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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강하여 가고
(사무엘하 3장 1절)
날 때부터 곱추였던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17세가 되기까지 집 밖에 나가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자기 몸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지 부모 또한 딸을 학교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7세가 되던 해에 교회에 신앙 수련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강사 목사님께서
"자,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시간을 10여 분 정도 드릴 테니 모두들 밖으로 나가십시오. 이 교회 마당이든지 산이든지 어디든지 나가서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들어오십시오."
사람들의 무리에 파묻혀 곱추 소녀도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과 양지 바른 교회의 마당 등 좋은 자리를 다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는 소녀는 자연히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찾다가 한적한 곳에 앉게 되었습니다. 앉고 보니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자신은 어딜 가나 쓰레기 밖에 못된다는 생각에 소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소년이 오더니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소녀는 용기를 내서 난생 처음으로 물어보자, 그 소년은 캔이나 종이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그래 그 캔과 종이를 어디에 사용하느냐 물으니, 그것들을 팔아 편찮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약값에 쓴다고 합니다.
그 순간 곱추 소녀는 성령님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저 쓰레기통에 있는 캔이나 종이 같은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그렇다면 나 같이 쓰레기 같은 인생도 쓸모가 있겠구나! 저 쓰레기를 팔아서 노인들의 약값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쓰레기같은 곱추도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을 위하여 약이 될 수 있겠구나.' 소녀는 마음으로 큰 결심을 한 뒤, 교회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들어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려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고린도전서 1:27)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후서 6: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도적질 당하고 죽이고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더 풍성하게 되어지는 것을 맛보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몇주전에 시편1편을 묵상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고”(시편 1:1) 라면서 시작하는데 마지막절에 가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 1:6)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가 있고, 형통의 사람과 불통의 사람이 있고,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삶이 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복있는 사람이고 누가 형통의 사람이고 누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입니까?
누가 점점 잘되어가는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사무엘하 3장 1절을 보세요.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말씀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가는데 누구는 점점 강하여 가고 누구는 점점 약하여 갑니까?
똑같은 하나님을 믿었고 똑같은 상황 하에서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점점 약하여 가고,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갔습니다.
1. 왜 사울은 점점 약하여 가고 왜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갔을까요?
성경은 다윗에 대하여 역대상 11장 9절에서“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점점 더 강성하여지고 형통한 인생이 된 까닭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반면, 성경은 사울에 대하여 사무엘상 16장 14절에“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고 말씀합니다. 한 때 큰 부흥의 자리에 서게 되었던 사울이 점점 더 약하여지고 결국 패망케 된 까닭은 “이가봇”즉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떠난 것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다윗과는 함께 하고 사울에게서는 떠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B.C1030-1010)이었던 사울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베나민 지파 기스(삼상9:12-14)의 아들이었습니다. 소년 때에는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준수한 자였습니다.(삼상9:1-2)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키도 컸으며(삼상9:2),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로 이스라엘의 보배였습니다.(삼상9:20) 겸손하였으며(삼상10:22-27) 여호와의 성령이 크게 임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10:6) 싸움에도 능한 자였고(삼상14:47-52), 힘이 있고 용맹한 자였습니다.(삼상17:47-52)
사울이 처음에는 잠잠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10:27)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고 그에게 부흥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에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B.C.1040-970)이 된 다윗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의 아버지는 유다지파 이새로 그는 이새의 8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음악과 구변과 시를 즐겨 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압, 아미나답, 삼마 등등 7명의 아주 잘난 형들에게 밀려 아버지 이새로부터도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던 미미한 성장과정을 거쳐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지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18:1-2, 23:1-2)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간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믿음에 응답하여 하나님은 사무엘선지자를 그의 집에 보내어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고 그 이후로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크게 임하셨습니다(삼상16:13). 그렇기에 그가 수금을 탈 때면 악령들이 다 떠나가고 그가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크게 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다윗 왕의 용감성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답니다. "다윗은 목동 소년이었음에도 키가 3미터나 되는 골리앗에 대항하여 물맷돌 몇 개를 가지고 나가 싸우려고 했으니 얼마나 용감하냐?" 그러자 그의 아들이 "아빠, 제가 보기에는 다윗보다는 골리앗이 더 용감한 것 같은데요." 하더랍니다. 아버지가 “왜?” 라고 물으니 "골리앗은 다윗이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고 했는데도 다윗과 싸우겠다고 나갔으니 얼마나 용감합니까?" 그 아들의 믿음에 목사님이 놀랐답니다.
우리도 이 아이처럼 믿어야 정상입니다.
