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봄나들이를 다녀와서
일 시 : 2019년 4월 21(일), 회덕초딩29 봄나들이
참석인원 : 30명
너도 한번 나도 한번 누구나 한번 왔다가는 인생
멈추지 않는 세월이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얼마전 우리 29회 동창회 총무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번 여행은 부산 동백섬으로 결정했다는 메시지였다.
여행가기 전날 밤은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도 설쳤다.
개인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얼마나 안타가워 했을까...
나는 미리 열차표를 예매하였기 때문에 서울역에서 대전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대전역에 도착하니 벌써 8시 10분이다.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을 갈아탄다.
대전시청역에 내려 남문광장으로 가기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여자친구들이 보인다. 영숙이와 화순이 그리고 종희였다.
종희 친구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남문 광장으로 향했다.
벌써 부지런한 친구들은 많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를 하면서 서로 얼굴을 보니 모두들 건강한 모습이었다.
우선 이모임을 위해 수고하여주신 이병화 회장님 백주현 총무님 임채현 회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특히 많은 음식을 장만하는데 수고하신 여자 친구 모든 분들게 모두 감사 인사를 드린다.
해운대는 나에게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돌아와요 부산항” 노래로 유명한 해운대 동백섬
이곳에는 지금은 없지만 근처에 수영비행장이 있었고 조금 더 가면 장산이라는 높은 산이 있는데 지금부터 43년 전 내가 이곳 병기학교에서 군 생활 하였다. 전차수리병 교육담당을 하면서 3년간의 군 생활을 하였는데 아침 점호가 끝나면 웃통을 훌렁 벗고 해운대 근처까지 구보를 하며 달려가던 정든 곳이기도 하다.
모두들 모여주세요
회덕초딩 29회 동창회 명예 사진촬영 담당 명순이가 소리친다.
“찰칵”
우리들의 멋진 미소가 담기는 순간이었다.
버스에 오르니 실내가 우등고속버스와 같다.
널찍한 좌석과 편안함에 모두들 너무 좋아한다.
이병화 회장님께서 이런 것 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너무도 고마웠다.
버스가 출발하자 준비한 떡과 음식들을 나눠줬다.
뒷좌석에는 여지없이 쐐주와 안주로 노털카 구호가 한창이다
술을 마실때는 잔을 놓지도 말고, 털지도 말고, 카소리도 내지말고 마시는 것이 예절이라나?
영분이 친구가 돼지족발을 먹어보란다. 김치에 싸서 먹어보니 맛있다. 김치는 순득이 친구가 우리 동창들을 위해 정성껏 담아서 가져 왔다. 친구 정말 고맙네..
나는 술을 못마시는 관계로 채현이가 주는 환타 캔을 하나 마셨는데 오렌지맛이 아주 좋았다.
입담 좋은 병화 회장님의 넌스레가 끝나고 멀리서 온 친구들부터 한곡조씩 노래를 시킨다.
오전이고 달리는 고속버스 안이라 노래방 기계를 안틀은 관계로 생음악이다.
나는 얼마 전 주민음악회에서 들었던 조항조의 “옹이” 노래가 좋아 유튜브를 보면서 연습도 해봤는데 노래 실력이 영 시원찮다.
사랑에 불씨하나 내 가슴에 불 질러 놓고 로 시작되는데 사랑이 너무 깊어 냉정히 떠난 그녀를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옹이가 되어 남아버렸다는 그런 가사 내용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4시간을 달려오니 버스는 목적지 해운대에 도착했다. 점심 예약한 식당에서 마중을 나와 버스를 안내했다.
해수욕장 인근 거북선 횟집이었는데 싱싱하고 푸짐하게 나온 광어 도다리 해삼 멍게를 실컷 먹었다. 식사가 끝나니 벌써 3시다.
식사후 버스를 타고 동백섬으로 이동했다.
해운대해수욕장과 접한 도로변에는 거대한 마천루가 즐비하게 서있었다.
마치 미국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았던 풍경과 같다.
우리 모두는 해운대 동백섬에 도착했다.
동백섬 산책로는 동그란 원으로 되어있다.
조선비치호텔에서 출발하면 좌우로 두 갈레 길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던지 종점은 출발점과 같다.
자유롭게 가고 싶은 산책로로 향하면 된다.
나는 해안가 목제데크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전국에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명소가 많지만 해운대 동백섬만큼 동백꽃으로 유명한 곳은 없다.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고 탁트인 바다와 싱그러운 봄바람 초록빛 숲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해운대해수욕장의 고운 백사장이 같이 붙어있다.
동백섬은 섬으로 부르고 있으나 섬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의 퇴적작용으로 섬과 육지가 이어졌다고 한다.
잘 만들어 놓은 데크를 걷다보니 곳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조망하기가 아주 좋았다.
등대 아래에 있는 고운 최치원선생이 쓴 해운대 석각은 가보지 못했다. 주어진 1시간 동안 섬 전체를 구석구석 다 돌아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이었다. 오늘 못 본 것은 다시 한 번 방문하여 보아야겠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바닷가 바위위에 청동좌상으로 만든 황옥공주 인어상이 보인다.
