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가 각자의 남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A : 우리 남편은 좀처럼 받아주지를 않아.
내가 짜증을 내거나, 예민해져있거나, 화를 내거나 하면
그냥 좀 받아주면 알아서 풀리는데,
그걸 일일이 다 맞받아친다니까? 그럴때마다 내가 서러워서 진짜..
네 남편은 어때?
B : 우리 남편은 그런 건 진짜 잘 받아줘.
나한테 화 내는 법도 거의 없고, 내가 틱틱대도 웃으면서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A :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그런 남편을 만난 거니 진짜 개부럽.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A'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집안일이며 육아며 이것저것 돌보다가
씻지도 못하고 골아떨어지기 일수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장인장모님께도 제 부모님 대하듯 극진히 모시는 좋은 사위이자,
주위에서 입을 모아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만큼 가족에게 헌신적인 남자입니다.
B'는 프리랜서 크리에이터로,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아내가 집안의 가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외향적이어서 나가는 모임이나 만나는 친구들이 매우 많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라
수입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쇼핑으로 지르기에 통장잔고는 남아나질 않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에서 이혼율이 급증했다는 통계가 발표된 바 있죠.
재밌는 게,
가정적인 남자일 수록,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고, 육아다 뭐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 많다보니,
감놔라 대추놔라 아내에게 잔소리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면 의견이 달라 다툴 일도 많아집니다.
그건 필연입니다. 과학이에요.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싸울 일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A 부부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데,
의견 충돌이 잦아서, 예민해 질 일도 많은데,
그럴때마다 A'가 쪼잔하게, 꼬장꼬장하게 맞받아친단 말입니다.
왜?
여기에 숨은 A'의 심리는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래?'
'난 열심히 잘 하고 있는데 왜 나한테 짜증을 내지?'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해?"
즉, 억울함, 부당함, 분노 등의 감정이 표출되는 겁니다.
이 심리는 그러니까,
과거 우리 까페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셨던 컨텐츠메이커 분들이
불특정소수의 다른 회원들과 언쟁을 벌이며 조롱, 내지는 비아냥을 당하면서
그렇게 쌓인 억하심정이 폭발하여 까페를 탈퇴해버린 심리와 비슷하다랄까.
"내가 여기서 그렇게 열심히 해 왔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반면, B'가 보이는 행동패턴의 기저에는,
미안함, 죄책감 등의 감정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후속으로, 반드시 보상행동이 뒤따르기 때문인데,
(물론, 정상적인,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에 한함)
이를테면,
'안 그러던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꽃을 사 가지고 들어왔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냅다 싸다구부터 갈겨라.'
같은 얘기가 왜 나오냐면,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미안해서 꽃 사오기라는 보상행동이 나왔을 것이다
라는 연역추론인 겁니다.
'바람끼의 역설'
바람을 피고 있는 사람은,
죄책감 때문에 자신의 배우자에게 더 잘 하게 된다.
일종의 균형이죠.
내가 잘못했을 땐,
다음번에 상대방한테 잘 해서 심리적인 균형을 맞추는 거고,
나는 잘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거기다 대고 상대방이 너 왜 더 열심히 안 해? 라고 하면 불균형, 불공평을 느끼는 것.
역설적인 한편, 굉장히 재밌는 심리죠.
가끔씩,
결혼생활에서 화를 참을 수가 없어요, 상대방이 너무 밉고 싫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은 이 "죄책감의 역설"을 이용하는 겁니다.
더 이상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거죠. 나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거에요.
나 스스로도 너무 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생각만 하고 살아 보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과
상대방을 향한 분노(-)가
상쇄되요. 중화됩니다.
부부생활이 한결 견딜만해지죠.
A'로 살지 않고, B'처럼 살아 보는 것의 효과랄까.
우리는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배우고
또 그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는 산수가 아닙니다.
때론, 내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분노에 매몰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니가 나한테...)
반면, 나의 잘못이, 오히려 상대방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도 있어요.
(적을 죽이고 적의 갓난아기를 키우게 된 사람이 그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키우는 경우)
그렇다면 뭐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좀 버리고,
(기본적으로는 상대방을 배려하며 살되, 가끔씩은 오직 나만 생각하는 날들도 필요)
일부러 잘못을 저지르진 않더라도,
과거의 내 잘못을 기억하는 습관 정도라도 기르면 좋습니다.
이를테면, 『죄책감 노트』랄까?
배우자가 날 빡치게 했을 때,
애들이 날 빡치게 했을 때,
노트를 펼쳐보는 거죠.
그리고, 서서히 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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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깔끔 명료한 결론이네요 ㅎㅎ 깜다운~
이 글을 나도 읽고 상대방도 읽게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듯요.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은 남편 혹은 남친이 농구하고 싶다고 하면 보내주고 게임하고 싶다고 하면 하게 해줘야 됩니다. 그럼 알아서 잘 하죠ㅎㅎ
저도 공감하는게 무조건 잘해준다고 좋은관계가 유지되는게 아니더라고요ㅎ
감사히 잘보고 있습니다~ 요즘엔 유투브도 찾아서 보고 있어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위에 바람에 대해서 설명할 때 가져오신 사진은 이태오 여다경 닮은거 같아요ㅎㅎ
미움과 상쇄시키느라고 못해주고 죄책감 쌓는동안 상대방은 자기한테 못해준거 각인돼서 상처받고 되갚음하고 더 악화일로로 갈수도 있지않을까요?
잘못과 죄책감이 "쌍방에게" 생산적이려면, 그 다음에 반드시 보상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내 감정은 미움과 죄책감이 조금씩 상쇄되면서, 뒤따르는 보상행위가 점점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기는 거죠.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더라도 후속 보상행위를 하기가 어색할만큼 관계가 진짜 안 좋은 경우들도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남처럼 지내서 뭘 하기가 뻘쭘한 경우)
이럴 땐,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통상, 한 사람이 용기를 내면, 그걸 받아주는 사람은 고마움과 미안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이른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관계가 기사회생할 공산이 커요.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형식적인, 빈 껍데기 뿐인 관계로 연명하거나, 끝장을 보거나 둘 중 하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