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일상 19: 일상에서 스며드는 마을사랑, 고장사랑, 나라사랑
도쿄는 어제 종일 눈이 내리더니만 지난 새벽부터는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그 속에서도 가지각색의 동백꽃, 매화, 수선화가 한창이다. 일본에는 지진, 태풍 같은 천재지변도 잦지만 태평양이 몰아다 주는 온갖 혜택을 독차지 한 듯, 그 동쪽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풍부하다.
역사적 연유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지방색이 심하다. 대한제국, 일제,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로 신분제, 계급제 등은 거의 없어졌지만, 여전히 세대, 노사, 여야, 동서, 남북 갈등이 심하다. 동서남북의 사방 갈등을 잘 다스리는 나라들은 연방제 국가들이거나 제국을 경영해 본 나라들이다. 우리는 고구려를 제외하고 이런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다 쓰러져 가던 대한제국은 제국과 황제의 뜻도 모르고 그것을 사용하였고, 다스리지 못한 내분과 어두운 바깥사정의 결과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당시 평민들이 겪은 고초는 형언하기 어려우며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나 후속행동이 없이 역행하는 언행으로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누구나 애향심이 있다. 그런 소박한 애향심을 더 큰 목적의 애국심 아래 복속시킬 수 있어야 민주시민이다. 나아가 민족애, 애국심은 더 큰 보편적인 인류애로 승화시켜야 세계시민이 될 수 있겠다. 그러면 가히 신사숙녀, 선남선녀, 성인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오늘날 국회의원처럼 나랏일 한다고 해놓고 자기 지역구 잇속 차리는 소인배가 된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를 두고 하는 욕은 무참하다. 욕설의 백화점이고, 철천지 이런 웬수가 따로 없다. 이렇게 남북통일이 되면 또 어떨까? 통일되려면 그래야 하겠지만 그 전에 하루바삐 정치시민교육이 잘 정착되어 애향심을 벗어나 더 큰 애국심으로 승화하여 많은 이들이 소인배를 벗어났으면 한다.
교육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동 변화 활동이다. 그래도 변화 안 되는 것이 참 많다. 나 개인으로서도 유학을 했고, 교환교수를 하고 여러 나라 여행을 다녀봤다. 그럼에도 사해동포주의보다 아직은 내 민족이고 내 나라다. 이런 민족애 애국심도 언젠가 지구촌 인류애 아래 복속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서너달 일본에 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것도 많지만, 그네들을 욕하느라 정작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것도 적지 않다. 우리의 80년대식 유모차 사용이나 남녀노소 자전거 상용에서 오는 사치스럽지 않은 일상생활, 비올 때를 대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건물 앞에 꽂혀 있는 여분의 우산들, 소식 위주의 소박한 식생활, 음식점의 사진형 메뉴판과 기차표 사듯 자동판매기 갖춘 간이 음식점 음식 주문 구매 방식, 표리부동이라고 욕먹어도 최소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 감기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마스크를 하는 주의, 예방의약의 발달, 민가 속의 절간 뒤뜰에 반 평으로만 조성한 가족 석묘, 탈아론(脫亞論)을 적용했는지 미국 유럽 차는 사 주면서 한국 차를 한 대도 안 사주는 아주 얄미운 자존심, 웬만한 지진에는 끄덕없게 탄탄하게 지은 건축물, 삼나무 편백나무로 빼곡히 산을 뒤덮은 나라 등등 부럽기도 하고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
나는 우리교육에서 최소한 몇 가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하나는 교육의 첫걸음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부지리 우화를 철저히 가르쳐야 하는 것, 다른 하나는 탈무드처럼 우리와 세계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수천페이지로 묶어 교양서로서 대한민국 시민을 길러야 한다는 것, 일본에서 추가해서 생각한 것이지만 세계 각국의 자기나라를 사랑하도록 하는 일상에 스며든 사회적 자본 및 신뢰 장치가 무엇인가를 조사하여 종합하여 우리도 그런 장치를 나라 곳곳에 만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 공원의 운동시설, 서울의 대중교통 안내는 세계적으로 으뜸이다. 일본은 아직 이런 것 못 만들었다.
흔히 일본 사람들은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잘 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의 단칼이 무서워서 그렇게 순치되었는지, 군국주의 권위 정부의 강요에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들의 국가(國歌)도 짧게 단언한다. “임(천황)의 치세는 천대(千代)에서 8천대에 까지, 작은 돌이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를 노래한다. 바닷가 모래, 작은 자갈이 모여 큰 바위가 되도록 일본사람들은 단결하자는 것이다. 단결한 1천만 유대인이 그러한 것처럼 일본인 1억 2천7백만 명이 단결하면 세계를 움직일 것이다.
나는 도쿄 시내를 발로 걸어 다니며 유명한 8개의 공원과 정원을 답사하였다. 미련스레 욕심을 앞세워 하루 20여 킬로까지 강행군한 적이 있어 발병, 허리병이 나기도 하였다. 가급적 큰 길을 피하고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무시로 민가를 살펴보았다. 인상적인 장면은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나는 수목을 좋아하는데 특히 꽃을 좋아한다. 사실 달콤한 과수의 열매를 가장 좋아한다. 일본의 거리에는 어김없이 꽃집이 있고, 그 집에서 진열한 꽃들을 보면 참 다양하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렇게 이쁜 꽃들에 만약 지적재산권에 걸려 있다면 매우 비쌀 것이다.
