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나무[학명: Prunus salicina Linnaeus]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이다. 자두는 우리말로 ‘오얏’이다. 오얏의 한자말은 이(李)로 세월이 흐르면서 ‘자도(紫桃)’라고도 하였다. 보랏빛이 강하고 복숭아를 닮았다는 뜻이다. 이후 자도는 다시 자두로 변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도나무(紫桃-), 오얏나무(李-), Plum-tree 라고도 한다. 서양자두(P. domestica)는 잎 뒷면에 털이 있고 열매가 타원형이며 벽흑색이다. 식용, 약용, 관상용이다. 꽃말은 '순백, 순박, 다산, 봄의 생명력, 순수함'이다.
오얏나무는 고려 때 도선국사가 오얏 성씨(李)를 가진 새 왕조가 탄생할 것이며, 이씨 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그래서 고려의 조정에서는 지금의 북한산에 많이 심어 어느 정도 크기만 하면 잘라 버리기를 반복하여 오얏 이씨의 기운을 없애려 애를 썼지만 결국 예언대로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세워 500년의 영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가 이씨 왕조이기는 하지만 자두를 상징물로 쓰지 않은 탓에 자두나무를 특별히 우대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대한제국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문장(紋章)을 자두 꽃(李花)으로 했다. 덕수궁 석조전 용마루, 구한말 우표, 창경궁대온실 조경 등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전주 이씨 종친회 문양이다. 흔히 쓰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란 말은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 원산으로 인가 부근에서 과수로 심으며 높이가 10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고 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 또는 타원형 긴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흰색이며 보통 3개씩 달린다. 열매는 달걀 모양 원형 또는 구형으로서 자연생은 지름 2.2cm이지만 재배종은 길이가 7cm에 달한다. 열매의 밑부분은 들어가고 7월에 노란색 또는 붉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익으며 과육은 연한 노란색이다.
생약명(生藥銘)은 뿌리는 이근(李根), 씨는 이핵인(李核仁)이다. 뿌리껍질은 가슴이 답답한 증세나 당뇨병으로 인한 갈증 등에 쓰인다. 씨는 기침, 변비, 어혈, 수종, 이뇨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며, 생잎을 물에 넣고 목욕을 하면 땀띠가 없어지고, 목이 아프거나 기침이 날 때 열매를 태워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잘 익은 열매를 초여름의 과일로 즐겨 먹는다. 단맛과 신맛이 알맞아 잠시 더위를 잊게 한다. 잼이나 파이 등으로도 가공한다.
은제이화문화병(銀製李花文花甁, 등록문화재 제453호)은 서울 종로구 사직로 34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한 규격은 164mm x 302, 재료는 은과 금으로 목이 길고 몸통이 부른 형태에 긴 목의 양쪽에 두 개의 귀가 달린 의례용기(儀禮用器) 형태의 화병이다.
주석의 합금율이 높아 표면 광택이 밝다. 기계로 생산한 제작방식과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을 두툼하게 붙여 넣은 점에 근대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왕직미술품제작소의 설립취지가 유지된 1910년대 제작품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의 왕실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된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191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당시 공예품 제작의 실상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은제이화문탕기(銀製李花文湯器, 등록문화재 제452호)는 문화재청 소장,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한 탕기(湯器)로 표면을 망치로 두드린 단조(鍛造)기법으로 제작하였다.
덮개와 몸체 중앙에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을 음각으로 새겼고 덮개에 ‘萬壽無疆’ 문자를 양각으로 감입(嵌入)하고 연봉형 꼭지를 달아 전통을 잇고자 하는 여망에 실용성을 가미한 멋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왕직미술품제작소의 설립취지가 유지된 1910년대 제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창덕궁 유물을 인수한 소장처의 특성과 기형으로 보아 황실 연회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사용한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공예사적 가치가 크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1908년에 설립된 왕실기물제작소로 왕실의 정치적 복권의 여망을 간접적으로 표출하며 전통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창경궁 대온실(昌慶宮 大溫室. 등록문화재 제83호)은 창경궁 안에 있는 대온실은 대한제국 순종 융희 3년(1909)에 건축된 주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에 외피를 유리로 둘러싼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 온실로써 19세기 근대건축의 새로운 유형인 철과 유리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건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문양이 유리온실의 여러 곳과 정원에서도 볼 수 있다.
덕수궁 석조전(德壽宮 石造殿)은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1900년부터 1910년에 걸쳐 지은 서양식 석조건축물이다. 건물의 윗부분 문양에서도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이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문화유산정보/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글과 사진: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