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의 수도원(The Charterhouse of Parma) 서평
파르마의 수도원(The Charterhouse of Parma) Film
파르마의 수도원(The Charterhouse of Parma) 서평
배경
나폴레옹의 전투, 이탈리아의 법정 음모, 그리고 아름다운 로맨스가 함께 어우러진,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대표작.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스탕달(Stendhal)이 고향을 떠나 많은 인생의 영욕을 겪고 난 후 만년에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은 스탕달(본명은 앙리 벨)이 59세의 나이로 파리의 한 거리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4년 전인 1838년, 52일간의 구술로 완성된 작품이다.
[적과 흑](1830)의 쥘리앵 소렐처럼 야심 많고 대담하고 도덕감이 결여된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정열과 욕망을 펼치는 이야기이다. 이탈리아를 동경해 온 것으로 유명한 스탕달은 16세기 이탈리아의 기록에서 얻은 소재에 나폴레옹의 서사시를 가미하여 [파르마의 수도원]이라는 대작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적과 흑]과 더불어 스탕달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는 벨리슴Beylisme, 즉 일체의 도덕적인 고려를 떠나서 지성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정열을 마음껏 펼치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작가의 주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르마의 수도원]은 앙드레 지드가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는 작품이며, 동시대를 살았던 발자크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함이 돋보인다'고 극찬한 작품이다.
스탕달 자신의 정열을 투사한 독특한 인물 창조
스탕달은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개성이 뚜렷하고 독특한 인물들을 창조하여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감명을 준다. 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파브리스, 재치가 넘치고 열정적인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 마키아벨리적인 모스카 백작. 그리고 아름답고 순수한 클렐리아. 특히 주인공 파브리스는 평생 열정을 간직해 온 스탕달 자신의 열망을 투사한 인물이다. 그러면서 촌스럽고 못생긴 외모로 늘 실연의 좌절과 열등감을 겪었던 스탕달 자신과는 반대로 수려한 외모의 파브리스는 늘 아름다운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스탕달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파브리스도 신념에 부풀어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전쟁에 참여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워하는 파브리스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풋내기이다. 실수투성이에 무모할 정도로 열정만 앞서 곧잘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곤 하지만, 독자들의 파브리스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한결같은 순수함 때문이다. 파브리스는 나이가 들고 고위 성직자가 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후에도 이러한 순수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처럼 파브리스의 변하지 않는 젊음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동시대 작가 발자크는 파브리스를 두고 '같은 소설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로 탁월한 인물을 창조해 냈다'고 말할 정도이다.
스탕달의 소설론 벨리슴(Beylisme)
발자크, 플로베르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스탕달의 소설론은 벨리슴(Beylisme)으로 요약된다. 자신의 본명 벨(Beyle)에서 비롯된 벨리슴은 일체의 도덕적인 고려를 떠나서 지성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정열을 마음껏 펼치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작가의 주관을 말한다. 스탕달에 의하면 행복은 이기주의의 명령에 따르는 데 있으며 이기주의야말로 모든 행동의 동기이다. [적과 흑]의 쥘리앵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파르마의 수도원]의 파브리스는 자신의 아들을 되찾으려는 이기심으로 아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사랑하는 클렐리아를 불행에 빠트린다. 그러나 스탕달이 추구하는 행복은 명예와 부와 같이 세속적인 가치가 아니다. 스탕달은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세속적 성공과는 무관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그려 보임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자 했다.
특히 [파르마의 수도원]은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To the Happy Few)라는 헌사로 끝난다.
이 작품이 지향하는 것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영혼들과의 만남이다. 파브리스가 나폴레옹을 숭배하지만 그 자신이 엄밀한 의미의 공화주의자는 아니다. 또한 고위 성직자의 길을 걷지만 역시 파브리스가 출세를 바라서도 아니다. 파브리스가 많은 좌충우돌 끝에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은 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감옥 안이었다. 그곳에서 파브리스는 클렐리아를 향한 열정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처럼 스탕달이 말하는 '행복한 소수'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 비굴함 속에서는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 감각과 본능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정열을 가지고 사랑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반쪽, 그것도 아름다운 반쪽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파브리스가 클렐리아와의 사랑에서 변하지 않는 행복을 찾은 것은 아니다. 클렐리아는 남의 아내가 되었고, 아들 상드리노는 크레센치 후작의 아들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스탕달이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행복 자체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듯이 파브리스의 가치는 그 태도에 있는 것이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이처럼 파브리스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에 대한 유쾌한 비판
[파르마의 수도원]은 파브리스라는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서사시이며 사랑의 노래이다. 동시에 이 작품에서 지나칠 수 없는 점은, 재치와 통쾌함이 가득 차 있어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화정 시절을 그리워하는 스탕달은 아래에 예시된 경우처럼 전제 군주제의 모순을 유쾌하게 비틀고 있다.
