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그 암자의 토방에 걸터 앉으면 지리산 천왕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P>
<P>천왕봉 바로 위로 불그스레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P>
<P>남한 땅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1500메타 고지에 자리잡은 지리산</P>
<P>반야성지 묘향암. 그곳에는 한 스님이 8 년째 홀로 수행중이다 .</P>
<P>수행중이라기보다는 ' 그저 살고 있다 '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스님이다.</P>
<P>그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부자라고 한다 . 하기야 지리산을 품에 </P>
<P>안고 , 청정도량에 살면서, 하루 세끼 먹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더 무슨</P>
<P>욕심이 있겠는가 . 지금은 암자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나물 </P>
<P>뜯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P>
<P>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지리산에는 이렇게 홀로 숨어 수행하는 </P>
<P>스님들이 적지 않다. 몇 해전 삼정산 아래 상무주암에서 만난 노스님도</P>
<P>그중 한 분이다. 새벽에 일어나 예 불하고 낮에는 텃밭에 나가 일하는 게</P>
<P>그 스님의 중요한 일과다. 노스님은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P>
<P>텃밭에서 손수 길러 충당한다. 81년부터 그곳에서 홀로 지낸 스님의 </P>
<P>눈빛은 범접하기 힘들 만큼 형형했다. 어찌 그에게서 세속적인 욕심을</P>
<P>터럭만큼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희로애락이 탈색된 듯한 수행자의</P>
<P>무심한 얼굴에 스스로 선택한 고행의 외로움이 언뜻언뜻 스쳐 </P>
<P>지나갈 뿐이다</P>
<P> 수행자들이 이처럼 세속적인 욕심을 미련없이 내던질 수 있는 용기는</P>
<P>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70년대 초 삶의 끝자락을 슬쩍 보여주고 홀연히 </P>
<P>사라진 어느 선객은 " 세속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 부처가 되겠다는</P>
<P>대욕 (大慾 )에 사로잡혀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의 고혈을 착취하는 이런</P>
<P>고행을 자행하는 것 " 이라고 했다. ( 지허 스님 ,<선방일기>) 무욕 (無慾)은 </P>
<P>대욕 때문이라는 것이다.</P>
<P> 그 스님이 계산해 놓은 선객의 1년 소비 물량을 보면 수행의 삶이 어떠해야 </P>
<P>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주식비= 1만 6425원 (하루 3홉, 1년 1095*15원) . 부식</P>
<P>및 잡곡은 자급자족, 피복비 = 2500 (승복 광목 20마*50원= 1000원, 내복 1500원)</P>
<P>신발=240원(고무신 2족*120원) 합계 2만원이면 족하다고 했다. 요즘시세로 치면</P>
<P>30~40만원 정도다. 그러면서 선객은 모름지기 `삼부족` (三不足)을 운명처럼</P>
<P>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식(食)부족 , 의(衣)부족, 수 (睡)부족이 바로 그것이다.</P>
<P> 물론 수행자들에게 고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P>
<P>깨달음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P>
<P>고행을 통해 세속적인 욕심을 초월한다 해도 기껏해야 수행자가 가야 할 길 중</P>
<P>가장 초보적인 단계인 욕계(慾界)를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P>
<P>출가한 청화 스님은 그래서 먹는 것. 입는 것. 이성끼리 만나서 사는 것 등 욕계에서</P>
<P>느끼는 재미를 뛰어넘어 영원하고 참다운 법락(法樂)을 즐기라고 강조했던 모양이다.</P>
<P> 하지만 눈만 뜨면 달콤하고 화려한 온갖 유혹과 맞닥뜨려야 하는 속세인들에게는</P>
<P>그런 삶은 언감생심이다. 부처님 법을 따르겠다고 출가한 스님들도 중생들과</P>
<P>크게 다르지 않아서 였을까. 최근 조계종 몇몇 스님들이 백양사 부근 호텔방에서 </P>
<P>술 먹고 담배 피우며 도박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교계 안팎이 어수선하다.</P>
<P>며칠전 불교계 원로인 수경 스님 등 10명의 선방 수좌 스님들이 " 부처님 오신 날</P>
<P>목 놓아 통곡하며 " 라는 성명을 내, " 닭 벼슬보다 못한 권력과 명리에 오염" 된 </P>
<P>부류들이 총무원을 중심으로 한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했다.</P>
<P>수행자로서의 고행은 커녕 세속의 오욕을 탐닉하는 ' 구악 '을 청산해야 한다며,</P>
<P>자승 총무원장의 퇴진 등 조계종의 일대 혁신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P>
<P> 삼라만상이 모두 공(空)임을 매일 되뇌면서,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P>
<P>추구하고 욕계의 향락에 흠뻑 빠져들어서야 어찌 출가자라고 할 수 있을까.</P>
<P>지리산 묘향암 부엌문의 빛바랜 창호지엔 < 금강경 >의 한 구절이 소박한 </P>
<P>붓글씨 한자로 가지런히 쓰여 있다. ' 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想 </P>
<P>卽見如來' (법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님 오신 날을 </P>
<P>앞두고 몇몇 스님들의 난행을 보면서 새삼 떠오르는 경구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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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 한겨례 정석구 칼럼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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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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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수경스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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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맑은 도인도 많아야 하고, 진흙탕에서의 연곷같은 스님도 많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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