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바그다드
‘바그다드 카페’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은 우선 퍼시 애들론 감독의 영화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황량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쳐 오는 모하비 사막과 다 쓰러져가는 카페, 그곳을 지나치는 나그네들의 모래알같은 일상들. 그 메마른 땅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건조한 여자가수의 노랫소리도 쉽게 재생시킬 수 있다. 제페타 스틸의 ‘Calling you’ 말이다. 그 바그다드 카페가 이라크의 수도가 아닌 미국 텍사스의 사막 한가운데에 존재하듯, 역시 서울 한 변두리에도 바그다드 카페는 있다. 나는 지금 그 카페, 바그다드로 간다.
카페, 바그다드로 가는 길은 멀고 험준하다. 혹시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대강의 여정을 남겨 보자면 이렇다. 우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끝머리 역에서 내린다. 3번 출구로 나와 987-7번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버스는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길을 달리다가 보면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담벽이 3㎞쯤 이어져 있다. 벽 위로는 월장을 막기 위한 쇠줄이 쳐져 있는데 이것을 의아해 할 필요는 없다. 정신병자 수용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도소도 아닌 주한미군의 주둔지다. 7분 후 안내방송은 종점이 다다랐음을 예고한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에 섞여 종점에서 하차한다. 다시 3분 정도 걸으면 시장이 나타난다. 시장바닥은 생선 궤짝에서 흘러내린 진물과 비린내로 질퍽하다. 그곳은 음습한 동굴처럼 하루도 햇볕 들 날이 없다. 파헤쳐진 생선 내장과 야채 더미들, 통째 껍질이 잘 벗겨진 닭과 개가 오와 열을 맞춰 진열돼 있다.
시장을 벗어나면 낡은 상가 건물들이 군집해 있다. 건물 외관에 비춰 조금도 부족할 것 없는 허름한 사람들로 복닥복닥한 거리. 오르막길의 시작 지점이다. 이제부터는 이른바 ‘고산지대’로 접어든다. 고산지대는 밑의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종점의 사람들도, 시장의 사람들도 감히 고산지대에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니, 내지 않는 편으로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겠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에 시급한 볼 일이 있는 사람이 아닌 바에는. 그러나 카페, 바그다드를 찾을 사람들이라면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카페, 바그다드는 다행히 평지에서 고산지대로 이어지는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으니까.
이윽고 평지와 고산지대의 접경지역인 백여덟 개의 돌계단이 펼쳐진다. 돌계단 사이사이로 분식집과 오락실, 슈퍼와 복덕방, 점집인 보살암과 조산소, 쌍둥이네 실내포장마차와 춘천 닭갈비집, 날라리 노래방이 이어져 있다. 돌계단의 끝 지점과 본격적인 고산지대가 펼쳐지는 곳. 사람들은 자신의 무릎 관절을 토닥거린 후,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한번쯤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의 중간점검이라고나 할까. 참고로, 간장형님은 이 길을 ‘인생길’이라고 표현한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오르막과 내리막이 공존하는 길의 연속이라는 뜻일 게다.
그 돌계단 끝 지점 비탈진 길가 일층에 빛나리 만화방이, 이층에 카페, 바그다드가 있다. 카페, 바그다드는 낡은 목조 주택이다. 백여덟 개의 돌계단처럼 카페, 바그다드도 실은 일제때 지어진 것이다. 내부는 바뀌었지만, 외관은 적갈색 일본 목조집의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창 밖으로 난 누마루도 아마 그런 까닭이었을 게다. 카페, 바그다드가 고풍스럽게 보이는 것도 낡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그 깊은 맛이 더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카페, 바그다드를 통상 바그다드로 부른다. 그러나 빛나리 만화방의 홀아비나 혀가 짧은 개뼈는 ‘빠그다’로, 발음에 자신 없는 복덕방 할아버지나 간장형님은 ‘바가야로’로 말하곤 한다. 간장형님은 바그다드에 대해 이렇게 지껄이곤 했다.
“바가야로는 초승달 같아. 꼭 거시기 창살문 틈으로 본 초승달”
간장형님은 가끔 예리한 통찰력을 과시하곤 한다. 그의 가죽 점퍼 속 깊숙이 들어있는 잭나이프처럼. 바그다드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바그다드는 하늘 한쪽에 비스듬히 비켜 서있는 초승달처럼 보인다. 특히 종점에서 올려다보면 그렇다. 내가 바그다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의 절반은 순전히 그것 때문이다. 바그다드라는 이름이 주는 묘한 매력도 매력이었지만, 눈썹처럼 가는 초승달은 그대로 내 가슴에 박혔다. 바그다드에는 벌써 두시간 동안 간장형님과 개뼈가 죽치고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다. 함부로 설칠 것 없다. 알겄제”
간장형님의 말에 개뼈는 부르르 떨었던 몸을 반듯이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제 저녁 무렵 시장 패거리들 중 갈치란 놈과 한판 대거리를 한 개뼈였다. 자꾸 왼쪽 턱뼈를 쓸어올리는 꼴이 턱이 돌아간 모양이다. 간장형님과 개뼈는 바그다드의 단골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바그다드는 그들의 아지트인 셈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삼사일은 바그다드에 죽치고 앉아 모종의 거사를 꿈꾼다. 생맥주를 막걸리 마시듯 하면서 서비스 안주로 나오는 팝콘과 멸치를 무시로 먹어치우다가 마지못해 노가리를 시키곤 했는데, 오늘은 아예 맥주만 열두 잔째다.
