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의 주름'까지 간섭하는
온갖 종류의 권력이 탈각될 때까지
전복과 역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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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학생들 떠났지만 희망을 갖자고요
여보, 비가 오고 있어요.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일하길래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못했어요. 우산 같이 쓰고 산책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느새 잠이 들었군요.
양심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쓰려고 3년 전 당신의 자료를 찾아봤어요. 2000년 8월23일. 소위 민혁당 사건으로 개학을 이틀 앞두고 당신은 국가정보원에 잡혀갔죠. 6·15공동선언이 있은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아 터진 사건이라 한바탕 코미디일 줄 알았죠.
당신의 연행 이유는 다음날 신문에 `수업 중 주체사상 전파 협의’라는 글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죠. 공소장을 보니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종사죄’라는 어머어마한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당신이 고등학교 교사가 된 이유도 지하혁명당의 고등학생 조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나요. 국정원이 그리도 아득바득 우기던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종사죄는 무죄가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저들이 하나 건진 것이라고는 우리집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분명치 않은 “자립적 민족경제를 수립하자”라는 노동신문 사설 하나였죠. 결국 당신은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구속됐죠.
당신 구속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학생들은 “우리는 주체사상이 아닌 과학을 배웠다”며 인터넷으로 저항했고 명동성당에서 집회도 했습니다. 당신 얼굴이 새겨진 버튼에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넣어 가방과 교복에 달고 다녔죠. 그 정성으로 108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 출근할 때는 전교생이 교문에서 교무실까지 길을 만들어 환영해 주었다지요. 또한 학교에서 수업을 주지 않자 3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은 한달간 수업을 거부해 결국 당신의 수업권을 찾아주었구요.
학생들의 고마움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당신은 파면당했지요. 파면된 뒤 당신은 자주 수업하는 꿈을 꾸었죠. 그런 날 아침이면 당신 표정이 많이 어두웠어요. 몇년 전 당신은 교사를 꿈꾸는 고3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죠. “다른 직업과 달리 방학이 있어서, 또는 안정적이기 때문에 교사가 되려 한다면 교사가 되지 말아라.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면 교사가 되라.” 그런 당신이 학생들과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처지니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래도 힘든 내색하면 안돼요. 아직도 이 땅에는 어린 한총련 학생들이 수배자의 길을 걷고 있고, 감옥에는 많은 양심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참여정부가 시작했잖아요. 희망을 갖자구요.
여보, 비가 오고 있어요. 무슨 꿈을 꾸나요. 꿈속에서나마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수업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