그 앞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공주가 되어보려는 듯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황옥공주는 인어나라 나란다국에서 무궁나라 은혜왕에게 시집을 왔다. 그러나 고향을 잊지 못해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고국을 향한 바위에 앉아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인어를 소재로 한 전설이 많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상은 실제로 가보니 너무 작아 실망하였으나 이곳에 앉아있는 황옥공주는 바다와 조화가 잘되면서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동백섬에는 최치원선생 유적지와 해운대 석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은 서기 857년에 경주 남천에서 태어났다. 12세때 당나라에 유학했다. 18세때 당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해 율수현위가 되고 25세에는 토황소격문으로 중국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28세때 다시 신라로 돌아와 벼슬을 지내면서 ‘시무28조’같은 개혁안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골품제도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조국에서 인정받지도 못하고 신분의 한계 때문에 큰일을 할 수도 없었다.
40세때 부터 방랑자 신분이 되어 전국을 다니며 명문과 시를 남겼다. 최치원 선생의 마지막 길은 가야산 이었다. 신라말 최고의 천재로 꼽혔던 선생은 가야산 입산후 세상에 나오지 않아 산속에서 신선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몇해전 해인사 소리길 홍류동계곡을 걷다가 농산정에서 만난 최치원 선생의 제가야산 독서당 이라는 시를 읽어 보았다.
<제가야산 독서당>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늘 시비(是非) 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 버렷다네
선생께서는 가야산으로 가기전 이곳 해운대를 지나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절벽아래 큰 바위에 ‘해운대’라은 글자를 남겼는데 그 지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격다보니 ‘운’자가 다소 마모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섬을 걸으면서 최치원선생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현실에서 좌절을 겪어야 하는 지식인의 절망감과 운둔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마음속 갈등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겠는가 하고.....
무성한 동백나무 숲에는 이른 봄이면 동백꽃이 만발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동백꽃이 다지고 없었다.
우리가 찾아 올 때 까지 참고 기다리던 동백꽃 한 송이를 울창한 숲속에서 힘들게 발견했다.
동백섬의 동백꽃은 1~4월에 핀다고 한다.
동백꽃은 두 번 핀다. 한번은 나무위에서 활짝 피고 질때는 송우리채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 다시 한번 바닥에서 꽃을 피운다.
이와 같이 동백꽃은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 하여 우리 선조들은 동백꽃을 좋아 했던 것 같다.
조선 세종때 집현전 학사였던 성삼문의 시 반계산다(반쯤핀 동백꽃)를 떠올려 보았다.
나는 한겨울 동백 자태를 좋아하노니
반쯤 필때가 너무 좋아라
피지 않았을 땐 피지 않을까 두렵고
이미 피면 도리어 시들까 그러 하다네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APEC하우스가 있었다.
건물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나를 반기는 것은 김규장 명장의 작품 십이장생도가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가 흔 이 아는 십장생에 두 가지를 더해서 나전칠기 그림으로 가로 6m 세로 2.2m의 화려한 자계 그림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중에 최고의 명품 걸작 이었다.
해, 구름, 산, 바위, 물,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에다 대나무와 천도복숭아를 더해 십이장생도가 되었다.
APEC기념관에는 정상회담 기간에 각국 정상들이 사용했던 각종 물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2005. 11.18~11.19 까지 APEC 정상들이 먹었던 만찬정식 모형이 있었는데 화려함 보다는 정갈한 한국적인 미를 음식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을 나와 산책로를 따라가면 조선비치호텔 후문이 나오고 우리가 타고왔던 빨간 버스가 저만치 보인다.
버스이름이 재미있다 금수강산 관광버스다.
나는 올해 1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 새벽 5시까지 나가서 어르신들이 운동할수 있도록 헬스장 관리를 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러 나오시기 때문이다. 귀찮기도 하지만 같이 어울려 운동도 하면서 건강도 챙긴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줍고’, ‘마당 쓸고 돈 줍고’라는 말들도 있지 않은가.
동백역에서 지하철을타고 부산역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오후 6시 KTX를 타기위해 다음 행선지 해동 용궁사 까지는 함께 하지 못했다.
몇 년전 해변가 바위위에 조성한 용궁사를 가보았는데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오늘은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로 바쁜 하루였다.
회덕초딩 29 친구들아
같이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아직도 얼굴이 생소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즐겁게 소풍도 다녀오니 좋지 않은가?
전국 방방곡곡 멀리서도 많이많이 와서 참석하여 주신 모든 동창 여러분들게 감사드린다.
오늘은 아주 보람되고 즐거웠던 모임이었다.
친구들아! 우리 다음에 또 만나세 ∧∧~
법동친구 최규영
첫댓글 애~휴 친구가는것도 몰랐네 내가 쪼그만해서 안보였나 쩝~~
친구의 사진을 넣어서 하나올려놨어 달작지근한 이야기방에 조금 화난 모습이던데 ㅋㅋㅋㅋㅋ