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카페에서 굿뉴스 자게판을 읽다.
새벽 눈을 떴다. 성당엔 벌써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성체 등 앞엔 그가 앉아있고, 나 역시 가볍게 성수를 찍고 세리가 했던 것처럼 성당 뒷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사제관에서 자면서 지내보긴 여기가 세 번째 경험이다.
간단히 친구가 손수 차려준 아침을 먹고 들판을 걸어본다. 길가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길손을 반긴다. 툭 트인 들판은 벼를 대신하여 보리가 파랗다. 벌써 보리 이삭이 피어 이제는 곡식 익는 일만 남긴 듯하다. 지난 시절 보릿대로 여치 집을 만들던 장면들이 홀연 눈앞에 삼삼하다.
아침 바람이 세차다. 불현듯 어제 본 ‘부스러기’ 논쟁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들을 하는지? 잘린 손톱이나 빠진 머리카락을 사람의 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행여 모씨 같은 사람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를 들이대며 반박할지도 모르지만.
부분은 전체에 속하기는 하지만 전체와 모든 면에서 꼭 같이 겹쳐지지는 않는다. 자동차 부품 하나를 자동차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이치다. 같다는 의미는 크기, 효능, 용도, 구조 등을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리(條理)가 없는 사람들이 글을 읽으면 이설을 만들어 내기 십상이다. ‘學而不思는 卽罔이요 思而不學은 卽殆라’를 생각하게 한다.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법, 곰탕 한 그릇을 먹는 시간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서운한 탓에 잎새주 한 병을 시켰다.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영산포에 이르자 기차를 타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생긴다. 무작정 내려서 송정리 행 버스로 갈아탔다.
차표를 사려고 줄을 섰더니 송정리역 여직원이 자동기계에서 표를 뽑아다 준다. 경로 우대 표다. 공연히 특별대우를 받았다. 참 오랜만에 타는 기차여행이다. 차창에는 못자리판의 어린 벼와 텅 빈들 들과 연두와 초록으로 물든 산자락들이 다가왔다 이내 물러가기를 반복하며 그치지 않는다.
안내 방송이다. ‘통로를 오가며 음료수를 파는 대신 4호차에 카페가 설치되었다’는 안내방송이다. 카페에는 pc이용도 할 수 있고 음료와 식사이용도 가능하다. 캔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인터넷으로 굿 뉴스를 읽어 보았다. 배 선생님이 올리신 사진은 오늘도 압권이다. 그리고 하석 선생님의 시는 언제 읽어도 내게는 늘 청량제가 된다. 권 선생님의 글과 조정제님의 글을 읽는 순간 기차는 용산역 구내를 들어선다.
이 기차의 종착역은 용산이고 오늘 행선지는 수색 성당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먹는 자리에 숟가락을 차지할 수 있겠다. 전철로 서울역으로 이동해서 문산 행 기차를 탔다. 성당에 도착하니 미사가 막 끝난 모양이다. 친구 소개로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악수를 했다. 남국현 신부님이시란다.
첫댓글 그리고 가톨릭 형제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30차 모임에 가벼운 여행복 차림이시더니, 영암에서 오시는 길이셨네. 정성이 크십니다. 그날 먼저 일어나시어 긴 여행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네. 다른날 재미있게 한번 들어보세나. -이시돌-
이시돌 형제님! 그렇게 하십시다.
참으로 먼 여행길이었는데 어찌 송정리에서 기차 타자 마자 용산역이란 말인가? ㅎㅎㅎ 참 재미있게 읽었소이다!
한번 타보시게, 카페에 가서 맥주좀 마시고 창밖의 경치좀 감상하고 인터넷 쬐끔하면 금세 서울이랍니다.
혼자 하는 여행을 만끽한 양명석 스테파노 "부럽다~~"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어제(월) 완도 신지섬(섬이라도 연육교가 다 놓아져 있어 같은 육지?)에 피정을 갔다 왔지요. 저 있는데서 약90Km 한시간조금 넘게 걸리더군요. 명사십리가 있는 정말 멋있는 섬에서 좋은 피정을 했답니다. 모쪼록 내내 건강하시고, 다음에 여유있게 와 여기저기 다녀봅시다.
멋진여행 축하드립니다 . 긴여행후 수색성당까지 ..
교훈, 철희님! 좋은 아침입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 부럽다.’고 하시니 글쎄, 좀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윤석! 모처럼 가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신세만 잔뜩 지고 와서 면목이 없소. 그사이 좋은 곳에 가서 피정을 하셨다니 부럽기도 하고, 명사십리는 풍광이 수려한 해수욕장이라는데, 나는 예전에 완도에 갔을 때는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