“돈 없어서 때려쳤지만, 그래도 나 고등핵교 교문은 넘었다. 저 시장바닥에 나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봐라 그래. 너 사르트르 아냐. 실존주의가 뭔지 알어. 야, 개뼈. 나, 먹물 쫌 먹었다. 가방끈 좀 있단 말야. 새꺄”
뭐가 뒤틀렸는지 간장형님은 개뼈를 다그친다. 간장형님은 한때 종점과 시장바닥을 휩쓸었던 간장파의 보스였다. 80년대의 일이니까 근 이십여년이 다 된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재수 없게도 미군 병사 일곱 명과 시비가 붙었고, 맨손으로 모두 때려눕힌 후, 삼청교육대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나 재수 좋게도 그곳에서 살아 나왔다. 그 후 88올림픽 때 다시 보스로 복귀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폭행죄로 10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다. 그 사이 간장파는 간장형님의 오른팔이었던 까치독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지금은 독사파가 시장바닥을 잡는다.
“잘 압니다. 형님. 그래서 제가 빵에서부터 형님을 쭉 존경해 왔잖습니까”
개뼈는 간장형님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 간장형님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개뼈 역시 밑바닥 세계에서 나름대로 잔뼈가 굵은 녀석이다. 녀석은 시골 어느 지방의 암흑천지에서 활동하다 동료의 배신으로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그때 간장형님을 만났다. 그러니까 간장형님과 개뼈는 교도소 동기인 셈이다. 개뼈는 충성의 징표라도 보이듯 갑자기 맥주잔을 이빨로 깨버린다. 개뼈의 입술에서 피가 질질 흐른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뜬다. 나는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저들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주방아줌마를 부를까 하다가, 저러다 말겠지 하고, 그냥 둔다. 간장형님은 지금 고산지대의 어딘가에 틀어박혀 살면서 다시 시장바닥을 제패할 그날을 꿈꾸고 있다.
사장은 일주일째 바그다드에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유일한 연락처인 핸드폰도 꺼져 있다. 그녀, 엘리스와 바그다드 사이에 폭설이라도 내린 걸까.
두달 전, 막 가을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우연히 생활정보지를 보고 바그다드에 왔었다. 내가 카페의 실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 사장은 팔짱을 낀 채 테이블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내가 한동안 카페의 벽에 걸린 커다란 지중해 사진과 아랍인 남녀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을 때도, 쥐 한 마리가 주방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 주방아줌마가 음식 쓰레기를 마룻바닥에 질질 흘리며 쓰레기통에 처넣고 있었을 때도, 사장은 입을 씰룩거리기만 하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도무지 나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은 이상한 계약 조건을 내세웠다. 생활정보지에도 그랬고, 전화를 걸었을 때도 ‘석달간 아르바이트 근무 후, 무조건 가게를 인수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말하자면, 사장은 속으로 “가게를 인수하려거든 아르바이트를 하라”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려거든 가게를 인수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의 나는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못됐다. 무슨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장사가 잘 되면 빚을 내서라도 가게를 인수하면 되고, 장사가 안되면 석달 후에 도망가면 될 일이었다. 더욱이 사장은 매상의 일정 금액이 넘으면, 그 나머지는 고스란히 보너스로 주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인센티브를 적용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런 조건들을 떠나서, 내 마음은 이미 바그다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칠흑같은 밤, 사막 위에 떠있는 초승달을 그리면서.
“앞으로 날 엘리스라고 불러. 알지? 엘리스. 이상한 나라”
사장은 내가 아르바이트로 첫 출근하던 날, 입을 씰룩이며 다짜고짜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했다. 사장의 본명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간장형님과 개뼈, 복덕방 할아버지와 만화방 홀아비, 조산소 할머니와 보살암의 애기보살, 심지어 노래방 미스 최와 주방아줌마도 사장을 가리켜 엘리스라고 불렀다. 엘리스는 무엇보다 밤늦게 찾아오는 미군들에게 인기였다. 미군들이 ‘엘리스’ ‘엘리스’라고 두번을 부르면, 엘리스는 입을 씰룩이며 다가가서, 양주병을 들고 나발을 불어대며 미군들과 대작했다. 그리고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헤이, 미스터 킴. 뮤직 체인지. 음, 샌프란시스코. 오케이?”
그럴 때면 나는 퇴근시간도 놓치고, 밤 열두시가 넘어서야 엘리스를 등에 업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녀, 엘리스에게는 흔히 중년 여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노련함 같은 게 없었다. 뭐랄까. 심장을 감싸고 있는 갈비뼈 하나가 쑤욱 빠진 듯한, 어딘지 모르게 결락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바그다드는 사방으로 창이 나 있다. 동쪽으로 난 창은 돌계단과 맞은편 가게들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고, 서쪽 주방의 창은 음식 냄새를 배출하는 일종의 환기통 역할을 했다. 가끔 주방아줌마가 담배를 피우다가 누군가가 들어오면, 담배꽁초를 밖으로 휙 내던지는 곳으로도 사용됐다. 북쪽의 창으로는 고산지대에 펼쳐져 있는 투박한 집들이 보인다. 고산지대의 집들은 길게 이어놓은 성냥곽처럼 줄지어 있다. 꼭대기의 어느 한 집이 무너지면, 차례대로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도미노 장난감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골목, 슬래브와 양철지붕들, 시멘트와 블록으로 지어진 집과 담벽은 곳곳에 금이 가 있다.
