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집 <문저리 선생>, <잠들지 못하는 나무> 등을 내신 목포의 수필가 조명준선생님께서 얼마 전에 멜로 띄워주신 글 [사랑한다, 똘남아]입니다. 글을 읽다가 별안간 카페에 연재할 욕심이 났습니다. 문장의 향기가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가차이 뵌 듯 두 손을 맞잡은 듯 곳곳이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은퇴하시어 전처럼 교문통 어디 꿀꿀한 막걸리집이라도 어쩌시냐 묻지도 못하고 더러 오시라커니 쳐들어간다커니 하는 짓도 잘은 아니어서 하냥 그리움만 깊어갑니다. 휴대폰은 번호가 바뀌었고, 댁은 전화를 받지 않아 서둘러 이곳에 결례를 무릅쓰오니 부디 용서만 바랄 따름입니다. 전에 고영의선생님을 세상에 자랑한 <소걸음을 걷는 선생님(스승의 날 기념 교육방송)>으로부터 작년 한복을 차리시고 광양 유춘오를 찾아주시기까지 저와 맺은 인연을 내세워 무춤 선생님의 안부를 여쯥니다... (아래는 멜 머리에 띄우신 선생님의 편지입니다.)
청호중학교 상담실 창문을 열면 빨간 단풍잎이 꽃보다 곱습니다. 그냥 빨간 색깔이 아니라 처절하게 붉은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찍은 사진을 곁들여서 틈틈이 썼던 글을 선보입니다. 할아버지의 '육아수첩'입니다. 처음에는 '육아일기'를 쓸 작정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일기를 쓸 정신적 여유가 없었답니다. 손주가 있으신 분은 즐겁게 읽으시고, 아직 손주가 없는 분은 읽지 마시고 잘 갈무리해 놓았다가 손자가 생긴 다음에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11월 30일 목포에서 조명준 드림
사랑한다, 똘남아!
- 할아비의 육아 수첩 -
조명준
이 좋은 봄날
손자 녀석은 ‘누가바’를 질질 흘리며 맛나게 빨아먹고, 할아비는 ‘누가바’에서 떨어진 초콜릿 조각을 날쌔게 주워 먹는다. 누가 볼까 싶다. 하기야 누가 본들 대수일까. 정년을 맞은 할아비는 가게를 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하여 손자를 떠맡았다. 할미가 학교에서 퇴근할 때까지 손자를 돌보는 책임은 오롯이 할아비 몫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이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고달프다. 그래도 행복하다.
아들들을 키울 때는 바쁘고 어설퍼서 대강대강 넘어갔다. 주로 아내가 돌보았다.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손자 시중을 들면서 새삼 할아비는 핏줄 사이의 애틋함, 끝없는 사랑과 기대, 충만한 행복감에 들떠 기꺼워한다.
만 두 살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말을 못한다. 아니, 하기는 한다. 에스페란토어도 아니고 우랄 알타이어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 나이네지브히야, 어르바?” 제법 억양에다 악센트까지 넣어가며 지껄인다. 할아비가 미친 척, “우르르아르끼요? 찌뿌뿌로하이야?” 주워섬기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제는 교육이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다. 교단에서 물러나 손자를 돌보면서 비로소 할아비는 교육의 밑바탕을 몸으로 이해한다. 아이는 어른들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피고 흉내 내어 포크로 과일을 찍거나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올리려고 실패와 도전을 되풀이한다. 학습의 모방 원리다. 아이는 먹거나 옷 입거나 빠이빠이 손 흔들기나 놀이 아닌 것이 없다. 학습의 유희 기원설이다. 아이는 한 가지 일에 오래 매달리지 못한다.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놀이를 찾아 나선다. 학습에서 변화의 원리다.
이토록 생기발랄하고 역동적이며 꿈도 많고 상상력도 무궁무진하던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순식간에 인생이 고달파진다. 꽉 짜인 시간표하며, 조직의 갖가지 엄격한 율법하며, 숨통을 죄어오는 점수하며, 태산같이 무거운 중압감으로 찍어 누르는 상급학교 입학시험 따위가 학생들의 삶을 딱딱하고 버겁고 팍팍하게 만들어버린다. 부모들의 태도도 백팔십도 돌변한다. 어릴 적에는 함께 즐거이 놀아주고 응석도 잘 받아주더니 학교 들어가고부터는 입만 열면 공부, 공부, 점수, 입시, 대학이다.
때마침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후보 유세 차량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할아비는 미소를 머금는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옛날에는 신익희 선생 연설을 들으려고 한강 백사장에 백만 인파가 운집했다는데 요즘 선거 운동은 그때처럼 죽을 둥 살 둥 비장하고 심각한 맛이 사라졌다. 거의 노래방 분위기 축제 분위기다. 거기서 거긴데 누가 되면 어떠랴 싶기도 하다. 지난 오륙십 년 사이 역사가 많이 발전한 증거다. 앞으로 또 오십 년이 지나면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더라도 손자가 환갑을 맞이할 즈음이면 교육도 정치도 지금보다는 많이 발전하겠지.
