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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붓다는 자신 이전에 여섯 분의 부처가 인간세상에 출현했다고 하였는데, 이를 원시육불(原始六佛)이라고 칭합니다.
《디가니까야 마하빠다나경》에서 붓다가 언급한 원시육불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빳시(Vipassī, 毘婆尸佛)
시끼(Sikhī, 尸棄佛)
웨사부(Vessabhū, 毘舍浮佛)
까꾸산다(Kakusandha, 拘留孫佛)
꼬나가마나(Koṇāgamana, 拘那含佛)
깟사파(Kassapa, 迦葉佛)
《디가니까야 차카바티 시하나다경 》과《불설미륵하생경》에 의하면 붓다는 자신이 전한 佛法이 쇠퇴하고 사회가 타락에 빠질 때 미륵불이 출현하여 법(道)을 전할 것이니, 일부 제자들에게 열반에 들지 말고 그때를 기다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汝等四大聲聞要不般涅槃,須吾法沒盡,然後乃當般涅槃。大迦葉亦不應般涅槃,要須彌勒出現世間.所以然者, 彌勒所化弟子盡是釋迦文弟子,由我遺化得盡有漏。」《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
“너희 네 대성문은 반드시 반열반에 들지 말고, 나의 법이 다할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반열반에 들어야 한다. 대가섭 또한 반열반에 들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미륵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미륵이 교화할 제자들은 모두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며, 나의 남겨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번뇌의 유루를 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석가모니의 불교가 쇠퇴하는 말법시기에 미륵부처의 출현으로 새로운 佛法이 널리 전해져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는 미륵불에 대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분, 인간과 신의 스승, 자애로운 분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미륵부처의 복덕으로 말미암아 우담바라가 인간세상에 핀다고 하였습니다.
인자가 출현하니 깨어있으라고 한 예수와 붓다의 예언이 작금에 모두 현실화 되었으니 해탈을 추구하는 분들은 대각자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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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불교(佛法與佛敎)
사람들이 부처(佛)를 언급하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은 바로 불교를 연상한다. 사실, 불교는 단지 불법(佛法)이 인간 세상에서 표현된 한 가지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불법(佛法)은 세상에서 또 다른 표현형식이 있는데, 다시 말해서 불교는 불법(佛法)의 전부를 대표하지 못한다.
그 불교만 말하더라도, 역시 전부 다 석가모니부처가 전한 것이 아니다. 세간에는 또 다른 불교가 있고, 또한 석가모니부처를 교주로 여기지 않는데, 심지어 어떤 것은 석가모니부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의 황교(黃敎), 그들이 공양하는 것은 대일여래(大日如來)며, 게다가 황교는 석가모니부처를 단지 대일여래의 한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한다. 티베트에 전해진 불교 중 백교(白敎)가 공양하는 것은 밀라레빠(密勒日巴)로서, 석가모니부처와 전혀 관계가 없고, 또한 석가모니교의 일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그 당시, 신도들은 석가모니부처의 명호(名號)조차 몰랐는바, 석가모니부처가 누구인지도 전혀 몰랐다.
티베트에서 전해진 불교의 다른 교(敎)들도 석가모니부처에 대한 인식이 또한 같지 않았다. 소승(小乘)불교는 줄곧 자신들이 석가모니부처의 정전불교(正傳佛敎)라고 여기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확실히 형식상에서 석가모니부처 시대의 수련형식을 계승했고, 원래의 계율과 복장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석가모니부처 한 분만을 모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한인지역(漢地)의 불교는 오히려 개량을 거친 후 중국으로 전수되어 들어온 것으로, 수련 형식상에서도 완전히 같지 않으며, 여러 부처를 신봉(信奉)하였고 단지 석가모니부처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계율(戒律)도 배로 늘어났으며, 동시에 고대 한인지역의 민간 종교의식을 섞어 넣어 법사(法事) 속에는 또 목어(木魚), 타종(撞鍾), 바라와 북 등 중국 악기를 채용했으며, 복장 또한 중국 고대인의 민간 의복으로 갈아입고서, 대승(大乘)불교라 고쳐 불렀다. 이는 당초 석가모니불교와는 차이가 이미 아주 컸기 때문에, 그 당시 소승불교는 대승불교를 석가모니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불교 중에서 불법(佛法)과 불교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또 역사에서 말해 보자. 서방 사회에서 출토된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도 만자(卍字) 도형을 발견했다.
사실, 대홍수(大洪水) 이전의 상고(上古)시대에는, 그들 역시 부처를 신봉(信奉)했다. 대홍수가 났을 때 일부 서아시아와 히말라야 산의 서남쪽 일대에 살던 고대 그리스 인종(人種)이 살아남았는데, 바로 지금의 백인종 인도인이며, 그 당시에는 바라문(婆羅門)이라고 불렀다.