창을 통해 본 노인과 아이들은 햇볕이 드는 담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맨손으로 땅바닥에 뭔가를 그리거나, 얼굴을 찡그린 채 오랫동안 해를 노려보곤 했다. 담벽처럼 금이 가고 창백한 얼굴들이었다. 바그다드를 찾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남쪽으로 난 창을 좋아한다. 창밖을 보면 아랫동네의 사람들과 건물을, 종점과 시장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또 누마루가 있다. 전면으로 된 창을 열면 발코니처럼 생긴 데크 위에 두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나무 난간이 설치돼 있다. 렉산도 쳐져 있어, 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테이블에 앉아 밖을 볼 수 있다.
오후 네시 반. 곧 누마루 저편 남쪽 창으로부터 노을이 깔릴 시각이다.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고산지대의 겨울은 잿빛에 가깝다. 어둑어둑한 골목길과 깜박깜박 점멸하는 몇개의 가로등. 그 골목골목마다 나무로 된 여닫이 문이나 녹슨 철제 대문은 굳게 닫혀 있다. 고산지대의 달갑지 않은 손님은 바로 추위였다. 멀리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고산지대를 매섭게 휘감았다. 사람들은 한 줄기의 찬바람에도 어깨를 움츠리며 몸서리쳤다.
그래서 고산지대 사람들은 겨울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병든 너구리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하지 않았다. 밤 아홉시만 넘으면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해서, 열시가 넘으면 그야말로 공동묘지처럼 조용하고 엄숙해진다. 그 공동묘지 속에서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내지르는 고성방가와 그러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고산지대의 밤을 ‘쨍’ 하고 깨뜨려 놓았다.
돌계단 가게의 상인들이나 고산지대의 사람들은 서로 부르는 명칭이 있다. 복덕방 할아버지는 복덕방으로, 조산소 할머니는 조산소, 보살암의 애기보살은 보살암, 빛나리 만화방 대머리 홀아비는 빛나리, 날라리 노래방 미스 최는 날라리 하는 식이었다. 물론 당사자가 면전에 있을 때는 깍듯이 할아버지, 할머니, 보살님, 사장님으로 불렀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간장형님과 개뼈가 나간 후부터 바그다드는 정적에 휩싸여 있다. 스콧 맥킨시의 ‘Sanfrancisco’만이 바그다드에 흐르고 있다. 엘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엘리스는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시디를 하루에도 수차례 돌리다가, 샌프란시스코만 나오면 흥얼거린다. ‘If you’re going to Sanfrancisco…’. 만약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하고. 주방아줌마는 필시 주방 바닥에 도마를 깔고, 그 위에 신문을 얹고는, 곰처럼 털썩 주저앉아서, 졸고 있을 것이다. 주방아줌마에게 샌프란시스코는 오뉴월 바닷가의 살가운 바람같은 자장가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낮장사는 그른 모양이다.
바그다드의 낮장사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나그네같은 뜨내기들 몇명과 점심식사 손님이 고작이다. 뜨내기들은 대개 집을 보러온 복덕방 손님이거나, 조산소를 찾아온 겉늙은 여학생들, 전대를 차고 온 시장 아줌마들, 점집을 찾아온 종점 사람들이다. 그나마 낮장사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종점에 있는 은행의 행원들과 시장 근처에 있는 동사무소의 여직원들이 점심을 먹어주기 때문이다. 점심 특별메뉴인 오므라이스나 돈까스를 먹으면 후식으로 커피나 콜라가 나온다. 가격도 싼 편에다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이 동네에서 바그다드만이 유일한 곳이다. 직원들은 고산지대 사람들의 가난과 시장바닥의 위생을 들먹이며, 쓱쓱 칼질을 해대고는, 홀짝홀짝 커피를 마신 후, 마지막으로 냉수를 훌훌 마신다.
누군가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재빨리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손님은 다름 아닌 검버섯이 반점처럼 돋아난 복덕방 할아버지다. 복덕방은 이 시각이면 흔히 바그다드를 찾는다. 그리고는 주방에 들어가서, “어이, 라면 하나만” 하고 주방아줌마에게 부탁한다. 복덕방은 함경도가 고향이다.
1·4후퇴 때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월남해서 이 동네에 뿌리를 내렸다. 고산지대로 이사오는 사람들은 모두 복덕방의 때묻은 도장밥을 거쳐야 한다는 게 복덕방의 유일한 낙이다. 북쪽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상봉 신청이나 생사확인 절차를 밟아보지만, 매번 탈락하고 만다. 고산지대에서 평생 홀로 산 복덕방은 한끼 한끼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큰 고역이다.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주방아줌마가 끓여준 라면으로 점심과 저녁을 동시에 때운다.