살펴보신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도 2대 왕이었던 다윗도 모두가 다 그들 인생의 초창기 모습에 있어서 너무도 아름다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똑같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려주시는 복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두 사람의 신앙의 모습은 점차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점점 약하여 갔습니다.
사울은 불순종의 길을 걸음으로 왕권을 박탈당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탐심을 채울 생각으로 아멜렉의 살찐 가축들을 남겼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짐승들을 취했다는 사울의 핑계에 대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사무엘상 15:2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의 말씀을 버리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단호하게 버리시고 외면하시는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사울왕은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불순종하였기에 하나님께 버림받고 그의 인생이 점점 약하게 가는 인생으로 추락하게 되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기에 점점 강하여 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이었던 시편 19편에 그의 신앙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시 19:7-11)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다윗은 죽으면서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내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 할지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2:2-3)
다윗이 형통한 인생, 점점 강하여 가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 하면 말씀의 능력이 나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다 위에서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는 고백과 함께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을 때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친구의 배까지 불러 두 배 가득 채우는 기적을 맛보았던 까닭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라는 영적원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눅5:1-11)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 후에 원수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된 결정적인 비결도 역시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마4:4,7,10)에 있었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순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이 폐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으며 집에 돌아와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때까지 말씀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병고침을 받는 신유에 대한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교회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을 전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은 집사님께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권사님의 질병이 나음을 얻었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나의 몸이 아직 아픈데 나았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민수기 14장 28절 말씀
“너희 말이 내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을 전해 주시면서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소리내어서 한번 읽고 말씀을 쓰고, 말씀 소리내어서 한번 읽고 말씀을 쓰고 이렇게 만번을 쓰라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목사님께서 준 숙제를 그대로 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집사님은 숙제하면서 소리내서 말씀을 읽고 말씀을 기록하는냐에 빠르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교회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숙제를 다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숙제한 집사님께 몸이 어떠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숙제하느냐 빠른 집사님은 자기 몸을 살펴보니 자기 몸이 깨끗하게 치료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잠언 3장 5절- 6절말씀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한다는 것은 내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에 범사에 인정하면 내가는 길이 잘 보이는 것입니다.
그사람의 미래는 그사람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장래일은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고 믿기만 하십시오. 믿기만 하십시오. 믿고 꿈을 꾸십시오. 장래는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미래가 여러분의 힘으로 붙잡아 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꿈꾸고 한 것을 입으로 늘 긍정적으로 말하십시오.
부정적으로 말하면 나라가 망하고 개인도 망합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너무나 부정적인 말을 좋아합니다. 긍정적인 말은 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도 언제나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이나 이웃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든지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소리 내어 수 백 번, 수 천 번 고백하십시오.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어떻게 하면 내 삶이 형통하고 평탄해 지겠습니까? 형통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 누가 있어요? 평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 누가 있어요? 형통과 평탄은 믿고 꿈꾸고 말하는데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꿈으로 바라보고 입술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못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나는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일은 이루어진다. 승리한다. 성공한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 속담에도 "울어보고 웃어보니 웃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해서 좋은 것이 뭐가 있습니까? 마귀에게 선수를 주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만드는 길밖에 없지 않습니까? 믿음의 말을 하면은 성령이 그를 통해서 오셔서 어둠에서 빛을, 죽음에서 생명을, 무질서에서 질서를, 절망에서 소망을 주는 역사를 베풀어 주자는 것입니까?
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기적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됩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둡고 답답하여도 그것은 환경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도와줘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줘서 사는 것입니다. 환경의 손을 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잡고 사는 것입니다. 환경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지만 바람을 맞받고도 파도 위를 걸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꿈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여러분 생활 속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겨자씨 만한 믿음은 다윗이 손에 든 물맷돌인 것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키가 장대하고 철갑옷을 입고 놋경갑을 하고 창이 베틀채만큼 커도 다윗의 물맷돌 하나에 거꾸러진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으시시하고 무서워도 물맷돌만한 겨자씨 믿음 앞에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은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사무엘하 5:10)
따라서 말씀하세요. 믿으면 됩니다. 나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인생과 사울의 인생의 갈림길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느냐 아니었느냐에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던 다윗은 점점 강성해져 가는 형통의 삶, 점잠 잘되어가는 인생을 살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사울 왕은 점점 쇠약해져서 불통의 삶, 점점 안되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기에 점점 좋아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성도들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신앙의 길을 걸어감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우리 모두가 다 점점 강성하여 짐으로 복있는 사람, 형통한 사람, 점점 좋아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