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아니 이소선 / 이철산
전태일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누구길래 시민들이 돈을 모아 잠시 살았던 옛집을 사들이고
무슨 마음으로 노동자들이 손을 모아 허물어진 옛 집터를 되살리고
마침내 ‘전태일’ 문패를 달고
기억의 숲 희미한 길을 되밟아 여기까지 왔냐고 묻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살았던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일당 50원을 벌기 위해
햇빛도 들지 않고 허리도 펼 수 없는 작업장에서 다락방에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15시간을 일하는 평화시장 어린 시다들을 위해
스스로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타올랐던
스물세 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
청년 전태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번은 들어봤다 할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전태일 아니라 이소선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스스로 노동법과 함께 불타버린
전태일의 장례를 치르며 이소선은 전태일의 꿈이 되었습니다
평화시장 청계피복노조 만들었던 이소선은 미싱공의 꿈이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 다락방 작업장을 철거했던 이소선은 시다의 꿈이었습니다
어린 여공에게 노동교실을 열었던 이소선은 여공의 꿈이었습니다
원풍모방 동일방직 반도상사 YH무역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던 이소선은 투사의 꿈이었습니다
소외와 빈곤에 우는 시민들이
인간답게 공평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던 이소선은
마지막 순간까지
수많은 전태일을 지켜내고 수많은 전태일의 꿈을 키웠던
어머니 이소선의 이야기를 옛집에서 시작할까 합니다
오늘은 전태일 아니라 이소선의 집에서 머물다 가려 합니다
-『나비가 된 불꽃』, 삶창, 2023.
감상 –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나비가 된 불꽃』을 출판했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시민모금운동을 통해 전태일이 살던 대구 옛집을 보존하는 데 일차 소임을 다했고, 옛집 수리와 기념관 조성을 위해 시민모금운동을 이어가며 전태일 정신이 앞산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서기를 애를 쓰고 있다.
『나비가 된 불꽃』은 김주형 작가의 판화 작품 14점, 두 편의 평론, 스물아홉 명의 시인이 참여한 58편의 창작시로 구성되었다. ‘전태일이라는 시’라는 부제에서 보듯 전태일 정신이 깃든 시편을 써 달라는 주문에 작가들이 흔쾌히 응한 것이고, 책의 수익도 기념관 건립에 소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에 전태일과 이소선의 삶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이철산 시인의 시를 다시 읽어 본다. 그리 길지 않은 시에 전태일 옛집의 사연과 이소선, 전태일 두 분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마치 고갱이만 드러내면서도 전체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것은 시인이 이소선, 전태일의 삶을 깊이 이해하면서 그걸 전달하는 기법에도 공을 들였다는 반증이다. 두 분 삶의 이력이 다른 어떤 시보다 진정성과 울림이 있기에 그런 상황이 도드라질 수 있도록 물음에 답하는 구조를 빌리면서도 은근슬쩍 시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시집엔 이철산 시인뿐만 아니라 현장 노동자 시인들의 시가 많다. 전태일, 이소선 삶의 행적과 정신을 꿰면서 노동자 자신의 삶도 그와 연결되기를 바랐던 마음이 한 편의 서사와 시로 추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전태일의 꿈은 이소선의 꿈이 되었다. 이소선의 꿈은 “소외와 빈곤에 우는 시민들이/ 인간답게 공평하게 살 수 있는 나라”다. 열다섯 나이쯤의 시다들이 “하루도 쉬는 날 없이 15시간을 일하”며 병들어 가는 게 마음 아파서 시작된 싸움이 어머니에게로 고스란히 넘어온 것이다. 아들의 주검 앞에 이소선은 몸의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의 꿈을 잇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해 나갔다.
전태일이 못다 이룬 청계피복노조를 만들어 갖은 탄압과 옥고에도 노동조합이 갈 길을 마련해주고, 언제든 소외된 노동자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 모두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2011년 모란공원 전태일 묘 뒤편에 마련된 이소선 묘비엔‘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 이 세상 주인인 노동자가 단합해야 힘이 생긴다는 내용이 신영복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소선의 헌신적 삶에는 가난하게 살더라도 뜻을 지키겠다는 전태일 동생들의 결심도 한몫했다. 큰돈을 마다하고 전태일의 시신을 지키며 시민과 함께하는 데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가족이 한때 모여 살던 옛집이 바로 대구 남산동 집이다. 전태일의 집으로 다들 그렇게 알겠지만 이철산은 일부러 이소선의 집으로 알고 가겠다고 했다. 노동자 전상수가 세 들어 살던 판잣집은 전태일의 집도 되고, 이소선의 집도 되고, 전순옥, 전태삼, 전순덕의 집이기도 했다. 옛집 옆은 넓은 대지에 성모당이 자리하고 있다.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오열하던 이 땅의 어머니 모습에서 피에타 상이 떠오르는 것이 꼭 위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옛집에서 골목으로 조금 빠져나오면 명덕초등학교다. 전태일이 이곳 건물을 빌린 청옥공민학교 야간부 중학 과정을 1년 남짓 다녔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세종대왕, 이순신 동상은 있지만 어느 학교에도 자랑이 되어야 할 전태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유감이다. 마침 대구의 가수 이종일이 「전태일 아니 이소선」에 곡을 붙였다고 하니 음악교과서에 실려 모두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