한번은 낮 손님 뒤치다꺼리 때문에 주방아줌마와 때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주방아줌마가 끓여온 된장찌개에 막 숟가락을 대려고 할 때 복덕방이 나타났다. 나는 함께 식사할 것을 권했다. 한데 복덕방은 된장찌개를 보고는 가래 끓는 목소리로 으르렁대는 것이었다.
“내레, 된장만 보믄 치가 떨리는 사람이라우”
그날, 복덕방은 라면도 먹지 않았다. 주방아줌마는 내게 괜한 일을 했다고 핀잔을 주었다. 복덕방은 원래 된장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했다. 피난길에 남으로 내려오는 도중 이틀을 굶은 복덕방이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아내에게 된장을 구해오라고 채근한 게 화근이었다. 된장을 구하러 간 아내는 그 길로 오십년 동안 깜깜 무소식이다. 복덕방은 허깨비처럼 치뜬 멍한 눈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허청거리는 그의 뒷모습, 나는 문득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다. 어둠은 저 밑에 있는 종점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장을 거쳐 백여덟 개의 돌계단을 밟고 차근차근 올라온다. 어둠이 한 계단 한 계단 스쳐지나갈 때마다 돌계단의 가게들은 하나 둘 점등이 시작된다. 바그다드의 간판에도 불을 켤 시각이다. 네온사인의 코드를 꽂고 나서, 나는 누마루로 나가 담배를 한대 피운다. 누마루 위에 걸린 노란색 네온 불빛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Cafe, 바그다드’. 나는 나무난간에 팔을 얹은 채 아랫동네와 바그다드의 실내를 번갈아 훔쳐본다. 종점의 마을버스에서는 어디론가 이송되는 죄인들처럼 사람들이 차례차례 내린다.
시장의 희부윰한 백열등 사이로 까만 머리통들이 분주히 굴러다닌다. 나는 바그다드의 실내를 본다. 푸른색 할로겐등의 불빛을 받고 아랍인들이 서있다. 터번을 쓴 남자와 차도르를 두른 여자가 메마른 눈빛을 보내고 있다.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퇴근하는 미군들에 섞여 낯익은 고산지대 사람들이 종점을 떠돈다.
돌계단의 가로등 밑에서는 간장형님과 개뼈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주고받는다. 그 밑 돌계단의 초입으로 복덕방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올라온다.
오락실에서 나온 아이들 틈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라리가 계단을 내려간다. 쌍둥이네가 쪽빛 수족관에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꺼낸다. 나는 다시 바그다드의 실내를 본다. 거기, 곧 파도가 밀려올 듯한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나는 마치 돌계단을 다 올라와 버린 늙은 원숭이처럼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밤이 되면서 바그다드는 다소 활기를 찾는다. 예닐곱 명의 미군 병사들이 두 테이블에 나뉘어 양주를 마시고 있다. 미군 병사들 사이사이에 젊은 여자들이 앉아 말보로를 피워댄다. 바그다드의 실내는 금세 담배연기로 자욱해진다. 할로겐등 불빛이 담배연기를 안개의 기둥처럼 만든다. 그 사이로 음악이 흐른다. 연인처럼 보이는 두 커플이 들어와 누마루 전면 창 앞에 앉아 맥주를 주문한다.
곧 퇴근 시간인 열두 시가 가까워 온다. 이 시각이면 나는 프론트에 앉아 조심스럽게 금고 문을 열어본다. 머리 속에는 이미 오늘 매상이 얼마 정도가 되리라는 것을 대충 그리고 있다. 그래도 직접 확인해서 장부에 기입해야 한다. 미군들의 양주까지 계산하면 삼십만원은 족히 될 것 같다. 하루 매상이 최소 이십만원은 넘어야 바그다드를 유지할 수 있다. 월세에다 재료비, 인건비, 세금을 제하고 나면 주인에게 떨어지는 돈은 실상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적자를 보지 않는 게 다행이다. 오늘같은 날은 미군들이 도와준 셈이다. 간장형님과 개뼈 같은 손님은 백날 와봤자 득될 게 없다. 주방아줌마가 퇴근하고 나자, 손님들은 하나둘씩 바그다드를 빠져나간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군들이 나가고, 바그다드는 이내 텅 빈다. 나는 음악을 끄고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한다. 청소는 내일 아침에 하면 될 일이다. 그때 누군가 후다닥 나무계단을 밟고 황급히 올라온다.
“다행히, 아직 안갔네”
조산소 할머니와 보살암의 애기보살이다. 조산소는 미안하다고 하며, 맥주를 딱 한잔씩만 하고 가겠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틀린 모양이다. 택시를 타면 집까지 가는 비용이 만만찮다. 나는 주방에 있는 다락방으로 가서 전기장판을 꺼내 코드를 꽂는다. 두 사람은 맥주가 나오기 무섭게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한다. 삼분 후에 조산소는 맥주 두 병을 더 시킨다.