사실, 바라문교가 처음에 신봉한 것은 부처였고, 상고(上古)시대 그리스인이 신봉한 부처의 계승이었으며 그 당시 그들은 부처를 신(神)이라 불렀다.
대략 1천 년이 지나, 바라문교는 바로 현대불교인 대승불교의 개량, 티베트 불교의 개량, 일본불교의 개량 등등처럼 개량하기 시작했다.
1천여 년 후의 고인도(古印度)에 이르러, 바라문교가 말법시기에 진입했을 때, 사람들은 부처 이외에 난잡한 것들을 신봉하기 시작했는데, 이때의 바라문은 이미 부처를 믿는 사람이 없었으며, 믿는 것은 모두 마(魔)였고, 살생하여 가축으로 제를 올리는 상황이 나타났다.
석가모니부처가 세상에 왔을 때 바라문교는 이미 완전히 사교(邪敎)로 변해 버렸다. 이것은 부처가 어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사이비로 변했다는 말이다.
인도 고대에 남겨놓은 문물에서도 바라문교가 초기에 남겨놓은 산굴의 조각상 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조각된 신상(神像)은 모두 부처의 형상이다. 이것은 우리 한인지역의 불교에서 조각된 불상 중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몇몇 큰 석굴 속에 두 부처가 마주 앉아있는 조각상 등이 있다. 부처는 여전히 부처이고, 종교가 사이비로 변한 것이다. 종교는 신불(神佛)을 대표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심이 나빠져서 종교를 변이(變異)시킨 것이다.
이 일체는 불법(佛法)이 영원한 것임을 설명하며, 불법(佛法)은 우주의 특성이고, 위대한 불법(佛法)이 부처를 육성한 것이지, 석가모니부처가 불법(佛法)을 육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부처가 불법(佛法)을 깨달았고, 자신의 과위(果位)를 증오(證悟)한 것이다.
나는 다시 이번 시기 인류 문명을 말하고자 한다. 당신들은 아는가. 도(道)는 신(神)의 일종이고 불(佛)도 신(神)의 일종이며, 아울러 여호와와 예수, 성모 마리아도 신(神)의 일종으로서, 수련의 목표와 우주 대법(大法)에 대해 증오(證悟)한 인식이 다름으로 인해 얻은 과위(果位)와 외형(外形)이 다를 뿐이다.
방대한 천체는 불법(佛法)이 육성한 것이지, 이러한 불(佛)ㆍ도(道)ㆍ신(神)이 육성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이 모르는 것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석가모니부처는 여래부처만 해도 많기가 마치 갠지스 강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부처들이 말한 법이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인간 세상에 와서 법을 전한다면, 석가모니부처가 이전에 말한 것과 글자 하나 틀림없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석가모니부처가 와서 법을 전하기 전에 여섯명의 부처(六佛)가 말한 것은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법인가? 그렇다면, 불교 중에서 말한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세상에 와서 설법한다고 하는데, 석가모니부처의 말을 다시 반복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날 불교가 이 모양으로 변하게 된 것을 보니 마음속으로 아주 괴롭다. 종교 자체에 어리석게 미혹된 것이지 진수(真修)하는 것이 아니다. 위선자, 종교건달(痞子)들이 수련하는 장소와 출가인을 심하게 패괴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결코 이상할 것도 없다. 사실 석가모니부처도 일찍이 말법 시기의 상태를 말했는바, 현대 불교와 후기의 바라문교는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오늘날, 나는 다시 한 번 세상에 와서 法을 전하며 더욱이 직접 우주의 근본 대법을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하는데, 수련에서가 아니라 종교 자체와 속인의 감정을 수호하는 데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종교를 마치 부처와 마찬가지로 여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교 중의 위엄과 명망이 충격을 받음으로 인해, 속인의 마음을 움직여 반대하는데, 이런 집착이 그래도 작단 말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그런 사람들은 불법(佛法)과 부처마저도 감히 욕하는데 이미 지옥의 귀신으로 되었으나, 단지 인간 세상의 수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줄곧 무슨 종교의 학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이 불법(佛法)을 진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흔히 사람들이 부처를 언급하기만 하면 그들은 즉시 불교를 연상하고, 불가(佛家)를 언급하기만 하면 그들은 바로 그들 한 가(家)의 불교를 언급한 것처럼 여기며, 사람들이 불법(佛法)을 언급하기만 하면 그들은 곧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것이라고 여긴다.