‘누가바’가 끝났다. 허연 크림이 덕지덕지 붙은 손자의 입술을 휴지로 닦아내면서 할아비는 손자가 다닐 학교가 즐거운 학교이기를, 아침에 눈만 뜨면 달려가고 싶은 학교이기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빌어본다. 손자의 세상에서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자리이기를 빌어본다.
아이 돌보미
똘남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놀이터에 가다가 선배 교사 두 분을 만났다. 나보다 정년퇴직을 먼저 하신 분들이다.
“손자녀석인가?”
“예.”
“뭘라고 아이 뒤치다꺼리에 땀을 빼는가? 지기 부모한테 맡기고 우리처럼 등산이나 다닐 일이제.”
“그렇게 됐습니다.”
나라고 당신들처럼 한가롭게 지팡이 짚고 꺼떡꺼떡 등산 다닐 줄 몰라서 안 다니겠는가. 부모가 기를 형편이 못 되니 어쩌겠는가. 나도 처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떠맡아 기르는 일은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막상 코앞에 닥치고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둘째아들이 광주 일곡동에 피자가게를 차렸다. 결혼해서 부부가 함께 가게 일을 했다. 똘남이가 태어났다. 비좁은 피자가게 구석지방에 구겨 박힌 아이를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그래도 얌전히 누워서 젖병을 빨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뒤집고 기기 시작하자 점점 힘이 들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가게 일이 더욱 바빴다. 생각다 못해 아들 내외는 금요일 밤에 아이를 데리고 목포로 내려와서 우리한테 맡겨 놓았다가 일요일 밤에 데려갔다. 방학 때에는 아예 똘남이를 목포에서 키웠다. 그러다가 내가 40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하자 똘남이 돌보는 일은 슬그머니 할아비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 때가 똘남이 만 한 살 반이나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모작
뭐 하나 딱 부러지게 이루어놓은 공적이 없는 나로서는 부끄러워서라도 퇴임식을 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고맙고 미안스럽게도 전남의 전교조 해직 동지들이 모여서 나와 또 한 분의 정년퇴임식을 거창하고 화려하게 베풀어주었다.
“교직에 몸담은 동안 이렇다 할 발자취를 남기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뒷일은 후배 교사들에게 맡깁니다. 교직을 물러나는 일이 서운한 것이 아니라 인생이 종착역에 도달한 것 같아 쓸쓸하고 서글픕니다. 이제 일모작이 끝나고 이모작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월, 꽃 피고 새 우는 희망찬 새봄, 여느 해 같았으면 새 교실에서 새 학생들과 꿈에 부풀어 희망을 이야기할 계절이었지만, 교단에서 물러난 몸과 마음은 자못 허전하고 쓸쓸했다.
퇴직 후 이모작으로 처음 시작한 것은 붓글씨, 학교 근무할 때부터 늘 배워보고 싶었던지라 서예 학원에 등록하자마자 보름 동안 열심히 먹을 갈고 붓 놀리는 법을 배웠다.
광주 계신 팔순 노모께서 허리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 형제간들은 모두 직장에 근무하고 노는 사람은 퇴직한 큰아들 나뿐이었다. 급히 광주로 올라가 며칠 병구완을 마치고 내려와 보니 똘남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예학원을 그만두었다. 굳이 나가려면 아내가 퇴근하는 밤에 짬을 낼 수 있었지만 나는 몸도 마음도 온통 똘남이한테 바치기로 작정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이모작은 손자 돌보미로 낙착을 보았다.
<계속>
첫댓글 할아버지의 육아일기 후일 책으로 내보시길요.
사진이 보이지 않아 아쉽슴다. 카페 쥔장님. 내 컴터 문젠가...? ㅎㅎ
사진을 보이게 올려씀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교무실에서 '올바른 운전 습관'도 글로 적어 우리들에게 알피엠을 적절히 쓰라는 내용부터 안전사고에 관한 쉽고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주신 여러 이력의 할아버지셔.(녹색카드만 자랑하고 정작 당신은 여태 차를 사지 않으셨지.) 이렇듯 일상에서 낚아 올리는 싱싱한 삶의 물고기들을 절대 혼자만 궈잡수시지 않으시는 참 인정 많고 지혜로운 형님이시지... 육아일기라면 동생도 빠지지는 않으시니 동상 책도 언능 나왔으면 좋겠당~
훈훈해요. 전 딸 아님 절대로 안 봐 줄거라고 했는데 그럴건데... 저컴도 안 보이네요. 선생님 메리크리스마스!!
그린 헤피뉴이어~ '할아버지'는 가슴은 훈훈하고 말소리는 텁텁하셔요. 제 누님을 보아도 알겠는데 할머니가 손자손녀 사랑하는 것은 가위 집착적이데요^^ 그린도 할머니 안 되셨남요? ㅋ
형님 덕분에 훌륭한 선생님을 살아오면서 언젠가에서부터? 만나뵈었던..선생님! 큰형님! 형님이라는 표현에 담긴 내심은 경청하는 정도여도 되는 내어맡김과도 같은 평안함이 있었지요. 그 분과의 만남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리움만 깊어간다는 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