“언니, 맞지. 내가 참아야 되는 게 맞는 거지. 그렇지” 하며 보살암이 조산소에게 따지듯 묻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곧 울어버릴 태세다. 보살암은 기둥서방한테 또 두들겨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거지. 그렇지. 언니. 근데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우?”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자기가 밴 애 자기가 못 뗀다더니”
조산소가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나는 누마루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밖은 캄캄하다. 맥주 열 병을 비우고서야 제풀에 지쳐 흐느적거리는 보살암을 조산소가 데리고 나간다. 나는 안에서 문을 잠근다. 전기장판은 따뜻해져 있다. 불을 끄고 눕는다. 드르륵. 어디선가 육중한 철제 셔터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드르륵. 이윽고 또 다른 곳에서 철제 셔터가 내려진다. 철제 셔터는 약속이나 한 듯 간헐적으로 내려지고, 마지막으로 한 곳에서 내린 셔터 소리는 허공에 긴 여운을 남기고 끊긴다. 그 쇳소리는 곧 죽으려는 사람의 마지막 유언처럼 들린다.
행려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자기가 자던 곳이 아니면 쉽게 잠들지 못하게 마련이다. 나는 한동안 뒤척인다. 또옥 똑. 물소리가 난다. 주방의 수도꼭지가 덜 잠긴 모양이다. 덜컥.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접시가 잘못 포개진 모양이다. 쓰륵 쓰륵. 창문이 움직인다. 바람이 몹시 세게 부는 모양이다. 쭈르륵. 물이 빠지는 소리가 난다. 싱크대 배수구로 물이 내려가는 모양이다. 나는 귀를 막는다. 어디선가 아이의 날선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날, 바그다드에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주방아줌마와 내가 이층으로 올라와 청소를 하려는 순간 우리는 서로 얼굴만 멀뚱히 바라봤다. 홀에서부터 주방까지 여기저기 음식물 쓰레기가 흩어져 있었고, 주방에는 접시가 깨져 있었다.
아줌마가 준비해둔 야채 샐러드는 몽땅 주방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테이블 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새벽, 내가 혼몽한 잠에 빠져 있던 사이 누군가 바그다드에 다녀갔다는 흔적이다. 나는 단서를 찾으려는 수사원처럼 마루바닥을 헤집고 다닌다. 밤새 누가 왔다 간 것일까.
그것은 바로 쥐였다. 밤새 바그다드는 쥐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이따금씩 한두 마리의 쥐가 주방의 음식물 쓰레기를 물어가기는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있던 터였다. 음식물 쓰레기 있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주방아줌마가 의기양양해 하며 들고온 병 속의 그것을 보고는 께름칙하다 못해,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주방에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아직 눈도 못 뜬 생쥐들이 기어가고 있지 않겠어. 그래서 냉큼 잡았지. 이거 술 담궈서 한 십년 푹 삭히면 몸에 그렇게 좋대. 쥐술 말야. 신경통에 관절염, 풍에도 그만이라던데. 아유, 이 귀여운 것들. 오늘 완전히 땡잡았네”
주방아줌마의 손에 들린 빈 병 속에는 아직 털도 나지 않은 빨간 새끼쥐 세 마리가 담겨 있었다. 새끼쥐들은 서로를 짓밟으며 병 밖으로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아줌마는 신경통이 도진 듯, 한 손으로 어깨를 토닥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쥐는 대낮에도 나타났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다리 사이를 재빨리 지나가는가 하면, 천장 대들보 위를 슬금슬금 기어다니며 약을 올린다.
점심식사를 하던 동사무소의 여직원 둘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갔고, 쟁반을 들고 차를 나르던 내가 찻잔을 떨어뜨린다. 밤에는 그 기세가 더욱 심했다. 나는 서둘러 셔터를 내린다.
나와 아줌마는 약을 뿌리기도 하고, 미끼를 넣은 덫을 놓기도 했다. 용케 몇 마리가 걸려들었지만 문제는 사후처리였다.
약을 먹고 죽은 쥐는 발견 즉시 내다버리면 됐지만, 그렇다고 계속 약을 쓸 수는 없었다. 약을 먹은 쥐는 꼭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가서 비실비실 죽기 때문이었다. 미처 발견하기 전에 손님들이 보거나, 아니면 아주 구석진 곳에서 썩어가면 그 냄새도 문제였다. 덫에 걸린 산 쥐 역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밖에다 버리면 또 기어 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부터 주방아줌마의 무차별 살육이 시작됐다. 끓는 물에 산채로 집어넣는가 하면, 두꺼운 비닐봉지에 두 마리를 함께 넣어 고무줄로 입구를 꽉 막았다.
빈 통조림통에 넣고 뚜껑을 박스 테이프로 친친 감고는, 그것을 현관 밖 돌계단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기도 했다. 통조림통은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통통 구르며 떨어졌고, 시장바닥을 거슬러 종점까지 굴러갔다. 그래도 쥐는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바그다드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붙은 성냥을 휙 던지는 꿈을 꾸곤 했다.
일주일 후면, 약속한 석달이 다 되는데도 엘리스는 오지 않는다.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엘리스의 집을 아는 사람도 없다. 경찰에 신고를 할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다고 쉽게 엘리스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바그다드를 찾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엘리스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방아줌마까지도. 사람들은 바그다드라는 무대에서 조용히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대 위에는 알 수 없는 불온한 공기마저 떠돌고 있다. 사막의 초승달, 바그다드에서 엘리스는 한발, 한발 멀어져가고 있는 듯했다.