라베르시 후작부인을 편드는 많은 인사들이 이야기를 퍼뜨려 놓은 덕분에 대공도 여느 파르마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브리스가 2,30명의 농부들을 불러 모아 마리에타를 두고 감히 자기와 겨루려 든 한 괘씸한 희극 배우를 때려죽였다고 믿고 있었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궁정에서는, 마치 파리에서 유행이 진실을 좌우하듯이, 맨 처음 능란하게 일을 꾸미는 자가 진실을 좌우하는 법이다. (제12장)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작은 궁정에서 완벽히 수행되는, 아마도 유일한 국정 분야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정치범들의 감시일 것이다. (제17장)
자신들의 위험은 생각하지도 않고 한술 더 떠서 떠들어 대기를, 무자비한 경찰이 이 괘씸한 파브리스의 탈출을 도운 가엾은 병사 중 여덟 명을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주의자 인사들까지도 파브리스가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불쌍한 병사 여덟 명을 죽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은 나라의 전제 정치는 여론의 가치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제22장)
이처럼 [파르마의 수도원]에 흐르는 분위기는 전제 군주제를 향한 스탕달 자신의 비판이다. 파브리스가 열렬한 나폴레옹의 신봉자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파브리스는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고위 성직자가 되며,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은 미모와 재치로 독재자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얻어 낸다. 하지만 작품 끝에서는 변화된 공국을 볼 수 있다.
파르마의 감옥은 텅텅 비었고, 백작은 막대한 재산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에르네스트 5세는 신하들로부터 토스카나를 다스린 대공들의 훌륭한 치세에 비유되어 칭송을 받았다. (제24장)
파브리스의 숭고함과 그를 지켜 주려는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의 열정과 그녀를 사랑하는 모스카 백작의 충성이 파르마라는 작은 공국의 전제 군주를 결국 독재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을 가볍게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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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줄거리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1783 -1842)은 발자크와 더불어 19세기 근대적 리얼리즘의 대표다. 시대를 꿰뚫는 통찰,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덧대서 극적인 운명을 창조하는 상상력 등은 세기를 뛰어넘어 독자의 가슴을 쥐고 흔든다. 이번에 나온 그의 만년 작품 ‘파르마의 수도원’(1838년작)은 19세기 초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파브리스’라는 인물의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스탕달의 전 생애와 작품을 관통하는, ‘행복에의 추구’라는 주제를 시종 붙들고 있으면서, 아울러 이탈리아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동경이 배어나오고 있다.
밀라노에서 후작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파브리스’는 당시 유럽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을 따르기 위해 집을 뛰쳐 나간다. 실수연발의 초년병으로서 워털루 전투를 경험했을 뿐 아무런 소득없이 귀국한 ‘파브리스’는 형의 비난을 견디다 못해 다시 가출한다.
파르마로 건너간 그는 고모 산세베리나 공작부인과 모스카 백작의 비호 아래 파르마 대주교라는 장미빛 미래를 꿈꾼다. 그러다 시골 극단 여배우인 ‘마리에타’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고, 그의 연적인 광대 ‘질레티’를 결투 끝에 죽인다. 이 때문에 ‘파브리스’는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이번에는 그의 운명을 장악하게 될, 성채 사령관의 딸인 ‘클렐리아’와 새로운 사랑이 그의 열정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파브리스’는 고모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한다. ‘클렐리아’는 아버지인 사령관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파브리스’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승낙한다. 그러나 숱한 우여곡절 끝에 ‘클렐리아’와 ‘파브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죽고, ‘클렐리아’도 따라 죽게 되며, ‘파브리스’는 파르마 수도원에 은거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생, 그리고 스탕달 소설들의 긴박한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당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작가의 깊은 분석과 비판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사르트르는 ‘스탕달, 그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가는 없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스탕달의 인물들은 현대 독자들에게 여전히 신선하고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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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탕달((1783-1842)
프랑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 외에 문예평론·여행기·평전을 남겼다. 문필활동 말고는 나폴레옹시기에 군인·군무원을, 7월혁명 이후에 외교관을 지낸다.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고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를 넘지만,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필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회화사』, 『아르망스』 등을 집필했다. 1819년 메칠드와 생애 최고의 연애를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험은 뒷날에 평론 『연애론』(1822)을 탄생시킨다. 1921년 파리로 돌아와 문필활동을 계속하며 1825년 『라신과 셰익스피어』를 발표하여 낭만주의운동의 대변자가 된다.
첫 소설 『아르망스』(1827)는 성적 불능자를 주인공으로 한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7월혁명 이후 대표작 『적과 흑』(1830)을 출간하며 처음으로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 밖에 미완성 장편소설 『뤼시앙 뢰방』, 『라미엘』, 사후에 ‘이탈리아 연대기’로 간행되는 『카스트로의 수녀원장』 등 중·단편들을 모은 『한 만유자의 메모』(1838)를 발표한다. ‘이탈리아 연대기’의 연장인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그의 생애를 매듭짓는 걸작이 된다. 이처럼 발상과 기법의 참신함 때문에 작가 생전에는 많은 이해를 얻지 못하지만, 죽은 뒤 스탕달의 작품은 점점 많은 독자를 얻어 세계적인 명작으로 발돋움한다. 스탕달은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