전 세계에 장기간 깊은 산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역시 부동(不同)한 佛家의 수련방법에 따라 수련하고 있으며, 천백 년 이래 줄곧 전승(傳承)되고 있으나, 석가모니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러한 용어 개념마저도 모두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는 종교 건달들이 무슨 자격이 있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비평할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예수의 출현은 유태교를 노하게 했고, 2천5백 년 전 석가모니부처의 출현은 바라문교를 건드렸다. 역사적으로 정면(正面)적인 교훈은 사람에게 마치 영원토록 거울이 되지 못하는 것 같고, 그와 반대로 사람은 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면 교훈을 계(戒)로 인용하고 있다.
우주에는 성(成)ㆍ주(住)ㆍ괴(壞)의 법칙이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은 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不同)한 시기에 모두 부처가 세상에 와서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했으며, 역사는 바로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바, 미래의 인류도 마찬가지로 불법(佛法)을 들을 것이다.
정진요지
李洪志
1998년 12월 17일
"여기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일을 알려주겠다. 현재는 석가모니가 말한 말법시기로서, 안 되는 때인데, 바로 法이 없는 것으로, 석가모니는 그의 법이 말법시기가 되면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화상(和尙) 역시 수련 성취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모르고, 경서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경서 중의 진정한 함의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는 배우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인류사회에 어떠한 상태가 나타나든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데 이러한 천상의 변화가 없으면 곧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틀림없이 그 이유가 있다.
인류에게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가 있으므로 바른 것이 나타나면 반드시 사(邪)한 것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다른 한 방면으로는, 바로 오늘날 사회의 각종 사교(邪敎)라든가, 대량의 가짜 기공이라든가, 표면적으로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돈을 위하고 이름을 날리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많게는 아마 사마(邪魔)가 전생하여 세상을 난잡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석가모니는 그가 법을 전할 때 인류사회가 “다섯 가지 독이 구전한(五毒俱全)”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의 사회는 그때보다 더욱 복잡하며 열 가지 악이 구전한(十惡俱全) 것이며 사악한 종교 역시 매우 많다.
여기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우리는 절대 종교가 아니다. 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고 싶지 않으면 가는 것으로, 자원(自願)적이다. 예를 들어 억지로 당신에게 배우라 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기어코 배워야 하며, 배웠으면 떠나지 못하고 기어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여러분 알다시피 이 자체가 바로 삿된 짓을 하는 것이다.
정법이라면 사람 자신이 마음속으로 배우고 싶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어코 다른 사람이 수련하도록 강압한다면 그가 수련할 수 있겠는가? 그는 절대로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람 자신이 진심으로 배우려고 해야만 그는 수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강제로 누구를 여기에 있게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하지 않으며,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 배우면 나는 곧 당신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얼마나 큰 인연이 있든 당신이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당신에 대하여 책임지며, 배우고 싶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일을 하면 된다.
내가 이 법을 전하는 목적은 바로 아름다움과 복음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당신들 중에서도 아주 확실하게 많은 사람이 인연이 있는 것으로, 마땅히 이 법을 얻어야 하며 또한 줄곧 이 법을 얻고자 기다렸다.
인류가 특별히 난잡한 이때 전반 사회의 도덕이 모두 아래로 미끄럼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겁난(大劫難)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이러한 대겁난이 현재는 없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이처럼 나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무엇 때문에 위험한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오늘날 사회의 사람들은 이미 무슨 모양인가. 각종 부패된 현상이 그야말로 너무나 많아 헤아릴 수 없다. 사람이라, 무엇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는가?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감에 사람의 도덕 표준과 사람의 규범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이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당신에게 머리가 하나 있고 사지(四肢)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원숭이 역시 사지가 있고, 기타 공간 중에 사람과 비슷한 생물 또한 매우 많으나 그것들 역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행위와 도덕표준이 있고 사람의 도덕규범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사람의 도덕규범을 포기하여 사람의 도덕표준이 없고 동물과 같다면, 하늘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이것을 짐승으로 여긴다. 그때가 되면 인류는 그야말로 두려운 것이다.
무엇 때문에 두려운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인류의 공간이며, 지구는 신이 오로지 사람에게 만들어 준 것이지 짐승에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러하다면, 많은 좋지 않은 사람 그가 현재 난잡한 무엇이든 다 감히 하는 것만 보지 말라. 아마 절멸(絶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많은 선량한 사람, 많은 좋은 사람 역시 따라서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다. 현재 혼자서는 수련할 수 없는데, 내가 이 이치를 사람에게 말해주면 사람도 깨달을 것이며 인류가 이는 어찌된 영문인가를 인식하게 되어, 더 미끄러져 내려가 두려운 후과를 조성하기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
(96년 미국 제1차 설법)
李洪志 대사의 주요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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