한바탕 눈이라도 퍼부을 것 같은 날씨가 계속된다. 고산지대 사람들은 본격적인 월동준비에 들어간다. 보일러를 청소하고, 김장을 한다. 김치 접시가 이 집, 저 집 돌아다닌다. 창문에 비닐이 쳐진다. 만화방 홀아비 빛나리는 창고에서 꺼낸 난로를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빛나리는 연통이 일자로 반듯하게 설치됐는지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쳐보다, 결국 나까지 부른다. 내가 일자로 반듯하게 설치됐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나서야, 빛나리는 이내 흡족한 웃음을 띤다.
날라리 노래방 미스 최는 최신형 온풍기를 구입한 후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제품 자랑에 열을 올린다. 나는 벽난로에 쓸 통나무를 한쪽 벽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한동안 복덕방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더니, 복덕방은 아예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사철이 지나서일까, 긴 겨울잠에 들어간 모양이다.
고산지대의 월동준비가 끝나가던 어느 날, 아슬아슬하게 백여덟 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던 간장형님이 결국 내리막길을 걷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낮부터 한바탕 쥐와의 전쟁을 치르던 날 밤이었다. 미군 병사들과 젊은 여자들이 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질퍽하게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고, 간장형님과 개뼈가 바그다드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들은 어디에서 술을 마셨는지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형편없이 취해 있었다. 그리고는 웬일로 양주를 시켰다. 폭풍 전야의 밤이라고 했고, 승전의 전주곡이라고 떠들어댔다.
“어이, 김씨. 여기 메모지 좀 더”
간장형님이 메모지를 재촉했다. 벌써 다섯 장 째였다. 간장형님은 메모지에 대고 개뼈에게 그의 거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독사파에서 보낸 밀탐꾼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간장형님은 개뼈에게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주고는, 손짓 발짓까지 쓰며 설명했다. 개뼈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니 머리를 고려해서 간단하게 다시 설명할라니까 잘 들어라. 그러니까 이번에는 성동격서 책이야. 성동격서. 지난달에 날라리를 미인계로 써서 실패한 거 알잖아”
개뼈는 여전히 무딘 칼끝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먼저, 성동. 니가 시장 입구에서 피라미와 닭똥집을 유인해. 그런 다음 피바다와 자갈치를 제끼고. 다음은 격서. 즉 내가 시장 한가운데서 마무리로 독사를 찌를께”
“가능하겠습니까?”
개뼈가 풀린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야, 새꺄. 내가 왜 간장인 줄 모르냐. 우리 엄니가 뱃속에 있는 날 뗄라구 간장을 두 됫박이나 자셨는데도, 난 기어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말씀이야. 그래서 내 쌍통이 이렇게 시커먼 거다. 난 간장처럼 짜고 독한 놈이야”
간장형님은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태생의 비밀을 까발리며 개뼈를 닦달했다. 그때였다. 쥐 한 마리가 미군들 사이에 끼여 있는 젊은 여자의 다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여자는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질렀고, 깜짝 놀란 미군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런 소란에 흥분 상태였던 간장형님이 미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야, 씨팔. 양키 새끼들 아냐. 양키스, 고우 홈”
술에 취한 건 미군들도 마찬가지였다. 불곰처럼 생긴 미군이 간장형님의 멱살을 잡았고, 간장형님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마룻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간장형님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개뼈가 양주병을 들고 불곰을 위협했지만, 위협으로만 끝났다. 우르르 몰려드는 건장한 미군들을 당해낼 길이 없었던 것이다. 턱뼈가 돌아간 개뼈가 절룩거리는 간장형님을 부축하고 계단을 내려가자, 미군들과 여자들은 득의에 찬 환호성을 질렀다. 덕분에 나는 양주 두 병을 더 팔았다.
다음 날, 시장바닥을 들끓게 한 간장형님의 거사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간장형님은 시장바닥 한가운데에서 그의 잭나이프에 일격을 받았다. 개뼈의 성동격서 책략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개뼈는 먼저 피라미와 닭똥집을 유인한 뒤, 피바다와 자갈치를 따돌리고 나서 시장 한복판으로 갔다. 그런 다음은 까치독사가 보는 앞에서 간장형님의 잭나이프를 뺏어 들고 간장형님의 어깨에 그것을 꽂았다. 개뼈의 거사는 싱겁게 끝이 나버린 것이었다. 어깨에 잭나이프가 꽂힌 간장형님은 숨을 헐떡이며, 미친 듯이 돌계단 쪽으로 뛰어올라 복덕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복덕방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동안 쥐약 먹은 개처럼 고산지대를 이리저리 날뛰던 간장형님은 한참 후 꼬리를 사리고 낑낑대다가, 결국 고산지대에서 사라졌다.
