 엄청난 투쟁임을 알게 된다. 식물은 혼신을 다해 꽃을 밀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 역시 하나의 생명체이기에 꽃이 피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개입하게 된다. 흡사 자기가 피어나는 듯 몸이 떨리고 이내 아득해지고, 또 뜨거워진다.
짧은 몇 개 문장으로 시가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멋진 작품이다.
하긴 그렇다. "그대가 꽃피는 일은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
허연 시인 · 매일경제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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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은 90년대 여성시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여성의 '육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시를 읽으면 Budhisattva라는 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시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큰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발언한다. 해서 그녀의 시에는 "너의 영혼인 내 몸"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나 아닌 것들이 나를 빚어/ 그대 아닌 것들로 빚어진 그대를 사랑하오니"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 시인인 그녀가 우주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을 가붓한 어조로 고백하는 이유는 이 물질세계를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자못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그녀의 시는 딱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강보에 받아내고 젖을 먹여 길러내는 모성을 보여준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의 몸을 과감하게 등장시켜 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아프지 마, 목숨이 이미 아픈 거니까/ 아파도 환한 벼랑이 목숨이니까"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는 현실셰계를 초파한 理想의 경지에 이르렀다.
개화(開花)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이 시는 그 뜻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꽃피는 꽃의 몸과 내 몸을 교차시키면서 이 시는 의미의 확장을 얻는다. 꽃과 꽃벌의 혼례가 꽃과 나와의 혼례로 얽혀 읽히면서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의미를 낳는다. 그것은 성애적인 열락을 넘어선다. 그러나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며 살아야 하는가.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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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알파파를 증가시켜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됨은 물론 기억력을 증진시킨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꽃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반응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특히 꽃은 기본적으로 여성성을 내포하고 있어, 여성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생리적 균형을 맞춰주어 실제 피부미용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이 피는 것과 연동하여 몸이 떨리고 아득하며 뜨거워짐은 자연스런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체로 스스로가 꽃인 젊은 시절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반색은 짙어진다.
“저는 일단 온몸으로 반응을 한 다음에야 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죽을 것처럼 행복해, 이렇게 경험한 다음에 그 느낌이 몸의 어딘가에 씨앗을 내려서, 천천히 발아되는 것 같아요. 정말 분노해서, 철철 울고 난 다음에야 어떤 것이 몸의 밭에 씨앗이 떨어져서 그것이 시로 발아되는 것 같아요. 온몸으로 행복했거나, 슬퍼했거나 울었거나 정말 좋았거나. 이런 시간성이 몸의 경험으로 지나간 다음이어야 그것이 시의 씨앗이 되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김선우 시인의 시가 몸의 감각으로 빚어낸 것임을 스스로 진술한 대목이다.
70년생 여성시인이 포옹한 꽃이기에 그 향이 더욱 짙을 수밖에 없으며, 독자의 후각도 따라서 증폭된다.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하고, 가슴이 먼저 쿵쿵거려요.” 내가 꽃이 되는 느낌, 그 상상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습득되어 시를 낳게 했다. 꽃의 몸과 자기 몸이 포개어져 성애와의 화해로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남들도 다 좋아하는 꽃이라서 '곱다 고와' 하고선 서둘러 꽃 속에 파묻히거나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는 여느 여인들과는 달리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천천히 빨려든다.
자기정화의 과정을 거쳐 촉촉이 젖는 긍정의 몸이 열린 것이다. 내 몸이 가장 예쁠 때를 아는 시인의 발랄하고 아름다운 고백이다. 한 평론가는 김선우를 두고 ‘살아 있는 몸을 신전으로 하여 뭉클한 생명의 향연을 펼치는 샤먼’이라며 ‘시의 무당’같은 분위기가 감도는 시인이라 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 여성 시인은 대뜸 김선우 시인이 싫다고 한다. 예쁜데다가 시까지 잘 쓰는 그녀가 밉다고 했다. 시샘을 받을 정도로 예쁜지, 시를 잘 쓰는지는 잘 모르지만 김선우 시인의 촉수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사랑의 생명시란 생각에는 동의한다.
시적 자아는 우주의 사물 속으로 확산되고 우주의 만물은 거꾸로 시적 자아 속으로 수렴된다. 꽃은 어느 계절에나 피고 지지만 이 봄은 거의 절정이다. ‘꽃은 미인들과 함께 즐겨야 하고, 달빛 아래 술은 유쾌한 친구들과 즐거이 마셔야 하며, 눈(雪)은 고풍의 선비들과 즐기는 게 좋다’란 말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꽃은 미인과 즐겨야 한다는 대목이 찌릿하게 와 닿는다. 꽃을 감상하는 태도에서 저토록 여성성과 모성이 오롯이 발휘되는데, 몸으로 지긋이 받아들이기는 애당초 걸러먹은 남성으로서는 최대한 후각을 벌렁거려볼 밖에는.
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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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독식의 이기가 아닌 뭔가 대상에게 줄 때 더 기쁜 이타이기도 한 것
꽃은 단지 여성성 , 벌나비는 통속적인 남성성인가
따라서 그대...가 /꽃피는데 / 내..게 /환희로 몸이 떨....리는 /기쁨이
환하게 전이되어 오는 것은
쉽사리 육체적인 열락의 에로틱으로 한정하여 오독하기 쉬우나
들어올린 사랑이란 대상과의 , 일체감을 뜻하는것 아니겟는가 말이다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사랑에 빠진 화자는 까마득한 시원으로 올라가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분화되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행여 성차별적 해석이라고 시비라도 걸고 든다면 이브의 갈비뼈면 또 어떻고 ..
내가 곧 너...고 네가 곧 나...라는 것을 그러니 네가 기쁠 때 ...나도 기쁘고
네가 슬플 때 ...나도 슬픈...
상호 대칭의 깊은 사랑에 빠져본 커플이라면 알 것이다
초승달에 왜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이 얹히고
별이 그 대의 젖은 눈물로 읽히는 지
몰입의 드라마속 주인공이 그대
버림받는 상상의 내가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ost노랫말이 딱 내이이야기같아서 눈물 글썽이게되는지
만유가 감정 이입의 일체가 되어가는 지 말이다
쉽시읽남 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