민가 마을골목을 지나다보면 작은 정원을 가꾸는 집들이 많다. 하다못해 처마아래와 대문밖에 화분을 몇 개씩 내놓은 집도 많다. 좁은 땅에서도 거의 대다수의 민가와 상가가 조경에 애쓴다. 도쿄는 날씨가 온화하니까 화분과 꽃밭에 사시사철 꽃이 피고진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길거리는 깨끗하다. 자기 집과 가게 주변을 늘 닦고 쓰니까 더 깨끗하다.
정원과 화분을 보노라면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좋아할만하다. 아낄만하다. 그렇다! 일상에서 내 주변 환경이 좋아할만해야 좋다. 한 때 기분이 상하더라도 주변이 아름다우면 사람들은 기분전환이 된다. 하교하는 유치원생들이나 초등생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옹기종기 앉아서 꽃들을 귀여워하는 것을 보면 더욱 실감난다. 귀하고 사랑할만하며 예쁘니까 사람들은 절로 내 사는 곳을 좋아하게 된다. 이렇게 일본 사람들은 주변의 화분과 화단으로 아름다운 내 마을, 내 고장, 내 나라를 좋아하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도쿄 시내에 심겨진 가로수는 대체로 사시사철 푸르름을 더하는 사철나무, 차나무, 감귤나무 류가 많고 가로수 화단이나 공원 정원에는 향기나는 허브류를 주로 심었다. 일상이지만 아주 정교하게 기획된 일이라고 본다. 내 나라 내 땅을 아름답고 향기 나게 만들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존 듀이 선생은 민주주의를 생활방식이라고 했다. 그만큼 일상의 공기처럼 되도록 부지불식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의 모든 유적지를 재단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나면 집집마다 새로 꽃단장을 하라고 독촉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88올림픽 때 성화봉송로를 따라 아파트 등에 화분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한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본은 아직도 노년층을 중심으로 지역 계몽활동, 자경활동이 활발하다. 일본 특히 도쿄는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아낄만한 사랑스런 주변 환경에서 내 마을, 내 고장, 내 나라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도 한 때 새마을 운동할 때 마을마다 이런 꽃밭조성, 꽃길 조성을 독려한 적이 있다. 당시 국민학교에서 시켜서 나도 우리 마을에 꽃밭 하나를 ‘책임지고’ 조성한 바 있다. 고향 가서 거길 지날 때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강산이 변했다. 이젠 먼 얘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신작로를 따라 심었던 코스모스들은 드문드문 대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 회복해야 한다. 내 마을, 내 고장, 내 나라를 더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화분 하나라도 가꾸고, 휴지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을 미개하게 여기도록 유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애향심을 넘어 애국심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일상 속에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내분을 넘어 통일을 준비하고, 그 뒷감당을 해내며, 외침을 막을 정도로 자강(自强)도 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더 성숙시키고,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한 없이 부러운 문화 선진국을 만들 수 있다. 이대로 노사, 세대, 여야, 동서, 남북 내분만 일삼으면 임란전, 호란전, 19세기말, 해방정국과 다름없고, 결국 붕괴될 북한은 중국화되고, 우리는 또다시 중국과 일본의 어부지리감에 변방소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천여 년을 그렇게 지내온 것으로 족하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국가적 비전을 5년이 아니라 50년을 앞을 내다보며 의도적으로 아름다운 고장과 나라를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결국 공식적 제도와 비공식적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그 발판을 우리 집 주변, 마을 어귀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일상으로 살아가면서 스며든 사회적 신뢰, 사회적 자본의 반경 확대! 그 마을사랑, 고장사람, 나라사랑을 빼앗을 자 없으리라(2015.2.15.아침. 홍후조 배).
첫댓글 아주 논문을 썻(씃)구만(!?) 이그 읽는데 앞에 내용을 뒤에꺼 읽으면서 자꾸 잊어버려 몇번을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읽고 그래도 전체 내용이 아직도 머리에 안들어와서 식급하고 있다......쓰내려 가는 사람도 있는데 믄 포시란 소리 한다고 하겠진만 이젠 우리 나이가 그런가 보다!..... 후조 너는 매년 수무살 새파란 젊은 것들하고 수업하니 안그렇겠지~~~~그리고~!! 일본에 오래 있으만 안돼여~~~!! 쪽바리된다카이......그거 되기전에 빨리 건너와라......그래야 동창회 참석하지ㅋㅋㅋㅋㅋ
덕분에 잘 다녀왔다오.
지금은 서울 집에서 아내가 끓여주는 점심을 들고 있다.
천하에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감사에 감사할 뿐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우리"를 생각ㅎ게 하네요 우리고장, 우리나라, 애향심, 애국심... 이런 것들은 정치꾼들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친구의 글을 보니 그렇지 만은 안는 것 같네여! 영혼이 깃든 휼륭한 글입니다.
오늘 아침 친구 덕에 격이 있는 고민을 해 봤슴다. 한순간이라도 순수할 수 있느는 것은 좋은 교훈입니다!!.
헌데 작성일이 2015.2.15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