주방아줌마의 살육은 날이 갈수록 광포해져 간다. 끈끈이에 묻어, 공포에 찬 눈을 띠룩거리는 쥐를 향해 녹슨 칼을 휘두르는가 하면, 쥐꼬리를 잡고 누마루로 나가 빙글빙글 돌리다가 저 아래 시장바닥을 향해 힘껏 내던지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주방아줌마가 펼치는 살육의 향연에 동조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방역회사에 전화를 하겠다고 한다. 주방아줌마는 먹이를 놓친 고양이처럼 몸이 달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큰소리친다. 주방아줌마는 사로잡은 쥐의 꼬리에 실을 꽁꽁 묶은 후 곧 풀어준다. 쥐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실패가 바람을 탄 연의 얼레처럼 술술 풀린다. 주방아줌마가 건네준 실패를 손에 들고,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쥐의 근거지는 의외로 쉽게 발견된다. 그곳은 조산소로 통하는 시궁창이었다. 나는 실패를 감았다 풀기를 반복한다. 팽팽한 실과 함께 쥐가 끌려나온다. 그새 쥐는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에구, 이게 뭐야. 주방아줌마의 비명 섞인 외마디에 난 곧 실을 놓아버린다. 그것은 태반이었다.
“왜, 바닷가에 가면 모래가 있는지 아니?”
내가 바그다드에 온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음악을 듣고 있던 엘리스가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지중해 사진을 보다 말고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엘리스는 평온한 표정으로 전면 창을 통해 누마루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희뿌연 안개가 여태 누마루 위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테이블에는 진한 에스프레소와 금방 구워낸 크라상의 향기가 구수하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다는 원래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던 거야. 한데, 사막에 초승달이 들면서, 바닷물이 빠져나가버린 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엘리스는 또 샌프란시스코에 젖어 있는 것이다. 쪽빛 하늘과 코발트빛 바다. ‘인디언 처녀의 젖가슴’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트윈 픽스. 그 쌍둥이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통통거리는 쪽배. 그리고 마천루에 부유하는 아침 안개를, 도심을 가르는 케이블카를, 그런 샌프란시스코를 엘리스는 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난 널 처음 보는 순간 사막을 떠올렸어. 혹시 어린왕자가 한 말 아니?”
엘리스는 샌프란시스코를 결코 잊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미군 장교였다. 장교는 사막같은 가슴을 지닌 사내였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를 말할 때는 바다같은 사내가 됐다. 장교는 결국 바다를 향해 떠나 버렸다. 엘리스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샌프란시스코를 마치 그곳 태생의 여자처럼 그리워했다.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아니 전생이 있다면, 엘리스는 오래 전 그곳의 인디언 처녀였는지도 모른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
엘리스와 약속한 석 달이 다가오면서부터 나는 슬슬 피로해지기 시작한다. 바그다드를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엘리스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사막,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온 걸까. 파도가 밀려들 것 같은 지중해. 사진 속의 아랍인 남녀는 아무 말이 없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나는 주방아줌마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입해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바그다드를 나온다. 돌계단을 밟고 시장 쪽으로 내려간다. 복덕방의 문은 여전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굳게 닫혀 있다. 인적이 끊긴 복덕방은 퇴락한 폐가처럼 을씨년스럽다. 밖으로 난 조그마한 담배 창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거린다. 곧 늙고 여윈 손이 나와 담배를 건네줄 것만 같다. 나는 상가 건물을 지나 시장바닥으로 나간다. 엘리스가 오기 전, 바그다드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 접시와 잔을 바꾸고, 테이블보도 교체해야 한다.
나는 시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그릇집을 나와 데코레이션집으로 들어간다. 다시 데코레이션집을 나온 나는 시장바닥을 헤맨다. 매일 지나오는 길이지만 아직 나는 시장바닥을 꿰뚫지 못한다.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은 혼란스러움. 미로 같은 골목길. 그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나는 얼핏 간장형님의 낡은 가죽 점퍼를 본 것 같다. 아니, 그건 개뼈였다. 개뼈는 어깨에 잔뜩 ‘후까시’를 넣고 상가건물 쪽으로 느릿느릿 걷는다. 그 뒤로 피바다와 자갈치가 따른다.
나는 빈 손으로 털레털레 돌계단을 오른다. 돌계단 초입에 경찰차가 서 있다. 고산지대의 어디선가 또 사고가 터진 모양이다. 나는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뒤로 하고, 돌계단을 하나 둘 세면서 오른다. 칠십네 개째의 돌계단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복덕방이 있는 돌계단이다. 나는 잠시 기웃거리다가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경찰의 손에 의해서 굳게 닫혀 있던 복덕방의 문이 열린다. 순간 사람들은 코를 잔뜩 움켜쥔다.
“씨팔. 어쩐지, 쿰쿰한 냄새가 난다 했어”
“쯧쯧, 세상에. 저런 줄도 모르고”
복덕방이 죽은 것이다. 복덕방의 시신은 경찰들의 손에 의해 돌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곧 복덕방의 문은 밖으로 자물통이 채워진다. 나는 갑자기 목구멍에서부터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나는 한쪽으로 비켜서며 헛구역질을 해댄다. 그때 쥐 한 마리가 잽싸게 조산소의 시궁창으로 들어간다. 사람들 틈에서 비켜나온 춘천 닭갈비와 쌍둥이네, 빛나리 홀아비와 날라리 미스 최, 주방아줌마가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조산소에게 뭐라고 악다구니를 치고 있다. 그 소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목울대를 움켜쥐고 바그다드를 향해 뛴다. 주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싱크대의 서랍을 열고, 그릇 수납장을 연다.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통을 끄집어낸다. 다시 야채더미를 파헤친다.
양념선반 위의 양념통을 모조리 바닥으로 팽개친다. 거기 그 술병이 있다. 나는 술병을 감싸안고 한번도 오른 적이 없는 고산지대를 오르기 시작한다. 끝없이 이어진 좁은 골목길. 산자락의 중턱에서 나는 햇볕이 잘 들 만한 마른땅을 찾는다. 적당히 땅을 파고 나서, 들고 있는 술병을 조심스럽게 깬다. 그리고 병 속에 들어있는 것을 슬그머니 땅 속에 내려놓는다. 눈을 질끈 감고 흙을 덮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후다닥 산을 뛰어 내려온다. 등줄기에 서늘한 땀이 배어 나온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떠나고 없다. 칠십네 개째의 돌계단은 지금껏 그래왔듯, 백여덟 개의 돌계단 중 하나가 된다.
일층 만화방에서 나온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창가로 다가간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다. 첫눈이다. 첫눈 치고는 꽤 많은 눈이 내린다. 흰 광목천이 하늘에서 내려와 서서히 고산지대를 덮고 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우편함에 내 이름이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가 와 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뜯어본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1월2일자로, 귀하를 다시 복직조치 함.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길…. Wawoo Inc 인사부- 나는 음악을 틀고 불을 끈 후 자리에 눕는다. 고산지대의 사람들이 눈송이처럼 하나, 둘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눈은 켜켜이 쌓여간다. 어둠 속에서 토니 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가 흘러나온다.
엘리스와 약속한 꼭 석 달이 되는 날, 나는 이불 속에서 손을 뻗어 창문을 연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그 다음날에도 나는 꼼짝하지 않고 이불 속에서 손을 뻗어 창문을 연다.
눈은 지칠 줄 모르고 내린다. 삼일째 내리는 폭설이다. 나는 불현듯 바그다드에 엘리스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 인디언 처녀가 그랬던 것처럼, 트윈 픽스 언덕에 서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도 너무 많은 눈이 왔겠지. 카페, 바그다드는 과연 무사할까.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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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당선소감] 묵묵히 눈길을 가던 그 우체부처럼…
김계환 1972년 순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엉겁결’에 당선 통지를 받았을 때부터 줄곧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뒤죽박죽 엉킨 나날들이었다. 지금껏 그래왔듯 말이다. 무수한 생각의 편린들이 깊은 우물 속으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밤. 아무리 퍼 올려도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두렵다.
니체가 말했다지. 이 세상엔 단지 두 부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 부류의 인간은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고, 또 다른 부류는 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며 사는 인간이라고. 행여, 나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사람에게 ‘시비’나 걸고 살아온 게 아닌지.
어릴 적, 어머니는 당신의 무릎 맡에 있던 내게 곧잘 옛 이야기나 동요를 들려주곤 했다. 그 중에서도 문득 ‘우체부 아저씨’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우체부 아저씨, 큰 가방 속에 편지 넣고서 어디 가세요, 라는. 어머니는 여태껏 그 ‘편지’를 기다리며 살아오셨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지켜봐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누님들. 가족 친지들. 친구와 선배들. 많은 도움을 주신 박석주, 선미 선배, 인윤이. 주건협의 여러분들.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서울예대 교수님들과 학우들. 보잘 것 없는 작품에 ‘희망’이라는 편지를 띄워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 그녀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 정말 시작인 것 같다. 빨간 가방을 둘러메고, 눈밭을 헤치며 묵묵히 자기 길을 가던 그 겨울의 우체부. 가방 속의 편지들, 그런 글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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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심사평] 일상적 풍경에서 삶의 의미 새롭게 도출
소설 쓰기는, 어떤 경향의 작품이거나, 기본적인 소설 문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이 나타나야 한다. 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과 뜨거운 헌신 없이는 진정한 소설은 멀다. 오랜 연마를 겪되, 참신하게 태어난다는 것…. 작품 가운데 불임 문제가 갑자기 도드라져서, 신파적이고 진부한 소재가 무엇 때문일까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 가운데 ‘고압선이 지나는 마을’(탁재룡), ‘미사리 가는 길’(윤미영), ‘상흔’(이성은), ‘카페, 바그다드’(김계환) 등 네 편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고압선이 지나는 마을’은 문장이 좋은 데다가 전체적으로 엮어가는 힘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청소년 주인공의 사고가 어리고, 또 농약을 이용해 흰꼬리수리를 잡는다는 결말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미사리 가는 길’은 잔잔한 필치가 눈길을 끌었으며, 많이 써본 듯한 솜씨도 호감이 갔으나, 서사와 메시지가 약해서 강렬한 느낌을 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
‘상흔’과 ‘카페, 바그다드’를 놓고 우리는 여러모로 의견을 나누었다. 전자가 정통적인 소설이라면 후자는 실험적인 소설이어서 다른 잣대가 요구되기도 했다. 오랜 논의 끝에 전자가 신선함이 결여되어 있고 낡은 그림인 점이 문장에 값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후자는 다소 산만하여 선명하게 주제를 살려내는 데는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초겨울 산동네의 스산한 풍경을 실감있게 그리고 있으며, ‘엘리스’의 실종으로 아픈 현실을 부각시키는 등 일상적 장면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도출하는 감각이 돋보였다. 당선을 축하하면서,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 이문구, 윤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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